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Japan), 오키나와(Okinawa)
고등학교 때부터 쭉 만남을 이어오는 친구들이 있다.
지금은 코로나 덕에 거의 2년 가까이 모임을 갖지 못하고 있지만, 다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거의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늦도록 수다를 떨었다.
각자 다른 직업을 갖고, 몇몇이 결혼을 하고, 사는 곳도 여기저기 흩어지게 되었지만 적어도 일 년에 아홉 번쯤 어떻게 해서든 시간을 맞추려 노력한다.
몇 시에 모임을 시작해도 매 번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자리를 파하고, 술로는 몇 차 까지 못해도 카페를 몇 군데나 돌아다닐 수 있으며, 마침내 제일 참지 못한 한 사람(대개는 그중 성격이 급한 나...)이 나서서 리드하기 전에는 쉽게 메뉴를 정하지 못하고, 아무리 친해도 목욕만은 결코 같이 갈 수 없는 성향마저 비슷한 친구들이다.
그 친구들과 긴 세월 함께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큰맘 먹고 3박 4일 여행을 가기로 한 곳은 일본의 오키나와였다. 딱 코로다 시국 직전이었다. 그땐 이렇게 될 줄 몰랐지만.
다들 바쁘게 살다 보니 먼 곳으로 길게 다녀올 수는 없어서 왕복시간을 줄이고 다들 가보지 못한 곳으로 정하려다 보니 후보지가 몇 없었는데 겨울에 가다 보니 한국보다 따뜻한 날씨인 오키나와를 선호하게 된 것 같다.
나름 고심해 여행의 일정을 짜고 비용을 관리했던 나로서는 아무런 불평 없이 따라와 주고, 뭐든 맛있게 먹어주고, 잘한다 잘한다 해준 친구들이 너무도 고마웠던 여행이었다.
내 생일은 음력으로 12월이다. 옛날식(?)이라 계산하기 힘들어하는 이들이 많은 탓에 대부분의 지인들에게는 양력 1월 생일을 알려주지만, 가족들과 고등학교 친구들만은 아직도 음력 생일에 축하해준다. 학교 다닐 때는 늘 방학중이었고 설에 가까운 때라 대부분의 친구들이 할머니 댁에 가있을 때가 많아서 친구들과 생일을 보낼 수 없을 때가 많아서 어린 마음에 서운해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키나와 여행 중에 친구들이 그 음력 생일을 챙겨주었다.
하루 일정 끝에 늘 들러서 문구를 사거나, 커피, 기념품 등을 사기도 했던 컨벤션 센터에서 케이크를 구해와 생일 축하를 준비해 준 것이다.
그런데 하필 누구도 성냥을 챙기지 못했나 보다. 성냥이나 라이터를 가진 이도 아무도 없었고, 우리가 묵었던 B&B에도 불을 붙일만한 것이 없었다. 덕분에 불 없는 초를 꽂고서 생일을 축하했다.
왜 그런지 민망하기도 하고 어이없어 웃음이 나면서도 행복한 기분.
이토록 낯선 곳에서 이렇게 오랜 벗들과 생일이라니.
어느덧 우리가 서로를 몰랐던 시간보다 알고 지낸 시간이 더 길어진 지금.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상대의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나이를 먹어도 때때로 타인의 무심한 말에 상처 받고, 쿨하게 웃어준 만큼 쓰린 속내를 삼켜야 하는 나에게 때로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는 얘기들을 나누며 위로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인생의 크나큰 축복이니까. 그런 이들과 함께라면 어떤 낯선 여행지에서라도 두런두런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이야기할 수 있을 테니까.
촛불 따위 없어도 괜찮아.
촛불 따위 없어도 괜찮아따위 없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