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집에 가자.

간장게장 먹다가 오열할뻔한 이야기.

by 작은 행복

얼마 전부터 엄마가 간장게장이 먹고 싶다고 하셨다. 여름이 시작되고 한동안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잘 못하셨는데, 어느 날 TV에 나오는 간장게장 먹방을 보시고는 이후로 며칠 동안 간장게장 얘기를 하길래 월차를 낸 김에 엄마를 모시고 팔당으로 간장게장 맛집을 찾아갔다.

사람 많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기도 하고, 늦잠 잔 김에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이 문을 여는 시간에 거의 맞추어서 식당에 도착했다. 평일인 데다, 막 문을 연 시간이라 큰 식당 안에 손님은 우리와 내 등뒤에 앉아있던,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여자 두 분뿐이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면서 우리가 모녀사이라는 걸 알게 된 식당 이모님이 "오늘은 모녀분들이 오시는 날인가 보네." 하면서 웃으시길래, 내 등뒤에 손님들도 모녀사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모님은 모녀사이가 보기 좋다며 한 사람당 한 마리씩 주는 간장게장을 한 마리 더 추가해서 반으로 자른 간장게장 여섯 쪽이나 내어주셨다. 평소 같으면 너 많이 먹으라면서 내게 간장게장을 더 많이 밀어주셨을 엄마인데, 그날은 달랐다. 내가 살을 발라준 다섯 쪽의 간장게장을 모두 밥에 비벼서 너무도 맛있게 드신다. 평소 반도 못 드시던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내실 기세다.

"울 엄마 간장게장이 진짜 먹고 싶었나 보네. 많이 잡숴~"라고 했을 때야

"아이고, 내가 다 먹은 거 아니냐? 얘 더 시켜 먹어라, 응?" 하신다.

"아냐, 엄마 살 발라주고도 살이 많아서 나도 많이 먹었어, 안 짜고 맛있네. 얼른 찌개도 잡숴봐."

더 시켜라, 아니다 서로 작은 실랑이 끝에 같이 나온 찌개를 한술 뜨는데, 뒷자리 모녀분의 대화가 들린다.

그 테이블은 아마도 찌개를 주문하고, 반찬으로 양념게장을 받으신 듯하다.

"엄마가 양념게장을 이렇게 좋아하는 줄 몰랐네. 찌개가 아니라 게장을 시킬걸 그랬나 봐."

"응, 맛있네, 맛있어. 근데... 우리 그냥 집에 가면 안 될까? 거기 밥도 비싸지? 니들 돈도 많이 들잖아. 나 우리 집 가면 혼자 밥 해 먹을 수 있는데."

순간 엄마도 나도 말이 없다.

"거기 밥 안 비싸, 그리고 이제 엄마 혼자 밥 못해 먹잖아. 하루 종일 혼자 어떻게 있으려고 그래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거기 있어야 엄마도 좀 편하게 쉴 수 있고, 우리도 안심이 되지. 내가 또 모시고 나와서 맛있는 거 먹고 데이트하고 그럴게."

"..."

내 등뒤에 모녀는 들어올 때 얼핏 보기로 우리 모녀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기는 했다. 아마도 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 식사를 하는 중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머니는 다시 돌아가셔야 하겠지. 자식들이 돈을 많이 쓰는 것도 싫으시고, 익숙한 자신의 집에서 지내고 싶으신 어머니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그 어머니의 마음을 딸이라고 모를 리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를 보내야만 하는 딸의 쓰린 마음 또한 알 것만 같아서 순간 목이 메었다.


요양원에 부모님을 모시는 얘기는 이제 남의 집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님이 쇠약해지시고, 한없이 작아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상상하기도 싫지만, 언젠가는 우리 집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고 어느새 친구들 사이에서도 종종 모임의 화두가 되었다. 사회도 점점 요양원에 부모님을 모시는 자식들을 예전처럼 고려장 하는 나쁜 자식들로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든 안 하든, 하루 종일 한 사람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케어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이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정말 그래야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마음은 그것을 알고 있는 현실과는 또 별개의 문제이다.

엄마는 평소에 얘기했었다. 당신은 스스로 근처 종합병원에 가서 생명연장을 거부하는 동의서를 썼으며, 자식들을 고생시키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으니, 더 이상 어쩔 수없어 요양원에 보내는 되면 절대 미안해하지 말라고. 그때마다 나는 그깟 동의서 써봤자 보호자가 동의 안 하면 소용없는 거고, 요양원 같은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얘기했지만, 나 역시 그런 상황이 올 것이, '우리 엄마'를 잃는다는 것이 두렵기만 해서 눈시울부터 뜨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뒷자리의 모녀의 대화를 듣고 상황을 이해하게 된 순간, 엄마와 나는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다.

그 모녀 모두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우리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우리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하는.

엄마가 숟가락을 내려놓는 것을 본 나는 조용히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집에 가자"

엄마도 속삭이듯 대답한다."그래, 집에 가자."


"집에 가서 커피 내려줄게, 시원하게 한 잔 합시다."

"좋지~"

차에 올라 엄마와 이 대화를 나누고는 집에 가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집에 와서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지만, 그 이후에도 우리는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퇴근하고 온 나에게 엄마가 뭔가를 내밀었다.

내가 오래전에 엄마에게 선물했던 컬러링북이었다.

"요즘은 이런 걸로 치매예방 한다나 봐, 엄마도 한 번 해봐. 일부러 쉬워 보이는 걸로 골랐어."

색색깔의 색연필과 같이 사준지 족히 몇 년은 됐을 거 같은 이 책을 그건 거 귀찮다고 거들떠도 안 보더니, 오늘 앞에 몇 장을 해봤다면서 어떠냐고 펼쳐봐 준다.

왜인지 이 책을 갑자기 시작한 이유를 알 것만 같았지만, 나는 그저 꿀꺽 침을 한번 삼키고 대답한다.

"어 생각보다 잘했는데? 아니, 나보다 더 잘하는 거 같아?"

"진짜? 잘했어? 이거 해보니까 생각보다 재미있더라. 근데 나 좀 더 진한 빨간색 연필이 있었으면 좋겠어."

"어 내가 찾아보고 사줄게. 더 이쁜 색깔들로 더 사줄게. 근데 진짜 나보다 나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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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아서 하는 게 지루하다고 뜨개질도 안 하시는 울 엄마의 컬러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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