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독특한 예술 세계 맛보기
TITLE: THE STRANGE LIBRARY(영문판 아트북)
번역본: '이상한 도서관'
PUBLISHER: Knopf Publishing Group
PUBLISHED in 2014
AUTHOR: 무라카미 하루키 Murakami, Haruki
제목처럼 이상한 책이었다. 예술 감각이 부족해서인지 주제가 뭐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현실 부정인지 현실 비판인지 그저 악몽 같은 이야기인지 잔혹 동화인지 무슨 교훈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여러 번 읽으면, 좀 더 성숙해지면 알 수 있을까? 문학은 때로 어렵다.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는 나도 여러 번 들어보았을 정도로 유명한 일본 작가다. 하루는 하도 궁금해서 <상실의 시대> 사서 읽다 만 적이 있다. 허무한 청년의 연애사인 것 같아서 흐지부지 넘기다 말았는데 <노르웨이의 숲>이 이와 같은 책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고 놀랐다. 다른 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식한 나 자신이 부끄러우면서도 독서는 한 작품, 한 작가, 배경, 그 이상의 탐구가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는 생각에 부담이 느껴졌다.
그리 두껍지는 않지만 강도 높은 괴기스러움과 독특함에 나는 책을 읽고 인터넷에 이 책을 검색해 보았다. 시대를 가늠할 수도 없고 뭔가 내가 알아야 할 정보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다. 출처에 따라 소개 내용이 조금씩 달랐다. 먼저 구글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린이 소설로 1983년 첫 소개되었으나 2014년 최신 버전으로 다시 출판된 작품'이라고 했다. 아마존 서점에서는 어린이 소설이 아닌 현대 판타지 소설로 분류가 되어 있어서 의외였다. 성인을 대상으로 나온 책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용을 읽어보니 어린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과 대사가 있었다. 어른 입장에서도 그리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인과 관계없이 그저 우연히 비극이 일어난다는 것은 아무리 문학의 세계라도 내 마음을 힘들게 한다.
그나마 온라인 국내 서점의 소개가 가장 친절한 편이었다. '<캥거루 일화>라는 소설집에 있던 단편 <도서관 기담>을 작가가 20여 년 만에 제복을 고치고 내용을 손봐서 새롭게 출판한 장르소설이자 판타지(YES 24)'라고 나와 있었다.
플롯: 주인공은 초등학생으로 추정되는 소년이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나온다. 어느 날 하교 후 책을 반납하러 시립 도서관에 들렀다. 소년은 반납 후 책을 빌리고 싶다는 말을 건네고 무표정의 사서는 지하로 내려가 107호 방으로 들어가라는 대답을 한다. 처음으로 가 본 107호, 어둡고 음산한 그곳에는 스산한 분위기의 노인이 앉아 있다. 소년은 찜찜한 기분이지만 그냥 돌아가려고 하고 노인은 끈질기게 아이를 붙잡고 원하는 책을 구해주겠다고 설득한다. 소년은 별생각 없이 머릿속에 맴돌던 주제를 떠올리고는 오스만 제국의 세금에 관련된 책을 읽고 싶다고 한다.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노인은 세 권의 두꺼운 책을 찾아왔는데 모두 대출 불가 딱지가 붙어 있다. 소년은 오히려 잘 됐다며 표식을 보자마자 그냥 돌아가려 하지만 노인은 예의범절도 없는 못된 아이 취급을 하며 화를 낸다.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의 소년은 노인의 지시에 따라 책을 읽고 가겠다고 대답하고는 노인을 따라 '독서 방'을 간다. 그 방을 가는 길에는 복잡한 미로가 있었고 문 앞에는 소위 '양 사나이'가 있어 소년을 맞이한다. 양 사나이는 소년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내고 노인에게 너무 어린아이 아니냐며 약하게 항의한다. 노인은 크게 화를 내며 양 사나이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복종을 강요한다. 할 수 없이 독서 방에 들어간 소년은 그곳이 감옥이나 다름없음을 깨닫는다. 침대, 책상, 세면대와 변기뿐이다. 그곳에 소년을 가두고 노인은 명령한다. 그리고 한 달 안에 세 권의 책을 모두 외울 때까지 나갈 수 없다고 말한 뒤 나가며 문을 잠근다.
소년은 양 사나이에게 묻는다. 노인이 왜 이런 짓을 하냐고. 양 사나이는 한 달 후 소년이 책을 다 외우면 노인이 소년의 뇌를 먹기 위해서라고 한다. 노인의 논리에 따르면 지식이 쌓인 뇌는 엄청 맛이 좋기 때문이라며…
이 이야기에 중요한 캐릭터가 좀 더 나온다. 큰 영향력은 없지만 집에서 걱정하고 있는 소년의 어머니, 그리고 소년이 애지중지 키우고 있던 작은 찌르레기 새와 소름 끼친 인상의 거친 개가 있다. 하지만 소년은 돌아갈 길이 없고 충격에 눈물만 날 뿐이다. 유일한 낙은 가끔 찾아오는 이름 모를 착한 소녀와 직접 도넛을 만들어 오는 양치기 사나이의 방문뿐.
다른 서평에서도 언급했지만 디스토피아 소설이라도 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열린 결말이라고 모두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 우리에게 뭔가 전하는 강력한 메시지나 경고와 같은 호소력이 있다면. 그곳에서도 따뜻한 인간애와 희망이 있다면 말이다.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은 있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무조건적인 희생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소년이 그 도서관을 탈출한다 해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은 너무 많았다. 선악이 분명한데도 아무런 조치나 결론이 나지 않아서 답답한 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소년의 말처럼 아직도 알 수 없는 이유로 또 다른 희생자가 예상되는 비극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했다. 감히 작가와 작품을 평하고 싶지는 않다. 그럴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무조건 긍정적인 찬사를 보내는 것도 위선이자 거짓이지 않을까? 문학은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