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김에 하나 더 적어보는 MBTI와 치앙마이 여행 일기.
남들보다 훨씬 늦었지만 내친김에 MBTI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더 적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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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 하는 여행을 두려워하지 않는 편이다. 아니 오히려 즐긴다고 해야 할까.
혼자 밥을 먹는 것도 이미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르러 외국에서 혼자 애프터눈 티를 즐기거나 뷔페 요리를 먹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
혹자는 내향적인(Introvert) 인간이 그런 것들이 가능한 게 이상하다 말하지만, 여하튼 그렇다.
치앙마이(Chiang Mai)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2시쯤이었다.
공항에서 짐을 찾고 동남아 여행의 필수 애플리케이션인 그랩(Grab)으로 택시를 부르고 숙소에 도착해 한숨을 돌리고는, 점심 먹을 시간도 없이 바로 호텔 로비에서 약속시간 보다 20분은 먼저 나와서 야간투어 픽업을 기다렸다. J인 것에 비해 이번 여행에 계획을 세심하게 세운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치앙마이 여행을 둘러보다 꼭 하고 싶은 투어가 있어서 미리 예약해 두고 온 것이었다.
나는 여행지에 높은 곳을 올라가 전체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유럽여행에서는 걸어서든, 푸니쿨라를 타고서 든 높은 전망대나 혹은 언덕, 종탑에 올라가 시내를 내려다보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그것이 야경이라면 더욱더 마다할 이유가 없다.
치앙마이에는 도이수텝(Wat Phra That Doi Suthep)이라는 유명한 사원이 있다. 시내에서 15km쯤 떨어진 해발 1,073m의 산 정상에 있는 사원인데, 그 사원 자체도 아름답지만 거기서 내려다보는 치앙마이 야경이 정말 아름답다.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 이동시간이나, 기동성을 고려해 투어를 신청해 두었다. 아무리도 도착한 날이라 피곤할 것도 같았고.
도이수텝 야간투어는 기대만큼 좋았다.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사진도 정말 잘 찍어주는 가이드도 좋았고, 무엇보다 멀미가 날 정도로 구불구불 올라가는 산길이라는 리뷰에 진짜 멀미를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생각보다는 괜찮았다. 한국에서 유명한 투어라 그런지 10여 명의 여행객들 대부분은 한국사람이었다. 연령대도 다양한.
투어가 끝나면 각자의 숙소에 다시 데려다주는데, 크게 동선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원하는 곳에 내려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야시장이나 원하는 레스토랑 같은 곳이다. 아무래도 저녁 먹을 시간이다 보니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다.
외국에서는 더욱더 끈끈해지는? 한국인답게 어느새 삼삼오오 모여 저녁을 같이 먹자는 이들이 생긴다. 나처럼 혼자 온 또래의 남자분과 조금 더 어린 여자분과(보험 때문에 생년월일을 적어내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 알게 되었다.) 투어 하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 여행자들은 벌써 치앙마이에서 일주일 이상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이들과 자연스럽게 혼자 하는 여행을 이야기하다가 혼자 여행하다 보니 먹어보기 힘들었던 태국음식인 무껍(Moo Krab)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항아리에 바삭하게 구운 삼겹살로 유명한 무껍집이 화제가 되었다.
두 사람은 같이 무껍을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나는 이미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에 지쳐 있었다. 투어 하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 대화에 임했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해지고 있었다. 오늘 도착해서 피곤하다는 거짓만은 아닌 핑계를 대고 혼자 숙소에 돌아온 시간은 저녁 8시쯤이었던 것 같다.
기내에서 먹은 점심 이후로 먹은 음식이 호텔 미니바에 있던 감자칩이 전부였기 때문에 배가 고팠다.
다시 그랩(Grab)을 열어서 음식을 주문해 보기로 했다. 인스타그램의 태국친구 스토리에서 본 음식인데 수끼(Suki)였다. 수끼는 샤부샤부와 비슷한 음식이지만, 국물 없는 수끼인 수끼 햇은(Suki Haeng) 고기나 해산물, 야채, 당면등을 굽거나 볶듯이 조리하고 자작한 소스와 함께 비벼주는 것이다. 마침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로비에서 배달하시는 분을 만나 음식을 건네받기까지 30분쯤 걸린 것 같다. 와~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우리나라와 정말 다를 게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서 기다리면 1시간을 족히 기다려야 하는 맛집이었는데, 정말로 "맛집"이었다.
은은한 숯불향이 나는 돼지고기와 당면, 버섯과 야채까지 듬뿍, 소스도 완전 내 스타일이었다.
물론 사람들과 어울려 거부할 수 없는 숯불향 가득 베인 항아리에 구운 삼겹살을 먹어도 좋았겠지만, 하루를 마무리하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나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경험이었다.
먹으면서 천천히 하루를 기록하고, 간단한 감상도 적고, 경비도 계산하고.
나를 위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직장동료 중에 누가 봐도 E(Extrovert)인 친구가 있는데, 내가 혼자 여행한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혼자 다니냐고. 자기는 절대 혼자 못 다닌다고 한다. 문득 궁금해졌다. 어디에 내놔도 똑 부러지는 야무진 친구이고, 누구보다 사교성이 좋아 아무하고도 곧잘 어울리는 이 외향적인 친구가 왜 혼자 하는 여행이 불가하다고 얘기하는지. 하지만 곧 그 친구의 대답에 과연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여행의 즐거움을 나누고 수다 떨어야 하는 일행이 없다면 결코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E성향의 사람들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멋진 광경을 보아도 함께 나눌 친구가 없다면, 잠자리에 들어 하루를 마치는 순간에도 시시콜콜 행복했던 일들일 공유할 수 없는 친구가 없다면 여행이 즐거울 수 없다는 E의 주장을, 하루 종일 한 마디도 안 하고도 여행할 수 있는 I로서는 100% 이해할 수는 없지만, 또 다르기에 그럴 수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