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 때 목 씨 집안의 친구를 제외하면 내 자리는 항상 맨 앞이었다. 그리고 대학생 때 장 씨 집안의 친구가 내 앞에 섰고, 더 이상의 예외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도 없다. 맨 앞이라는 것이 불만인 적은 없으나 한 두 칸 재어보거나 가끔 바뀔 수 있는 기회가 없는 것이 불만이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선택은 가장 쉬웠고 내가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기도 했다.
내 키와는 반대로 나는 늘 높은 곳을 좋아했다. 높은 미끄럼틀에서 떨어져 정신을 잃어본 적도 있고, 고소공포증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곳에 대한 갈망은 늘 있었다. 어렸을 땐 누구보다 생각도 크고 야망도 큰 나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 작은 키 때문에 묻혀야 했었고 아무런 힘을 쓰지도 못하는 상황이 늘 분했다. 나는 권력보다도 더 큰 키를 원했다. 하지만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부정하거나 미워하고 싶지 않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적당히 중간쯤 하는 키보다 특별히 작은 내 키를 좋아하게 됐다.
반면에 늘 곁에 있는 남자 친구가 나처럼 키가 작으면 사람들 속에서 같이 묻혀버리는 것 같아서 싫었고, 이러한 이유 때문에 키 작은 사람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적은 거의 없다. (아마도 딱 한번 있었던 것 같다) 키 작은 남자들을 나무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작기 때문에 더 큰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오히려 외모나 성격을 알기 전에 키가 크면 더 호감이 생기기도 했다. 키 작은 여자의 숙명인 걸까,,, 그래도 어느 정도 차이여야 좋지. 또 너무 크면 내 마음대로 뽀뽀도 못하고 목 아프고 손 잡을 때도 내 손이 공중에 떠있고 키 차이가 예쁘지도 않고,, 등등 다양한 이유로 과거엔 특정 범위 안에 들어가는 키가 내 이상형이기도 했다.
(이상형 리스트에 적혀있었던 문구 : 177-180, 정말 정말 잘 생기고 나랑 잘 맞다면 175까지 가능)
그런데 내 생에 가장 키가 큰 187인 오빠를 만났다. (반대로 오빠 생에 가장 작은 나를 만났다.) 부담스럽기도 했고 이렇게 될 거란 생각도 못했는데 다시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봐도 가장 작고 가장 큰 우리가 점점 좋아졌다. 각자가 그래프 양 끝에서 10-20%에 해당하는 극단적 범위에 들어간 것조차 닮은 것 같아서 너무 좋았다. 이게 다 의미 부여하는 것 같지만 (아니라는 건 아니다)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되면 모든 게 다 운명처럼 느껴진다.
오늘도 오빠의 널찍한 품에 쏙 안기는 내가 너무 좋고, 키다리 아저씨 같은 오빠의 기럭지 매력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