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광활한 우주 속에서도 그 우주가 광활할게 느껴지지 않는 것
밤낮으로 조명을 켜놓은 듯 온 거리가 벚꽃으로 빛나던 따스한 어느 봄날, 부암동 북악산 자락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을 다시 찾았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아직 날이 쌀쌀한 겨울이었는데 꼭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기도 했고 대부분의 작품이 추상화인만큼 조금 더 길고 깊게 감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특히 도슨트 투어가 궁금했는데 김환기 작가에 대한 관련 책들을 통해 알게 된 이야기 외로 조금 더 알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지니까.
대신 도슨트 시작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 혼자 먼저 전시를 관람했다. 왠지 설명과 해설을 듣고 나면 더 이상 나만의 상상으로 작품을 마주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들었기 때문이다. 알고 나면 그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니까. 과연 진실을 아는 것이 더 좋은 것일까 아니면 믿고 싶은 대로 믿으며 사는 게 더 좋은 것일까? 아는 게 힘인지 모르는 게 약인지 정답은 없지만 매번 그 둘을 왔다 갔다 하며 산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관람객이 많지 않았고 덕분에 그림들을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한참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었다. 무언가를 오래 들여다보는 일은 참 가치 있는 일이다. 오래 바라보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점점 더 속도를 맞추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 내가 느린 건지 세상이 빠른 건지 자꾸만 헐떡이게 된다. 한국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천천히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과 달리 모든 것들은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어느 것을 되새기고 소화할 틈도 없이 빨리빨리 자리 비우고 다음 것들로 채우기 급급하다. 모두가 질문에 답을 내릴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 것 같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대답이 즉각 즉각 나올 수 있도록. 머뭇거리는 내가 이상한 것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
점-선-면. 김환기 작가는 점선면화의 대가로 한국적인 소재를 점과 선과 면을 이용하여 추상화시킨 작품들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들을 보며 같은 사물도 그것을 어떻게 확대해서 보는지 풀어서 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온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점-선-면 안에 숨겨져 있는 의미들을 파헤치다 보면 평면으로 보이던 그림이 어느새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우리에게 ‘이야기‘가 필요한 이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아직 김환기 작가가 살아있다면, 그에게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면 이 경험은 얼마나 더 풍부해질 수 있었을까? 그래서 우리는 살아있을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내게는 치매로 더 이상 소통이 어려운 친할머니가 계신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문뜩 슬퍼진 날, 할머니가 온전하실 때 왜 더 묻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후회로 남았다. 삼십 년을 넘게 같이 살았지만 자세히 알려고 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남의 입을 통해서라도 기꺼이 들으려고 하는 이야기들이 있으면서 정작 가까운 사람을 대할 때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가 물어주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전까지는 우리는 언제까지나 점-선-면에 불과하다.
김환기 작가의 작품에는 유독 달이 많이 등장한다. 나는 달을 참 좋아해 핸드폰 앨범에도 달 사진이 유독 많다. 손톱 깎다가 밤하늘로 날아가서 붙었나 싶은 초승달과 손 뻗으면 닿을 것 같은 커다란 보름달을 사랑한다. 캄캄하고 밤하늘에 고요히 떠 있는 달과 사이좋게 동시에 하늘을 나누고 있는 이른 저녁에 뜬 달도 사랑한다. 어릴 적 한국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몰려올 때면 밤하늘에 뜬 달을 올려다보며, 그래도 우리는 같은 달을 바라보며 살고 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던 수많은 밤들이 생각났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작가의 그림에 기원이었다는 말을 들으니 아마 그도 같은 마음으로 달을 그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캔버스를 세우지 않고 테이블 위에 눕힌다음 캔버스 주변을 서서 돌아가며 채워나가는 작업 방식으로 그렸다고 했는데 이 많은 그림들을 어떤 방식으로 작업했는지 듣고 나니 어떤 마음으로 작업했는지, 수많은 점 하나하나를 채우며 그가 쏟아부었던 정신에는 또 어떤 것들이 깃들여져 있을까 하는 질문들로 이어졌다. 신기한 것은 그리움에는 외로움이 따라오기 마련인데 왜 하나같이 다 따듯할까? 작가가 사용한 색감 때문일까? 분명 그의 그림에는 마음을 채우는 힘이 있었다. 그 무엇도 멀게 느껴지지 않고 가까이 와있는 듯한 따듯함이 있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내가 내린 답은 그의 곁에 향안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프랑스나 뉴욕등 주로 한국을 떠나 해외에서 거주하며 활동을 이어가는 동안 김환기의 아내인 김향안은 그가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일심양면으로 그를 서포트했다. 자연을 좋아하는 김환기를 위해 미리 공원이 가까운 집을 마련해 둔다거나 정원이 예쁜 작업실을 꾸며놓는 등 예술을 향한 김환기의 열정만큼 향안은 그의 꿈을 지켜주려 노력했다. 그의 꿈이 그녀의 꿈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손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거나 번역기가 있던 시절도 아니었는데 그런 용기와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사실 미술관을 처음 찾았을 때 기대했던 것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김향안의 시선과 손길이었다. 김환기가 별세한 뒤 죽은 남편의 업적을 영원히 알리기 위해 설립한 이 미술관에서 그녀는 어떤 것들을 강조하고 어떤 것들을 남기고 싶어 했을까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향안의 흔적은 많이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아 있었는데 다시 찾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그 마음이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이구나. 그렇다면 이 그림은 사실 김환기의 그림이기도 하지만 김향안의 그림이기도 하지 않을까. 따로 그녀의 흔적을 찾을 것 없이, 이 미술관은 환기의 미술관이자 향안의 미술관이었구나. 사랑이란 어쩌면 광활한 우주 속에서도 그 우주가 광활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