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패션후르츠(Passionfruits) 좋아해.

태국(Thailand), 치앙마이(Chinang Mai)

by 작은 행복

치앙마이의 올드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갈만한 곳을 찾다 보니 반캉왓(Bann Kang Wat)이 괜찮아 보였다. 이곳은 흔히 예술가 마을(Art village)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아기자기한 소품샵과, 공방, 카페나 식당 등이 모여있어 볼만한 것이 많다.

치앙마이의 3월은 엄청 더운 것을 전날의 경험으로 이미 알았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는 천천히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오픈 시간보다 약간 일찍 도착했는데도 사람들이 입구에 조금 모여있었다. 소문대로 정말 아기자기하고 이쁘고 귀여운 볼거리들이 많다. 기념품으로 간직할만한 소품들도 있었지만, 실생활에 쓸만한 그릇이나 커트러리 같은 것도 있고, 의류나 작은 식물들도 있었다.

막상 둘러보니 미리 예약을 해서 공방을 이용해 뭔가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신나게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했을 뿐 딱히 이거다 싶은 것은 없었다. 아마도 내가 쇼핑에 관심이 별로 없기도 하고, 뭔가 '치앙마이스러운' 것을 사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지나고 나니 도자기로 만든 작은 고양이라도, 맘에 들었던 작은 풍경이라도 하나 살 걸 하는 생각이 든다.


나오는 길에 입구 쪽에 있는 아이스크림집에서 자두맛 사베트로 당충전을 하고, 근처에 가보고 싶었던 카페로 천천히 걷기로 했다. 도보로 10분쯤 걸어야 하는 거리였는데 이미 해가 하늘 한가운데 있을 때라 잠깐 망설였지만 쉬엄쉬엄 동네 구경이나 하면서 걷기로 했다. 근데 주변이 진짜 시골길이라 볼게 별로 없...

가는 길에도 유명한 카페가 하나 있는데, 야외에서 작은 인공호수가 있는 실외 공간이 예쁜 곳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사람 많은 곳을 피해 가고 싶었던 터라 그냥 지나쳐서 도착한 한적한 카페는 페이퍼 스푼(Paper Spoon)이라는 곳이다. 주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카페 겸 쇼핑공간인데, 정말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아마도 바깥 분은 태국인, 아내 분은 일본분 같이 보였는데, 아내분이 영어를 잘하시는 듯하다. 공간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서 아내분이 직접 만드신듯한 의류나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작은 드레스룸 같은 공간과 야외에서 주문하고, 차를 마시는 공간, 그리고 2층에 마치 시골 다락방 같은 공간 등이 있다. 마침 손님이 나뿐이었는데, 사장님들의 허락하에(물론 신발은 벗는다는 조건으로) 각 공간들을 잠깐씩 둘러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음료를 주문하고 올라간 2층에서는 덜덜 거리는 낡은 선풍기 소리와, 닭 우는 소리,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는 소리,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음악소리, 조용한 시골 풍경이 조금은 지친 여행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메뉴는 커피와 차(Tea), 소다(Soda), 그리고 특이하게도 라씨(Lassi)가 있고, 간단한 스낵들도 있는데, 그중에서도 패션후르츠(Passionfruits) 소다와, 라씨가 눈에 띈다. 이곳을 찾아보고 싶게 했던, 우연히 발견한 인스타그램의 소개에는 패션후르츠 음료를 꼭 먹어보라고 추천하고 있었다.

나는 과일을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다. 내가 굳이 먹지 않는 과일이 있다면 말린 크랜베리와 건포도, 용과와 패션후르츠이다. 말린 크랜베리나 건포도는 그 식감도, 뭔가 응축된 듯한 단맛도 좀 거북하게 느껴지고, 용과와 패션후르츠는 도무지 무슨 맛인지 모르겠어서이다. 아니 어떤 고유의 맛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랄까.

소개 글을 보고 오기는 했지만, 주문할 때 살짝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껏 마셔왔던 패션후르츠 음료들은 하나같이 괜찮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취향을 믿어보기로 했다. 뭐 여행지에서는 가끔 그 믿음에 배신당하기도 하지만, 그런 작은 모험도 여행의 묘미이니까.

소다류의 음료는 아마도 우리네 에이드쯤 되지 않을까 싶어 패션후르츠 소다를 주문해서 받아 들고는 2층 좌석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한 모금 마시는데.... 와. 모든 것이 완벽하네...

'엇, 패션후르츠가 이런 맛이구나?!' 띠용.

더운 날씨에 뜨거운 태양아래 한참을 걸어서 일지, 아님 낮잠이라도 한숨 자고 싶을 정도로 아늑한 분위기에 취해서인지, 사장님의 특별한 레시피 때문인지. 내가 지금껏 몰랐던 그 맛을 어떻게 느끼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맛을 알게 해 준 음료를 한 잔 더 마실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음료를 추천해 준 이름 모를 인스타그램 친구에게 감사하며, 또 하나 새로운 즐거움을 알게 해 준 이번 여행을 참으로 오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조용히 그 공간에서의 잊을 수 없는 시간과 소리를, 공기를, 냄새까지도 천천히 온전히 혼자서 음미하고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걸으며 속으로 외쳐본다.

" 나 이제 패션후르츠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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