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관찰기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바다처럼 깊고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내가 물었다. 사람의 마음 크기를 어떻게 가늠하느냐고. 누구든 인내하고 참으면 마음의 깊이를 알 길이 없지 않냐고
그렇다. 누군가는 평생 자신의 마음 깊이를 숨기고 살지도 모른다. 허나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던가. 사람마다 다양한 상황에 부딪히는 역치는 천차만별일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한의 상황엔 본성이 드러나는 법이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술에 가득 취했을 때, 힘든 등산을 했을 때, 운전을 할 때가 대표적이다.
누군가를 만나다 보면 상대방이 어떤 것에 예민하고 쉽게 힘들어하는지 알 수 있다. 오빠는 평소에 술을 마시지 않을뿐더러 마시더라도 취할 때 까진 절대 마시지 않는다. 또한 운전을 할 때도 욕 한번 하지 않는 차분한 사람이다. 그런 오빠에게도 2가지 약점이 있었다. 더위 그리고 배고픔.
오빠는 늘 차분하고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어른스럽게 꿋꿋이 잘 이겨낼 사람이란 걸 은연중에 느꼈으나, 심증만 가지고 평생을 약속할 순 없었다. 그래서 부러 힘들고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
우리가 만난 지 10개월쯤, 베트남 여행을 떠났다. 물론 내가 아무리 파워 J라고 하지만, 모든 상황을 부러 계획한 건 아니다. 다만 베트남에 도착한 첫날, 10kg 배낭에, 30kg 캐리어를 든 오빠를 데리고 쉽게 갈 수 있는 택시를 선택하지 않고, 땡볕에 걸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길을 잃어 20분 만에 갈 거리를 40분 만에 도착했다.
오빠는 처음에 박력 있게 앞서서 출발했으나, 점차 걸음이 느려졌고, 온몸이 땀범벅이 되면서 말이 없어지고 표정이 굳었다. 설상가상으로 길을 잃었다는 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나에게 화를 내거나, 욕을 뱉거나 하지 않고 귀엽고 퉁명스럽게 '”하,,, 지도 잘 보지,,, 얼른 다시 가보자!”라는 대답을 했다.
오빠의 대답을 듣고 웃음이 났다. 물론 평소에 절대 보지 못한 무표정이라 처음엔 놀라긴 했으나, 이 사람은 평생 어떤 어려움과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갑자기 헐크나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게 아니라 아니라 딱 이 정도가 마지노선일 거란 생각. 그리곤 이 정도면 내가 평생 감당할 수 있는 정도라는 확신을 했다.
그리고 한 달 뒤 두 번째 해외여행으로 함께 인도 여행을 떠났고, 여전히 내 마음은 변함이 없었고 오히려 평소에 마주할 수 없는 다양하고 많은 상황들을 마주하며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해도 되겠다는 확신으로 인도 여행을 다녀온 후 서둘러 상견례를 했고, 결혼을 했고, 3년째 같이 살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늘 한결같이 마음이 따뜻하고 깊고 넓은 오빠의 매력에 오늘도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