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독심술‘ 있나 봐!
나는 그동안 다른 사람의 마음을 꽤 잘 읽는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상대의 몸짓, 눈빛만 보아도 상황을 잘 파악했다.
말투만 들어도 그의 기분을 짐작할 수 있었고, 나를 향한 무언의 몸짓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심지어는 그 사람의 감정도 마음도 읽혔다…
한 번은 친구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있는데도 그의 감정 상태를 거의 정확히 맞췄다.
그래서 친구들은 ‘미아리에 가서 돗자리 깔아라’ 하면서 농담처럼 말했다.
“나 독심술 있나 봐! 사람 마음이 보여…”
이 말은 그저 웃자고 한 말로 들렸을지 모르지만, 어느 정도는 진실이었고, 또 이런 자신에 대한 묘한 자부심도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직감이 남다르고, 사람의 내면을 알아차리는 눈을 가졌으며, 타인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스스로를 믿어 왔다.
그런 내가 50대에 선택한 공부가 바로 “심리학”이었다.
뒤늦게 새로운 학문을 배우겠다기보다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였다.
‘심리학개론’ 첫 강의시간에
교수님은 심리학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고 도발적인 질문을 학생들을 향해 던지셨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학생들의 표정은 굳었고 강의실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곧이어 독심술'이라는 단어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때 교수님은 단호하고 비장한 목소리로 “심리학은 과학입니다."라고 말했다.
순간 강의실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교수님의 그 한마디에 강의실의 학생들은 멘붕에 빠졌고 웅성거리던 소리마저 멎었다.
다들 멍한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그동안 독심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충격은 다른 학생들보다 천만 배 더 컸다.
반평생을 사람의 마음을 읽어왔다고 믿었던 나에게 심리학이 아니, 독심술이 '과학'이라니?
도대체 심리학이 왜 과학이라는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그 과학을 말하는 건가?
교수님의 그 한마디는 내 오랜 믿음에 던져진 거대한 의문 부호였다.
심리학이 과학이라면, 눈빛과 말투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나의 능력은 도대체 무엇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내가 해왔던 것은 심리학이 아니었던 걸까….?
그 답은 곧 수업을 통해 명확해졌다.
심리학이 과학이라는 것은, 직관이나 주관적인 경험이 아닌 객관적인 증거를 토대로 한다는 것이다.
가설을 세우고, 체계적인 관찰과 실험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 데이터를 분석하여 인간 행동과 심리의 보편적인 원리를 찾아내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내가 그동안 '독심술'이라 믿어왔던 나의 능력은 오직 내 경험과 감정에 기반한 것이었다.
수많은 시간 동안 쌓인 패턴 인식과 공감 능력이 만들어낸 통찰이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 판단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침묵을 보고 ‘슬픔'이라고 결론 내렸지만, 심리학은 '그 침묵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변수들을 점검한다.
그리고 연구 참여자들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통계적인 유의미성을 검증한다.
심리학은 나처럼 한 사람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원리를 발견하려는 학문이었다.
나의 '독심술'이 단 한 명의 마음에 집중하는 것이라면, 심리학은 수백, 수천 명의 마음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거대한 작업인 셈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독심술'이 통째로 부정당한 기분이었다.
평생 쌓아온 나의 노하우가 한순간에 허상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심리학 강의를 들을수록 깨달음이 있었다.
나의 '독심술'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한 뛰어난 직관이자 공감 능력이었지만, 결코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내 직관은 때때로 틀리기도 했다.
아들의 눈빛을 읽고 지레짐작으로 화를 냈다가 오해였음을 깨닫기도 했고, 친구의 침묵이 슬픔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단순한 피곤함이었을 때도 있었다.
나의 독심술은 내 경험과 편견이라는 필터를 거친 불완전한 예측이었다.
심리학은 그 불완전함을 보완해 주는 학문으로, 우리의 불완전한 직관과 인지적 오류를 보완해 주는 학문이다.
심리학은 '왜' 그런 표정을 지었는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그 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저 사람은 지금 슬프구나'라고 직감하는 것을 넘어,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뇌와 호르몬은 이렇게 반응하고, 이것이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표출되는구나'라는 뇌과학적인 측면과 인간 내면의 심층적 깊이의 근원을 알게 해 준다.
그 후로 나의 독심술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독심술'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세상이 펼쳐졌다.
오랜 시간 나를 가두고 있던 편견의 틀을 벗어던지고, 나는 비로소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더 객관적이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