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만 서로를 헐뜯고 상처를 주는 위태로운 관계가 있다. 물론 서로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닐 테다. 과거의 나는 연인이라면 크고 작은 싸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연인 관계에서 싸움은 서로의 다름을 알고 맞춰나가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한 번도 싸운 적 없다는 연인들을 만나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서로를 더 깊게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혼자 빠르게 판단했다.
그러나 사랑 싸움의 끝엔 시작은 없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소한 불씨로 시작해 결코 꺼지지 않는 거대한 불로 번졌고, 그 결과는 서로의 마음에 재로 남았다. 어떻게든 재를 없애려 닦고 또 닦았지만 흔적은 더 퍼져나갔고 서로에게 상처로만 남았다.
오빠와 2년을 만나면서 크게 싸워본 적이 없다. 나의 빠른 판단과 신념이 무너지는 첫 연애였다. 더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서로가 싸우지 않으려 애쓴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각자의 모습 그대로 마주했고,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한다. 싸움은 필요가 없었다.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대화로 풀어나가면 됐고, 모르는 부분은 질문으로 더 알아가면 됐다.
누구보다 주관이 뚜렷하고 주장이 강한 나는 가끔 나도 모르게 톡 쏘게 말할 때가 있다.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내 주관이나 주장을 하다 보면 날카로운 문장이나, 상처받을 수 있는 단어나, 차가운 목소리가 나온다. 보통 이런 포인트에서 상대방 감정이 상하면 싸움으로 번질 확률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으로 번지지 않았던 건, 나의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다시금 나에게 질문하는 오빠 덕분이다.
오빠는 내가 날카로운 문장이나 단어를 쓸 때면 어떤 의미로 이야기하는 건지 다시 물어보고, 내가 그렇게 말한 이유가 뭔지 다시금 묻는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왜 그렇게 생각해?"라고 퉁명스럽거나 무미건조하게 말하지 않고 "오빠가 민경이 말이나 마음을 더 이해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방금 했던 이야기에 대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조금 더 이야기해줄 수 있어?"라고 따뜻하게 질문한다.
나는 오빠를 미워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오빠의 그런 질문과 따뜻한 말을 들으면, 오빠를 사랑하는 나는 그 한마디에 모든 마음이 녹아버린다. 잠깐 내 감정이나 생각에 집중하던 나는 다시금 오빠의 입장과 우리의 상황에 더 집중하게 된다. 싸우려고 애쓰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사실 이 포인트만 잘 넘기면 싸움은 일어날 수 없는 거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받은 상처나 감정에 집중하지 않고 우리의 관계와 대화에 더 집중하는 일. 상대방이 조금 감정이 격해지더라도 그 감정에 맞서지 않고 오히려 다독이고 마음을 가다듬어 주는 일. 명확하지 않은 일이나 상황에 대해 서로의 주장만 하고 있다면 각자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도록 한 번 더 질문을 해주는 일.
우리는 대화를 하고, 감정과 생각을 나눈다. 상대방에게 질문을 하고 그 말을 깊게 경청한다. 그리고 또 질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과 말들로 서로를 오해하지 않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또 알기 위해 더 대화하려 노력한다.
감정 표현에 서툰 나에게 언제나 맞서 싸우지 않고 질문해주는 오빠에게 참 감사하다. 정제되지 않은 서툰 한마디로 서로를 빠르게 판단하지 않고 다시 한번 이해하려 느리게 물어봐 주는 오빠에게 또 감사하다.
오늘도 나를 더 사랑하고 이해하려 한 번 더 느리게 질문해주는 오빠의 매력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