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사이의 공백

by 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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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른 사람이다. 어디 가서 "저는 성격 급해요."라는 말을 해본 적은 없지만, 내 삶을 되돌아보면 다른 사람들보단 무엇이든 속도가 빠르다. 특히 속도가 빨라질 때 가속도를 받거나 빠른 속도가 유지되는 것을 좋아하는데 속도가 갑자기 느려진다거나 멈춰버리면 다시 액셀을 밟지 않기도 한다. 내 동기부여가 떨어지기도 하고, 결국은 빠른 속도에서 동기부여가 오는 것 같기도 하다.


반면에 오빠는 느린 사람이다. 속도가 느리다기보단, 여유를 즐기고 여러 가지들을 놓치지 않으려 일부러 천천히 가는 사람.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이다.

나는 속도도 빠르고 궁금한 걸 잘 못 참는 성격이라, 궁금한 게 있다면 바로 답을 들어야 하는데, 오빠는 자신이 궁금한 것보다 상대방의 마음이 열리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저 기다린다. 그리고 조심스레, 눈치 못 챌 만큼 천천히 다가온다. 엄청 값비싼 유리잔을 대하는 것 같다.

최근에 힘든 일이 있었고, 오빠에게 말하지 않은 일이 있었다. 힘들다고만 말했고 어떤 일인지 말하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도 말하지 않았다. 나였다면 어떻게든 분위기를 만들거나 내 이야기를 먼저 해서라도 어떤 일인지 들으려고 했을 텐데, 오빠는 그런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처음에는 그런 태도가 오히려 싫었다. 원래 내 이야기를 잘 못하는 사람이라 무작정 기다리기만 하면 나도 무작정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잠깐이라도 분위기를 잡고,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고, 내가 말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말해야 풀리는 일이었다면 누군가가 상황을 만들어 주지 않더라도 내가 말하지 않았을까, 그때는 푸념에, 부정적인 생각에, 힘들다는 말만 잔뜩 늘어놓았을 텐데, 지금은 시간이 흘렀고 그 일이 해결이 됐고 마음이 안정화돼서 웃으면서 에피소드처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최근에 내가 루미큐브에 빠져 사느라 대화를 많이 못 한 내 잘못도 있지만. 오빠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면 이제는 마음 편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오빠는 나와 반대로 기다리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고.


어렸을 땐 연인관계에서 속도는 같아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짝짝 궁도 잘 맞고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거 같아서?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나는 언제나 빨리 가지만, 뒤에서 천천히 오면서 내가 놓친 것들은 없는지 봐줄 수 있는 오빠가 있어서 다행이고, 또 좋다. 출발하지 않은 사람과 이미 목표에 가까운 사람의 차이는 많이 힘들 수 있겠지만,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내가 조금 앞설 뿐이니까.

오늘도 오빠는 나에게 물었다. "오늘은 일 어땠어?" "오늘 일하면서 힘든 거 없었어?" 나는 이 질문의 의도를 안다. 과거에 나에게 묻지 않아서 오빠에게 말 못 했던 것들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오빠가 무엇을 원하는 지도 안다. 내가 만약 힘든 일 이 있었다면 오빠에게 털어놓고 위로나 응원을 받길 바라는 마음이겠지.


오빠가 천천히 조심스레 나에게 다가오는 것에 참 감사하다. 그리고 언제나 기다려주는 것도 감사하다. 오늘은 별일이 없었지만, 다음에 정말 힘든 일 이 생긴다면 그때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많이 힘들었다고, 오빠의 위로를 받으면 많이 힘들거나 아프진 않을 것 같다. 워낙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라 웬만하면 힘든 일이 잘 없긴 하지만, 앞으로 닥쳐올 시련들이 있다면, 오빠와 함께 이겨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도 든다.


그런 오빠의 존재가 참 든든하고 오빠의 기다림의 매력에 오늘도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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