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Italy), 베로나(Verona)
이탈리아(Italy)는 늘 여행지 리스트에 있는 나라였다.
막상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을 때는 늘 그렇듯 시간이 많지 않아서 북부 몇 도시만 찍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정말 이탈리아 여행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겨우 2주 남짓의 여정.
일주일씩 있어도 모자랄 것 같은 로마(Roma)나 피렌체(Firenze) 같은 도시를 2~3일만 둘러보고 돌아설 때에는 정말이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꼭 들러 여유롭게 여행해 보리라 했지만 여전히 리스트 남아 있는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로마보다는 피렌체가 더 좋았지만, 그보다도 더 기억에 남는 도시는 베로나(Verona)이다.
베로나는 흔히 사랑의 도시로 불린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으로 유명한 로미오와 줄리엣. 그 여주인공 줄리엣의 집이 있고, 그녀의 오른쪽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영원하다는 속설 탓에 가슴만 손이 타서 변색되어버린 줄리엣의 동상이 있다.
또 아름다운 아티제 강변의 피에트라 다리(Ponte Pietra)도 유명하다.
베로나는 이탈리아의 소도시이지만, 한 여름이면 달빛 아래 오페라 축제가 이어지는 아름다운 아레나(Arena)도 있다.
피렌체에서 베로나로 가는 기차를 탔을 때부터 이미 설렘이 시작되었다.
여행 가기 전 이탈리아 소도시 여행(백상현 저)을 읽으면서부터 콕 점찍어 두었던 곳이었다.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 보다도, 아름다운 오페라 보다도 다른 소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낭만의 기운이 있었다는 저자의 글이 왠지 마음을 끌었기 때문이다.
기차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잠깐만 가면 베로나 시내이고, 거기서부터는 걸어서 웬만한 볼거리를 다 볼 수 있다. 유명한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줄리엣의 집 근처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한적하고 조용했다.
버스에 내려서부터 느껴지는 낭만의 기운과, 너무도 청명한 가을 하늘이 벌써부터 짧은 일정을 아쉽게 했다.
어쩌면 책에서 봤던 그 낭만의 기운이 내가 느꼈던 낭만의 기운이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다.
여행한 시기가 가을이었던 탓에 길에 수북하게 쌓인 낙엽들을 밟으며 바스락 소리를 내며 신발끝이 뽀얗게 되도록 걷는 그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따뜻한 햇살을 등지고 스카프 사이로 파고드는 바람을 맞는 것 마저도 상쾌하게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길 건너 집 앞 공원에만 가도 느낄 수 있는 것들인데, 이토록 사랑하는 계절을 너무 무심히 지나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베로나에서의 가을은 특별하다. 줄리엣의 사랑도, 단테의 추방도, 아름다운 오페라도 다 잊고 오롯이 나만의 가을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니까. 그곳이 여행지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매해 가을이 오면 조용하고 여유로웠던 베로나의 가을이 생각난다. 집 앞 공원으로 주저하는 발걸음을 돌리게 한다.
이렇게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는 더욱더.
내게 베로나는 그렇게 가을의 도시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