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비자림

by 앤희
비자림

나무에 기댄다.
빽빽한 숲에 있어도
제 각각 한 그루라서
제 몫의 바람을 찾고
해를 찾아 오르는 일을 견딜수록
밑둥이 굵어지는 나무는
엄마를 찾은 적이 있을까

나무와 말한다.
서로 가지를 뻗어 엉켜있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다르고
제 얼굴만큼 그늘을 만들고
잎이 지고 새순이 돋는 일을 혼자 해내며
어른이 된 나무는
울어본 적이 있을까

나무와 나무 사이 한 자공간은
몇 개의 계절이 채워져 있어서
나무 사이를 통과할 때도
온몸이 숨을 쉬는 것 같다고 말하던

엄마와 첫 여행으로 온 곳이
비자림이라 말하는 친구
엄마와 가장 가까이 있는 기분이라며
제주에 이사와서 매달
한 번씩은 온다는 비자림

한 그루 나무처럼 혼자 크는 법을
일찍 알아버린 친구와
생일마다 함께 와주기로
약속한 비자림

- 허유미 -



죽기전에 꼭 들려야할 세계의 서점 150선에 선정되었다고 하여 제주에서 꼭 들러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한적한 산간 마을에 위치한 이 책방은 이름도 ‘작은 마을의 작은 글들‘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했다.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자, 입구 오른쪽편 작은 벽면을 차지한 커다란 칠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주의 시’ 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니 매주 다른 시를 소개하는 듯했다. 눈에서 눈으로 스쳐지나가는 글이 있는가 하면 눈에서 심장으로 내려와 오래 머무는 글도 있다. 누군가가 손글씨로 적어 놓은 이 시 한편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옮겨 적으면 놓아질까 싶어 일기장에 천천히 옮겨 적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언젠가 엄마가 없는 미래를 떠올려서는 아니었다. 아주 어린 날부터 혼자였을 누군가의 쓸쓸함이, 그 순간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걸어본 비자림을 떠올려 보았다. 온 몸의 세포가 숲의 숨결로 가득 차오르는 것 같았던 곳. 땅에서 올라오는 만물의 생명력이 코끝과 마음을 향긋하게 해주던 곳. 숲을 찾는 이들마다 반짝이는 무언가를 안고 돌아갔을 것 같았던 곳. 그런데 그런 곳에서 누군가는 그리움을 안고 돌아갔구나. 빽빽히 올곧게 자란 늠름한 나무들이 어쩐지 안쓰러워 보였구나. 누구에게는 그곳이 엄마였구나. 시 몇줄에 나는 비자림 숲 한가운데 서버렸다. 그리고 혼자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누군가의 쓸쓸함과 그 옆을 다정히 지켜주는 이가 함께 보냈을 여러해를 떠올렸다.


언젠가 엄마가 없는 미래의 어느 날, 그때의 나는 어디에서 엄마와 가장 가까이 있는 기분을 느끼게 될까.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가본적이 없는 나는 덜컥 겁이나 괜히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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