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Italy), 로마(Roma)
내 인생 처음의 커피는 아마도 고등학교 때 학교 자판기에서 뽑아 마신 밀크 커피였을 것이다.
물론 그전에 집에서 엄마가 타 드시던 맥심에 프림과 설탕 두 스푼씩을 넣은 커피를 한 모금씩 훔쳐 마시긴 했지만 정식(?)으로 커피를 마신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소하고 달달한 커피는 단박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가 되었고, 매점 옆 커피 자판기는 나의 최고 휴식처가 되었다.
대학에 가서는 별다방 카페 모카를 처음 접하곤 초콜릿 향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다 점점 단 커피가 싫어지고, 우유의 비릿함도 싫어지고, 기계가 뽑아주는 커피도 싫어지게 되면서 10년도 넘게 나의 최애는 핸드드립 커피가 되었고 최근엔 리스트레토(Ristretto)를 즐겨 마시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나 눈 오기 직전의 우중충한 날에는 달달한 바닐라 라테나 몽글몽글한 카푸치노를 마시곤 한다.
이탈리아에서 커피를, 카페를 빼고 여행을 논할 수 없을 만큼 커피의 매력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나라이다.
올해 초 밀라노에 스타벅스 1호점이 생겼을 정도로 다른 나라의 커피가 발 붙일 수 없었던, 커피의 자부심이 굉장한 나라다.
내가 로마를 여행했던 시기에 로마는 많은 곳이 공사 중이었다.
스페인 광장도, 트레비 분수도 가까이 갈 수 없도록 펜스가 둘러져 있었고, 직접 가 볼 수도 없었다.
그래도 유명한 폼피(Pompi)에서 젤라토(Gelato)와 티라미수(tiramisu)는 먹었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많은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었다.
로마에는 수많은 광장들이 있고, 그 수만큼 카페도 많고 젤라토를 파는 곳도 많다는 것.
이탈리아 피자는 작고 심플하며, 파스타를 먹을 때 스푼에 놓고 돌돌 말아먹는 사람들도 없다는 것.(심지어 스푼을 주지 않는 곳도 많았다.) 엔쵸비 피자는 복불복이라 못 먹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것. 우리는 쉽게 마실 수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자유(?)도 없다는 것 등등.
그중에서 새로운 커피를 만나게 된 곳도 있다.
카페 크레코(Caffe Greco)는 로마의 유명한 명소이다. 250년이 넘는 역사와 고전적인 인테리어, 멋진 정장을 차려입은 웨이터와 많은 커피 메뉴까지. 언제나 사람이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라고 한다.
커피에 관심이 많은 나와 친구는 각각 다른 선택을 했다. 친구는 전통적인 에스프레소를, 나는 다소 생소한 카페 코레토(Caffe Corretto)를 마셔 보기로 했다. 뭐 사실 그리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관광지로도 유명한만큼 그저 그 정도(?)의 커피이려니 생각했다. 나이가 지긋한 웨이터에 따르면 카페 코레토는 에스프레소에 럼주나, 코냑 혹은 이탈리아의 전통 식후주인 그라파(Grappa)를 첨가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술이 가장 도수가 높냐고 물으니 그라파라고 하길래 흔쾌히 그걸로 달라고 했다. 뭐 음주운전을 할 일은 없을 테니까.
커피를 검색하는 동안 찾아보니 그라파는 40도 정도의 증류주이다.
쌉싸름한 에스프레소와 어울리는 조금은 달달한 과일향이 나는 그라파가 섞인 커피를 홀짝이니 차가운 손발에 온기가 도는 느낌이 나면서(원래 수족냉증인 여자예요.) 반나절 동안 로마 거리를 쏘다녔던 피로가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마치 '그래, 이거야. 지금 여기서 이 순간에 내가 원하는 커피는 이거야! 이 사람들 어떻게 이런 조합을 생각해냈지? 천재 아니야?'의 기분이었달까.
아무튼 단박에 그 커피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다시 로마에 가게 된다면 스페인 광장이나 트레비 분수보다 이 카페에 다시 오고 싶을 만큼.
한 잔의 커피가 주는 행복으로 오후의 여정은 또 힘내서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나중에 홍대 어딘가 카페에서 비슷한 맛을 내는 카페가 있다고 들어 물어물어 찾아간 적이 있다. 뭐 그때만큼 짜릿한 온기가 드는 느낌이 들지 않았던 건 아마도 여행 중이 아니어서일 게다. 그 후로는 카페 코레토를 찾아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덕분에 가까운 곳으로 캠핑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면 드립 세트를 챙겨가 커피를 즐기지만, 가끔 비가 오거나 흐려 몸이 으슬으슬한 날에는 따로 챙겨간 믹스커피에 위스키를 넣어 즐기는 취향이 생기게 되었다.
카페 코레토의 맛은 아니지만, 서늘해진 손발에 짜릿한 온기를 넣어주는 그 커피를 마실 때면 로마의 여행을 기억하곤 한다. 오래 걸었던 수많은 광장들도, 고전적인 인테리어의 카페도, 펜스 너머로 봐야 했던 스페인 광장과 트레비 분수 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