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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Jun 12. 2024

서평: A LITTLE PRINCESS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견하다


TITLE: A LITTLE PRINCESS(번역본: 소공녀/작은 공주 세라)


PUBLISHED in 1905(First Published)


PUBLISHER: First published in Puffin Books 1961


AUTHOR: Frances Hodgson Burnett(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어릴 적 명작 만화 동화 프로그램에서 처음 접했던 고전 중에 하나다. 늘 <소공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내용을 정리하면서 <작은 공주 세라>(월북, 2019년)라는 새로운 제목과 양장판 세트로 나온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의미상으로 별 차이가 없지만 소공녀의 어감보다는 좀 더 현재에서 자연스럽게 들리는 듯하며 좀 더 구체적인 느낌이 든다. 원문에서도 그냥 '공주 prince'라는 명칭을 써서 내용을 읽어보기 전까지는 어느 공주의 이야기로 혼란을 줄 수도 있으니까. 소위 '걸 컬렉션 세트'(The Puffin in Bloom Collection)가 너무 예뻐서 사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다. 앞면만 보면 아기자기한 동화 같지만 '작은 아씨들' 원서 한 권만 보아도 무려 777쪽에 이른다. 



작가 소개: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던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 작가이다(1849-1924년) '작은 공주 세라'도 꽤 유명한 작품이지만 이에 못지않게 잘 알려진 소설 <비밀의 화원>이 있다. 몇 년 전 드라마 'Secret Garden'를 즐겨 본 사람은 최소한 제목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사건의 발단과 전개: 세라는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부유한 군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일 때문에 먼 곳으로 함께 갈 수가 없어서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사설 교육기관인 여학생 기숙사에 맡겨진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똑똑하고 예의 바른 세라는 엄마와의 추억이 없는 외로운 소녀이기도 했다. 독서와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신분에 상관없이 늘 상냥한 세라는 기숙사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세라는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된다. 잇속에 밝은 민친 원장(Miss Minchin)은 거지나 다름없는 세라를 다락방으로 내쫓는다. 온갖 수모를 겪으며 학생과 하녀 사이의 애매한 위치에서 세라는 충격으로 눈물도 제대로 흘리지 못하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데…….



* 기존의 생각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성인이 된 후에도 <소공녀>는 <빨간 머리 앤>이나 <작은 아씨들>에 느꼈던 것처럼 그리 애틋하지는 않았다. 착하고 반듯한 아이로 성장한 세라가 하루아침에 공주와 같은 대접을 받다가 하녀 취급을 받게 된 게 불쌍하긴 했다. 하지만 세라를 도우며 우정을 나누는 또래 친구가 있었고 우연히도 자신이 지내던 다락방에 가까운 이웃이 하필 부잣집이었다. 우연히 베푼 친절로 그곳의 하인이자 인도인과 친구가 되어 지내다가 주인과도 만나게 되었는데 마침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로 세라의 재산을 대신 관리하고 있었다. 결국 다시 부자가 된 세라는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되고 해피엔딩에 박수를 보냈지만 아무리 아동 소설이라도 너무나 환상적이 결말이 현실에서 보기 힘들어서일까? 잘 되었는데 오히려 김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 그러다 문득 원서를 접하고 싶었다. 최근 몇 년간 고전 읽기를 하면서 종종 시도하는 독서법으로 왠지 끌리는 작품들이 있다. 북튜버들의 소위 고전 추천 목록에 심심찮게 나온 작품이라서 더 도전하고 싶었다. 300쪽에 달하는 책은 아동 서치고는 꽤 양이 많은 편이라 놀랐다. 이런 경우 부담을 느껴서 해당 원서 읽기를 미루기도 한다. 하지만 꾸역꾸역 읽기 시작해 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세라의 다양한 에피소드와 전개를 접하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갔다. 아름다운 동화 같은 결말보다 세라라는 캐릭터의 매력을 원전 그대로 느끼며 미소를 짓기도 하고 탄식하기도 하며 읽은 날이 떠오른다. 



 * 원서의 원제를 다시 살펴보자. A Little Princess. 진짜 공주는 아니지만 그녀는 늘 '공주'로 통했다. 부유한 아버지가 계셨을 때는 물론, 하녀가 된 다음에도 여전히 '공주'로 불렸다. 세라와 인연을 맺으며 따뜻한 인간의 정을 느끼게 되는 캐릭터들이 몇몇 있었다. 특히 민친 원장에게 홀대받고 모욕을 당하곤 하던 베키라는 어린 하녀를 세라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부자였던 때 민친 원장 및 또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온갖 아부와 거짓 칭찬을 들었지만 세라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세라의 생일파티 자리에조차 있을 자격이 없다며 베키를 내쫓으려는 민친 원장 앞에서 베키를 두둔하며 베키도 함께 파티를 즐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이 일은 단순히 세라의 착한 심성이 드러난 일상으로 여길 수 있지만 베키에게는 잊지 못할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자신과 다름없는 신세, 아니 더 낮은 상태가 되어버린 세라를 대하며 자신에게는 세라가 영원히 공주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민친 원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이유로 세라는 수시로 벌을 받는다. 한참 잘 먹고 잘 자야 하는 나이에 세라가 받은 벌 가운데 하나는 식사 등 음식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온종일 굶어 힘든 순간을 보내고 있던 세라는 우연히 길가에 떨어진 4펜스 동전을 발견한다. 마침 눈앞에 보이는 빵집으로 달려가지만 세라는 잠시 망설이더니 차분하게 빵집 주인아주머니에게 묻는다. 혹시 돈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지 않냐고. 빵집 주인은 그 돈의 주인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 말하고 세라가 주웠으니 마음껏 사용해도 될 것이라 말한다. 원래 4펜스에 빵 4개를 살 수 있었지만 마음씨 좋은 빵집 주인은 6개를 건넨다. 빵을 막 먹으려던 세라는 며칠은 굶어 보이는 거지 여자아이와 마주친다. 너무나 배가 고프지만 배고픔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거지 아이에게 빵을 건넨다. 하나만 주어도 될 것을 하나, 둘, 셋… 허겁지겁 빵을 먹느라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거지 소녀를 보며 세라는 생각한다. 



   '저 아이는 나보다 더 배가 고파. 굶어 죽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니야.' 



  그러고는 자신이 먹을 빵 한 개만 남기고 다섯 번째 빵조차 거지 아이에게 건넨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자신도 하층민인 상태로 전락한 상태에서 그보다 더 아래에서 고통받는 사람을 생각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이런 선행뿐만 아니라 세라는 돈의 여부에 따라 자신을 다르게 대하는 민친 원장 앞에서도 당당한 태도를 잃지 않고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할 때면 단순히 '걸크러시'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용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민친 원장 앞에서 세라의 언행은 절대 비굴하지 않았다. '원장님은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라며 차분히 말하는 세라. 세라의 이러한 언행은 비현실적으로 완벽해 보이면서도 세속적이면서 소인의 마음을 품고 있는 어른조차도 부끄럽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대놓고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해 말아야 해'라고 말하며 대놓고 입바른 소리를 하며 교훈을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한 울림이 있었다. 그 무언가 감동과 통찰을 맛보는 순간을 겪는 것, 그게 바로 문학이 지닌 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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