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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Jan 23. 2024

내 남편의 남자

일상, 쓰다.


남편은 원래 꾸준히 좋아하는 연예인이 없었다. 굳이 꼽자면 10월 31일이 되면 이용의 10월의 '잊혀진 계절'(제목은 맞지만 문법적으로 틀리다고 한다. 이중 피동이라 원래는 '잊힌' 계절이라고 해야 한다: 어문 규정)을 매년 들었고 가끔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와 같은 노래나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들은 정도였다.



2020년 미스터트롯 초대 진(眞), 임영웅과 그의 노래를 듣고 나서 남편은 임영웅의 모든 것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타고난 목소리와 호소력 짙은 노래, 사연, 기구한 사연을 간직하고 성실히 살아온 그의 인생, 가족, 말투, 얼굴의 흉터까지.



팬클럽 가입은 기본이고 멜론차트 순위를 위해 24시간 임영웅 노래를 틀어 놓아  노랫말과 리듬을 가족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각인시켰고 주변에도 심지어 임영웅 같은 사람이면 미래의 사위로 전혀 손색이 없다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서도 길어진 코로나 시기로 매주 텔레비전에서 하는 '사랑의 콜센터'를 시청하려고 프로그램이 있는 날은 웬만하면 일찍 퇴근하기까지 했으니까. 



2022년 첫 단독 콘서트를 가려고 표를 구했을 때는 너무 기뻐서 집이 떠나가라 광고를 하고 다녔다. 나한테는 묻지도 않고 임영웅을 상징하는 색, 하늘색 팬 티셔츠와 하늘색 모자를 구입했다. 나도 임영웅이 노래를 참 잘한다고 생각했기에 남편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노래를 즐기게 되었다. 



아무리 인기 있는 아이돌 가수도 인기곡이 시들해지면 인기도 노래도 잊히는 경우가 많은데 임영웅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굳이 좋아하지 않더라고 이름을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 인지도, 광고 선호도는 점점 커져만 갔으니까. 남편이 전하는 말을 들어보면 임영웅 가수 자신도 자기가 왜 인기가 이리도 많고 많은 분들이 사랑을 주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자신은 정말 감사할 일이 많은 행운아라고 했다고 한다. 



2023년 임영웅 콘서트가 열렸지만 워낙 표 구하기가 BTS 표 구하기 못지않아서 남편은 매번 고배를 마셔야 했다. 콘서트 표 예매 일주일, 아니 몇 주 전부터 가족, 친지들에게 알리고 서로 표 예매 노하우를 상의하며 집안의 큰 행사 치르듯 예매 일을 손꼽아 기다렸다. 예매 당일은 노트북과 컴퓨터, 핸드폰 등 종류를 막론하고 내게도 미리 연습을 하게 하고 표 예매에 온 정성을 들였지만 쉽지 않았다. 심지어 PC방 컴퓨터가 가장 빠르다며 몇 번 시도하기도 했지만 예매 시간 시작 1초도 되지 않아 매진, 매진, 매진이었고 그때마다 실망한 남편의 표정은 애처롭기까지 했다.



2023년 말, 올해 초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2024년 임영웅 콘서트'(실제로는 23년 콘서트의 연장이라고 한다) 표 예매에 성공했다. 당연히 남편은 만세를 불렀고 나는 그 덕분에 콘서트에 또 가게 되는 행운남의 아내로서 동석하게 되었다. 


       

2년 전 처음 임영웅 콘서트 때를 떠올리며 비교해 보았다. 별로 달라진 게 없을 것이라, 비슷한 노래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상당 부분 이미지와 노래가 달라져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오히려 임영웅의 진행 솜씨와 넉살 좋은 입담 실력은 더욱 성장한 느낌이었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팬들과 함께 하고 팬들을 즐겁게 하는 퍼포먼스는 압권이었다. 최근 우주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임영웅은 우주의 이미지를 많이 사용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한 구절을 인용한 듯한 대사와, 표현으로 신비하고 웅대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아이돌 같은 모습과 춤, 안정적인 보컬 실력은 장르를 불문하고 모범이 될 만했다. 


특히 타 콘서트처럼 다른 가수의 도움을 받아, 혹은 댄스 공연 등을 통해 한참 쉬고 오는 진행이 아니라 더 호감이 갔다. 워낙 많은 노래를 소화해 지켜보는 사람이 걱정될 정도로 목을 혹사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딱 한 번 정도, 그것도 휴식시간을 따로 갖지 않고 '007 시리즈'와 '배트맨' 같은 스파이 영화를 연상케 하는 비디오를 틀어 놓고 잠시 쉬고 온 그는 이런 농담으로 우리를 웃게 만들었다.


"영웅시대 여러분, 제가 쉬려고 한 게 아니고요. 세상을 구하려 잠시 영국에 다녀와서 그랬어요. 순간 이동 기계(time transporter)를 타고요. 투잡을 하느라고요."


뮤직비디오에 영국의 한 술집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고 나서 부른 노래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은 듯한 '런던 보이 London boy'. 발라드와 빠른 템포의 랩도 소화하는 임영웅의 자작곡으로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특히 '셰익스피어, 처칠, 비틀스, 숀 코네리, 해리 포터, 데이비드 베컴 모든 게 있어'라는 부분은 후렴구처럼 반갑고 멋진 부분이라 생각한다. 



임영웅은 노래 중간에 팬들이 함께 자신의 노래를 듣고 즐기는 것 또한 깊은 인연이라며 옆 사람과 늘 인사를 하게 한다. 나와 남편도 임영웅의 권유로 앞뒤 좌우의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중간에 임영웅이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도 있었다. 임영웅은 거의 모든 연령대에 팬이 있지만 아무래도 중년의 여자분들이 가장 많다. 그래서 표 예매부터 콘서트장 동반까지 팬의 자녀들이 도와주는 경우가 많은데 함께 콘서트장에 왔다가 한 여자분의 딸, 또 한 여자 팬의 아들이 인사하다가 인연이 되어 결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 한 분이 이번 콘서트에 또 와서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처음에는 남편의 반강제로 노래를 듣고 함께 콘서트장에 다녔지만 나도 어느새 그의 노래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게 되었다. 극성팬은 아니지만 남편의 남자 노래를 함께 즐기며 대화하는 일상이 싫지 않다. 그 덕분에 한 번 더 웃고 한 번 더 함께 하며 한 번 더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뭔가 함께 한다는 것은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열어주기도 하고 나의 감성을 더욱 풍부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사랑이 식지 않게 해 주는 에너지를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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