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 축하 파티

by 전대표



주니어에게 제안서 작업이란 미지의 세계와도 같다. 공문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부터, 이해한 것을 토대로 그들이 원하는 맥락을 유추하고, 참신한 크리에이티브를 논리에 맞춰 잘 담아내는 것 말이다. 놀랍게도 한 문장으로 표현해버린 제안서 작업을 위해 우리는 몇 날 며칠을 쏟았다. 맞다. 한 둘이 아닌 우리였다.


내가 몸 담고 있는 이곳의 일하는 방식은 프로젝트 팀 단위로 짜여 있다. 때문에 팀 별 프로젝트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팀이 담당하고 있는 제안서 작성을 위해 온 멤버들이 한 곳에 모였다. 프로젝트 단위로 일하는 다른 회사와 큰 차이가 있다면, 팀이 나눠져 있다고 해서 하나의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과 책임이 온전히 그 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팀에서 어려움이 발생하거나 더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하거나 새로운 관점 및 피드백이 필요하다면 자유롭게 팀의 고민을 전체로 오픈하여 함께 고민한다. 여기서의 핵심은 모든 멤버들이 자신의 업무를 잠깐 내려놓고 이곳에 몰입하며 함께 해결해나가는 과정이다.


재작년 가을, 입찰 금액이 억 단위인 프로젝트 공고가 떴다. K 프로젝트 제안서 작업 PM으론 가장 최근에 들어온 주니어 F와 제안서 작성 경험이 있는 L이 맡았다. F의 책상에는 제안서 관력 책들이 쌓여갔고, 움직이는 화이트보드를 가득 채운진 오래고, 사무실 벽들도 포스트잇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K 프로젝트 제안서가 마무리되는 듯싶더니, 크리에이티브와 실행 단계의 아이디어가 부족한 상황이었다. 점심시간에 F와 R과 식사를 하며 요즘 프로젝트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흐름을 들었고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 재미난 아이디어 던지며 함께 고민했고, 멤버들의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자 급하게 오후 전체 미팅을 잡았다. 10명 남짓되는 멤버들이 각 회의실에 흩어져있다가 사무실로 모였다.


F가 전체 사업 소개 및 지금까지의 제안서 작업 상황, 흐름을 공유해줬고 어떤 부분에서 막혔는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오픈했다. 모든 멤버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각 종 아이디어와 재미난 상상들을 꺼내어 포스트잇에 적어냈고 5분도 지나지 않아 화이트보드를 매웠다. 서로의 아이디어를 통합하고 이해하며 유목화하는 과정을 거쳐 정말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와 실행 방법들이 나왔다. 협업의 시너지 효과를 (또) 맛본 하루였다.


제안서 제출일은 점점 다가오고, 모든 멤버들은 F와 R을 볼 때마다 잘 되어가고 있는지, 어려움은 없는지 틈틈이 물었다. 반대로 요즘 제안 작업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전체 스크럼 시간에 공유했다. 발표날엔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응원했고, 끝난 후엔 한 마음으로 수고했다며 큰 박수를 보냈다. 한 팀의 프로젝트이자 우리 회사의 프로젝트고, 각 멤버들이 함께 일을 하진 않지만 마음으론 늘 함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패찰 했다. 그리고 우린 실패 축하 파티를 열었다.

실패 축하 파티에는 모든 멤버들이 함께 했고, F와 R이 준비해준 PPT에는 어떤 점을 잘했고, 어떤 점이 어려웠으며 부족했는지 두 사람이 전체 프로젝트 과정을 회고하며 나온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두 사람의 성찰을 통해 다른 멤버들은 또 다른 깨달음과 배움을 얻었다.


실패 축하 파티는 그동안 고생한 모든 과정을 위로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소중한 배움을 축하하는 파티였다.

우리의 목표는 억 단위의 프로젝트를 낙찰하는 결과에만 있지 않았다. 우리는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중시한다. 지금의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가능성을 준비한다. 이것이 우리가 함께 일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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