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사소한 것들과 자신의 작은 승리를 기뻐하는 일을 조금씩 잊어가는 것 같다. 어쩐지 어른에게는 그런 기쁨이 체면 없는 일처럼, 혹은 순진하고 어리석은 일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다정한 독자 여러분이 어떤 방식으로 자라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우리 세대는 나라와 상관없이 비슷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릴 적 나는 학교 성적이 좋다거나 집안일을 잘했을 때처럼 ‘인정받을 만한 행동’을 했을 때에만 칭찬을 들을 수 있었던 기억이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감사나 격려의 말은 점점 사라졌다. 어른이 되면 그 정도는 당연히 해내야 하고, 굳이 칭찬할 일도 아니라는 분위기가 어느새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이다. [세상을 구한 것도 아닌데, 그저 ‘기대받은 기본’을 했을 뿐이니까]
그렇게 나 역시 스스로를 칭찬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성취해야만 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끝없는 성취의 경쟁 속에서 결과로부터는 아무런 즐거움도 느끼지 못한 채. 항상 부족하고, 항상 아직은 충 하지 않다고 느끼면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이주라는 경험을 통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된 것이 있다면, 이 경험이 내 삶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기본 설정값’마저 모두 초기화해 버렸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하나하나 설정해야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오래, 그리고 멀리 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지지와 응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왜냐하면 어른의 몸을 하고 있으면서도 삶은 매일 ‘0’에서 다시 시작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른 언어로 말하는 법을 배우고, 다시 친구를 사귀고, 다시 장을 보고, 정말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이주 초기 몇 달 동안 내 뇌는 이불은 어디서 사야 하는지, 월세집에서 와이파이는 어떻게 연결하는지 같은 아주 기본적인 생활 문제들을 해결하느라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신경이 거의 무너질 것 같았던 순간에 어디선가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 잠깐만,
왜 너 자신에게
모든 걸 한 번에 해내길 바라는 거야?
조금씩, 한 걸음씩 해내는 게
정상인 거잖아 »
정말 그랬다.
그날 이후로 지금까지 나는 내가 살아가는 세상과 나 자신을 ‘작은 승리에 대한 감사’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집 근처 새 식당에 가서 새로운 음식을 먹어봤다면
— 훌륭하다, 새로운 경험이다, 도전한 너, 잘했다.
외국인이 나 혼자뿐인 요가 수업에 가서 모든 설명을 한국어로 이해해야 했다면
— 정말 잘했다, 그대로 계속 가자.
물론 같은 시간에 누군가는
이 모든 걸 더 쉽고, 더 빠르고, 더 잘 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잘하는가’가 아니라, 결국 누가
자신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더 행복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친애하는 독자에게 이 글이 작은 다정한 알림이 되었으면 한다.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스스로를 칭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나는 여전히 ‘큰 성공’이란 행복한 사람이 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P.S. 참고로 나는 한국어 표현 ‘고생 많았다 / 수고 많았다’를 정말 좋아한다. 내 언어에는 이와 같은 무게의 표현이 없어서 그 점이 유난히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