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 때 여자 가방은 절대 들어주지 않는 남자를 사귄 적 있다. 아마도 흔히 말하는 '남자의 가오'나 '체면' 같은 거겠지.
평소의 나는 '이게 필요하면 어떡하지?', '아마도 이게 필요할 거야'라는 쓸데없는 욕심으로 하나 둘 채우다 가방 크기만큼 물건을 담아버리는 빅백러였다. 읽을 시간이 생기면 읽을 책, 앉아서 글 쓸 일이 생기면 적을 펜이 가득 든 필통과 다이어리, 집에서 갑자기 복습이나 예습이 하고 싶을 때 볼 교과서, 아기자기하고 예쁜 물건들,, 그 결과는 내 승모근을 낳았고, 여전히 맥시멀리스트로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무거운 가방으로 어깨가 급격히 안 좋아졌고 물건을 줄일 수가 없어 가방 크기를 줄였다. 맥시멀리스트를 고친 게 아니라 (금연처럼) 평생 참는 거고, 습관을 바꾸려 노력하는 중이다. 그러나 평생 어떻게 핸드폰, 지갑, 립스틱만 들어가는 가방만 들고 다닐 수 있겠나. 나는 걷기를 정말 좋아하는데 가방이 무거워 걷기를 포기한 적이 많았다. 이런 내가 오빠를 만나고 나서 가방을 무겁게 채우고도 걷고, 오래 걷고, 멀리 걷게 됐다.
처음에 오빠를 만났을 때 오픽 학원을 다닐 때라 평소보다 가방이 무거웠다. 오픽 책, 노트북, 아이패드 프로 12.9인치를 한꺼번에 들고 다닌 적도 있다. 그런데 오빠는 가방을 들어주지 않았다. 하루는 오빠한테 대놓고 말했다. 나는 가방을 가볍게 들고 다니고 싶은데 가끔 꼭 필요한 것들로 무거워질 때면 오빠가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너무 대놓고 들어달라고 해서 당황했을 수도 있는데, 오빠는 흔쾌히 들어줬다.
오빠가 가방을 들어주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오빠를 만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내 가방을 건네는 일인데, 그럴 때마다 항상 고맙다는 마음이 든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무게와 크기와 상관없이 늘 나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가방을 들어준다.
가끔 짐이 정말 많거나 무거운 가방을 들면 오빠에게 종종 물어본다.
"무겁지 않아? 내가 좀 들까? 나눠서 들자!"
그럴 때면 오빠는 항상 "자기 가방 들어주려고 운동하는 건데?"라는 말을 해준다.
매일 운동해서 체격도 좋고 근육도 많은 오빠에겐 내 가방은 내가 느끼는 무게만큼 무겁지 않겠지만, 말이라도 저렇게 해주는 게 얼마나 예쁘고 고마운지 모른다. 이렇게 항상 나를 케어해주고 도와주고 신경 써주는 오빠의 마음이 너무 고맙고 고마워서, 더 애정 표현하고 잘해주고 신경 써주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서로를 더 배려하고 존중하고 사랑하게 된다.
이 자리를 비롯해 오빠의 울그락 불그락 근육에게 아주아주 감사하며, 오늘도 늘 무거운 짐을 들어주는 오빠 힘의 매력에 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