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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May 09. 2024

익숙한 것과의 이별 연습 1


과감하게 차 한 봉지를 꺼냈다.'제주 영굴 맛'을 꺼내볼까?' 아침 일찍 등산을 떠나는 안드레아에게 마지막 남은 천혜향을 싸 주고 나니 상큼하고 달콤한 향이 아쉬웠나 보다. 하지만 무려 9가지 맛이 진열된 녹차 세트를 보니 새로운 맛을 시도해 보고도 싶었다. 작년에 이처럼 크고 화려한 차 세트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고 무려 일 년이 다 돼가지만 포장을 뜯어 마시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커피는 필수, 차는 선택이라 말하고 싶지만 거의 선택할 생각도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니 말이다.



문득 유통기한이 걱정되었다. 올해 7월 초까지. 휴, 다행이다. 얼마 안 남긴 했지만 열심히, 아니 꾸준히 마셔보도록 해봐야겠다. 사실 선물 받은 차가 더 있긴 하지만 말이다. 



물을 따르기 전에 티백을 코 가까이에 대고 향을 음미한다. 유난히 강한 향에 황홀한 기분까지 든다. 꽃 향과 과일향이 섞인 듯한 멋진 냄새다. 기본적으로 녹차가 있겠지만 어떻게 이런 향이 배어 있을까 신기하기만 했다. 오감을 유혹하는 냄새나 맛 중에는 인공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인공 감미료 가득한 음료수보다는 낫겠지' 하며 자기 위로를 해본다. 



얼마 전 마시기 시작한 홍차의 향과 비슷하다. 조금 연한 맛인가? 아니다, 연한 듯하지만 홍차의 향과는 다르다. 벚꽃향인가 싶다가도 귤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마셔본다. 그렇게 생각에 생각을 더듬다 보니 바닥이 보인다. 미세한 구멍을 빠져나온 더 미세한 차 가루가 맑은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흐트러져 있다. 



'가루를 마셔도 되나?' 괜한 걱정을 하며 다시 한 모금 마시고는 그 어떤 차의 맛과도 다른 혼합된 향이라 여긴다. 뭐라 칭하고 싶지만 칭할 수 없는 답답함 너머로 다시 혼잣말을 한다. '이것은 어떤 맛도, 어떤 향과도 같지 않아. 비슷하지만 같지 않아. 하지만 어떤 차나 향보다 과하지 않아서 좋아. 강력하지만 겸손한 맛이라고나 할까?' 아, 차에 대한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긴 하다. 반복하다 보면 나아지려나:) 이번 기회에 차를 마시는 습관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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