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를 달리는 여자

이탈리아(Italy), 로마(Roma)

by 작은 행복

2000년대 초반에 스쿠터가 꽤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잡지나 매체에도 스쿠터가 심심찮게 나오고, 길거리에도 스쿠터가 종종 눈에 띄던 시절이다.

사실 그때는 운전면허만 있으면 별다른 자격 없이 스쿠터를 탈 수 있었던 때였다.

운전면허가 있어도 차에도, 운전하는 것에도 별 관심이 없었는데 어느 날 우연하게 미용실에서 읽던 패션잡지 속 모델이 타고 있던 스쿠터가 내 눈길을 잡았다. 그땐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 없지만, 난 꼭 그 스쿠터를 타고 싶었다. 아니 타야만 했다.

혼다에서 나오는 조르노라는 모델이었는데, 그때부터 나는 인터넷이든 길거리 모터샵이든 그 스쿠터를 검색해 보고, 직접 찾아보고 물어보고 다니기 시작했다. 심지어 나는 자전거도 못 타는데 말이다.

마침 집 근처 모터샵에서 마음에 드는 오렌지색 중고 스쿠터를 발견하고는 며칠의 고민 끝에 백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덜컥 일을 저질렀다. 직장을 다니고 있던 나에게도 백만 원은 꽤 큰돈이었다. 조금 비싼 화장품을 사도 망설이던 내가 당신이 보기에도 어이없는 소비를 하겠다는 나를 엄마는 크게 말리진 않으셨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내가 진짜로 그걸 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모터샵에서 현금을 주고 산 스쿠터의 키를 넘겨주고는 사장님이 돌아서려는데,

"저 사장님! 저 이거 운전 못하거든요. 간단한 운전법만 알려주실 수 있을 까요?"

"아니, 탈 줄 모른다고요??"

"네..."

사장님이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뭐 이런 대책 없는 애가 있나.

그래도 기본적인 구조와 운전법을 알려주시면서.

"아가씨 자전거 탈 줄 알죠? 그거랑 비슷해요. 금방 배워요"

"아뇨 자전거 못 타는데요..."

지금 생각해도 무슨 용기였는지, 아니 무모함이었는지.

결국 우리 집까지 나를 태워오신 사장님이 공터에서 몇 번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하듯이 기본부터 천천히 가르쳐 주셨다. 물론, 당장은 탈 수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사람 없는 곳에서 연습해 보라고. 꼭 연습해 보고 도로에 나가야 한다고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으시고는 못 미더운 표정으로 연신 뒤를 돌아보며 가셨다.

그 후부터 일주일 정도 매일 새벽 2시면 밖에 나가 혼자 도로주행을 연습했다. 못내 걱정되어 잠도 못 주무시고 따라 나오신 엄마가 멀리서 초조하게 지켜보시는 가운데.

처음에는 제대로 출발도 못하고, 우회전 좌회전도 내 맘 같지 않았다. 자전거나 스쿠터를 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겁이 많아 속도를 내지 못하는 게 의외로 문제였다.

첫날 집 앞 공터만 맴돌다가 일주일 뒤 동네 한 바퀴를 했을 때의 그 성취감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뿌듯하고 행복했다.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충동을 느껴 여기서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스쿠터를 처분할 때까지 2년 정도 스쿠터로 출퇴근을 했던 것 같다.

아직도 이렇게 스쿠터 타기 좋은 날을 만나면 바람을 느끼며 달리고픈 충동을 느끼곤 한다.

아직도 가끔 엄마는 말씀하신다. 새벽이면 나가서 가다 서고, 넘어질 듯 비틀거리고, 부딪힐 듯 불안하면서도 끝까지 스쿠터를 타는 내 모습을 보고 놀라셨다고. 운동신경이라곤 없고, 겁이 많아 자전거도 못 배운 애가 어디서 저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고.

사실 아직 나도 모르겠다. 그때는 그냥 그것에 미쳐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이 두려움도 잊은 채 어떤 것에 몰두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순수하게 단지 좋아서 뭔가에 미쳐서 앞 뒤 안 보고 뛰어들었던 일이 얼마나 될까 싶다.




이탈리아(Italy), 로마(Roma)

예상 그대로의 도시였다. 볼거리도 많고, 사람도 많고. 상상했던 그대로의 여행지였다.

밖에서 보는 콜로세움. 왜 이리 공사하는 곳이 많던지.


로마의 상징물 중 하나인 콜로세움(Colosseum). 그 멋진 유적지를 사진에 담다가 문득 바깥쪽을 바라보는데 예쁜 스쿠터 한 대가 보였다. 그렇지. 이탈리아에는 유명한 스쿠터 브랜드가 있고, 그 유명한 로마의 휴일이라는 영화에는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이 그 스쿠터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고는 숙소에 돌아와서야 사진을 확인해 봤는데, 이것 참 재미있는 사진이 되었다. 뒤에 타고 있는 그녀도 나를, 혹은 콜로세움을 찍고 있었던 걸까?


정말 간지 나는 커플(이겠지??)

가끔 지난 여행 사진을 들추며 이 사진을 발견할 때마다 새벽이면 스쿠터를 타고 넘어질 듯 비틀거리던 그때의 내가 떠올라 미소 짓곤 한다. 사진 속 그녀가 찍은 사진도 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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