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위한 토마토 수프

크로아티아 (Croatia), 스플리트 (Split)

by 작은 행복
스플리트 Split (크로아티아 Croatia)

스플리트는 크로아티아 제2의 도시로 아드리아해 해안 최대 항구도시이며 유명한 휴양지다.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음식점과 기념품점이 늘어서 있고, 낮이나 밤이나 사람들로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부터 여유 있게 쉴 곳으로 찍어두고, 나름 그 도시를 즐기리라 마음먹었던 곳이다.


명성에 걸맞은 아름다운 해변과 속이 뻥 뚫리는 듯한 풍경.

해변을 바라보며 먹는 아침과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룩소르(Lvxor cafe)에서 마신 에페롤 스프리츠(Aperol spritz)가 주었던 그 행복은 아마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어느 도시든 높은 곳에 올라 전체를 내려다보길 좋아하는 나에게 옥타고나 종탑의 아슬아슬하고 많은 계단은(무려 183개!) 다리를 후들거리게 했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원한 풍경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생각하게 하는 그림이었다.

스플리트 종탑 (옥타고나 종탑)


후들거리는 계단들.


옥타고나 종탑에서 보이는 스플리트의 풍경.(이때 카메라가 수명을 다하고 있어서 포커스도, 명암도 들쭉날쭉하다.)


마르얀 언덕에 올라 바라보는 스플리트의 모습도 종탑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룩소르 카페와 아페롤 스프리츠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스플리트 에서의 첫날은 내게 너무도 힘든 날이었다.

자그레브(Zagreb, Croatia)에서 버스를 타고 이 도시에 도착하는 것은 비교적 순조로웠다.

숙소가 있는 작은 광장을 찾기 위해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울퉁불퉁한 길을 건너 지하궁전 홀까지 가로지른 것 까지도 길치의 숙명이려니 했다.

광장 근처를 계속 맴돌면서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숙소 주소를 들고 물어보는 주위 상인들이 각기 다른 곳을 가리킬 때는 완전히 멘붕이 되었다. 급기야 연락한 숙소의 스탭은 근처에 뭐가 있냐고 물어보고는 내가 상점명을 대면 거기가 어디냐고 되묻기만 할 때는 정말 울고 싶었다.

결국은 날 데리러 오겠다는 스탭 대신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른 스탭을 마침내 만났을 때 난 이미 기진맥진 피곤에 지쳐있었고, 땀으로 젖어있었다.

시간은 아직 이른 오후였지만, 미치도록 배도 고프고, 팔다리가 쑤시고, 두통이 왔다.

짐을 간단히 풀고, 샤워를 마치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사람들이 꽤 앉아있던 식당에 자리 잡고 참치 스테이크와 토마토 수프, 그리고 맥주를 한 잔 주문했다.

베파(Bepa). 나중에 검색에서 알게 된 것이지만 트립어드바이저에서 꽤나 유명한 식당이다.


사실 이 전까지 난 토마토 수프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뭔가 따뜻한 것을 먹어야만 몸살 기운이 사라질 것 같아서 주문한 것일 뿐.(나는 역시 한국사람.)

별 기대 없이 한 술 떴던 토마토 수프를 먹었을 때 느꼈던 뭔지 모를 행복과 안도의 느낌이란.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가 주는 따뜻함이 이런 걸까.

그날의 토마토 수프를 잊지 못하는 것은 비단 그 새콤달콤한 맛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깨워준 피로와, 잊게 해 준 낯선 곳에서의 불안과 당황함이었을 것이다.

당시 포르투갈과 동유럽을 3주 정도 여행할 때였는데 그 여행기간 동안 같은 음식을 2번 먹은 것은 이 토마토 수프가 유일하다.


아름다운 풍경과,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만큼이나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음식이 주는 즐거움이다.

어느 여행지든 기억나는 음식이 있고, 그 음식이 주는 그때 그곳에서의 향수가 있다.

한국에 돌아와서 아직까지 토마토 수프를 다시 먹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먹게 된다 해도 그때의 그 맛은 분명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때 식사를 마치고 마침내 내가 둘러보았던 햇살 따뜻한 도시 스플리트를 떠올리게 될 것만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