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랭 맛집, 그까짓 거.

태국(Thailand), 치앙마이((Chiang Mai)

by 작은 행복

치앙마이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서 미리 찾아둔 로컬음식점 중에서 한 곳을 정해서 걸어가 보기로 했다. 숙소에서 천천히 걸어가도 5분 정도 걸리는 곳에 로컬맛집이 몇 개 모여있는데, 대부분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고, 아침 6시부터 문을 여는 곳도 있다. 그중에는 미슐랭 맛집도 있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가고, 주로 치킨덮밥을 먹는 것 같았다. 미슐랭에서 추천하는 곳이라니 한 번 가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는데, 글쎄, 그날은 왠지 허연 백숙 같은 치킨이 올라가 있는 치킨라이스보다는 돼지고기 튀김 덮밥이 더 당겨서 그 옆에 있는 음식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아마 덜 익은 것을 먹으면 배탈이 잘 나는 예민한 장탓에 입맛이 당기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구글지도로 찾아보니 가고자 하는 식당의 평점이 오히려 미슐랭 식당보다 나은 것을 보니 실패는 하지 않겠다 싶은 마음도 있었다.

문제는 내가 지도를 봐도 가끔 길을 헤매는 지독한 길치에, 방향치라는 것과 내게는 태국어가 그저 알 수 없는 그림이라는 것이었다. 구글지도에는 분명히 바로 옆집으로 나와있는데 같은 라인에 비슷하게 생긴 음식점이 4개쯤 붙어 있었다. 간판을 아무리 봐도 구글지도가 가리키는 곳이 어딘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또 이쪽에서 오른쪽 두 번째인지, 왼쪽인지 지도를 봐도 알쏭달쏭. 그 앞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 맞다 싶은 가게에 들어가서 간판사진을 보여주고 물어보기로 했다. 그때까지 내가 만난 모든 태국인들은 한 두 마디쯤 한국어를 할 줄 알았고 완전 로컬로 보이는 사람들도 엄청 친절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가게 입구에 들어섰을 때, 식당 안은 이미 여러 손님들과 바쁜 직원들로 분주했고, 입구 앞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한 노인이 앞치마를 하고 장승처럼 서 있었다. 그런데 이 노인은 여태까지 내가 본 태국인과는 전혀 다르게 뭔가에 잔뜩 화난 표정을 하고는 나를 거의 째려보고 있었다. 보통 여행지에서 잘 주눅 들지 않는 편인데, 어쩐지 이 노인에게는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아 쭈뼛거리며 사진을 보여주고, 여기가 맞는지 영어로 물어봤다. 노인은 여전한 표정으로 가까운 테이블을 가리키며 의자에 앉으라는 체스처를 했다. 나는 좀 험상궂게는 생겼어도 역시 잘 알려주시는구나. 여기가 맞는가 보다 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의자에 앉았다. 조금 있다가 직원이 한국어로 된 메뉴를 가져다주는데(어떻게 아는 건지 모르겠다. 한국사람인지 단박에 알아보다니), 식당이름이 내가 찾던 곳이 아니었다. 메뉴를 보니 이곳이 바로 그 미슐랭 맛집이었다. 나는 망설이면 더 실례가 될 것 같이 직원에게 미안하다고 내가 찾던 곳이 아니라고 하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고 아직도 입구에 서 있는 그 노인에게도 미안하다고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그 노인은 아까보다 더 험상굿은 표정으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노인의 눈총을 뒤통수에 달고 부랴부랴 옆집으로, 내가 찾던 식당에 앉아 한숨을 돌리며 메뉴를 주문하고, 조금 화끈거리는 얼굴을 식히려 시원한 타이티(Thai Tea)도 한 잔 주문하고, 조금씩 평정을 찾고 보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싶은 생각에 갑자기 울컥해졌다. 나는 그저 길을 잘 모르고, 태국어도 모르는 외국인일 뿐인데, 뻔히 사진을 보고도 다른 곳을 안내해 주고, 사과하고 나올 때까지도 내내 나를 노려보던 그 노인에게(아마도 사장님인 듯) 막 따지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그때 아주머니가 얼음이 가득한 타이티를 먼저 건네주신다. 시원하고 달달한 타이티 한 모금을 쭉 들이키고 나니, 까짓것 뭐 어때 여기서 맛나게 먹으면 됐지 싶은 생각이 들며 배시시 웃음이 난다. 들어올 때부터 사람 좋은 웃음으로 자리를 안내해 주신 사장님과 아주머님은(사실, 관계는 잘 모르겠다. 모자母子사이 같기도 하고, 그저 사장님과 직원 같기도 하고) 치앙마이 어디서나 보았던 수줍은 듯 친절한 태국사람들 그 자체였다. 아주머니는 음식을 가져다주실 때도 수줍게 웃으며 어서 먹으라고 해 주신다. 아주머니보다 조금 더 말이 없어 보이는 사장님은 일부러 오셔서 양념장통을 접시 가까이 밀어주시며 같이 먹어보라며 손짓을 하시고는 다시 뜨거운 솥 앞으로 가신다.

20250315_072653.jpg 까오무껍식당의 돼지고기 튀김 덮밥, 타이티를 포함해도 80바트면 먹을 수 있다.

주문한 돼지고기 튀김 덮밥은 제법 성공적이었다. 사장님이 슬쩍 밀어주고 가신 양념장을 더해 먹으니 더 완벽해지는 맛이었다.(자신 있게 권하실만했음.)

바삭하고, 달달한 고기와 밥을 한술 떠 넣고, 진한 육수를 한 모금 먹으니 그야말로 도파민이 싹 도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나는 타이티를 여기서 처음 먹어봤는데, 평소에는 단 음료를 잘 마시지 않고, 우유가 들어간 음료도 싫어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매력에 빠져서 여행 내내 식사 때마다 타이티를 잊지 않고 주문해 마셨다.

나에게 불친절했던 그 노인이 아니었다면 아마 평소에 나는 마시지 않았을 메뉴인데 말이다. 이런 게 또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예측할 수 없었던 우연한 행복이겠지.

행복하게 배를 두드리며 식당을 나오는 길에 주인아저씨와 아줌마를 향해 웃으며 엄지 척을 들어주고는 옆집을 한 번 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미슐랭 그까짓 거. 뭐 여기도 맛만 있구먼! 친절하기까지 하고!

(물론 모든 미슐랭맛집이 그까짓 거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개인적인 경험이고 내 기준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었을 뿐.)

그렇게 치앙마이에서의 또 다른 하루를 즐겁게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작은 사건에도 불구하고 그다음 날 그 옆옆집에 어묵국수 먹으러 갔을 때도 헤맨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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