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21)

면접교섭

by 도미니


정한 날에 가서 짐을 싸오기, 그리고 토요일마다 6시간 아기를 아빠에게 보내기. 가 이번 조정의 내용이었다. 조정기일은 금요일이었고, 그러니까 당장 내일인 토요일부터 아기를 아빠에게 보내야했다.

난, 사실 고마웠다. 앞뒤를 다 자르고, 아기가 아빠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 나는 아기를 빼앗길 염려가 없고, 아기가 아빠를 만나서 반가워 할 모습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아빠는 어디에 갔냐고 이따금씩 묻는 아기에게, 아빠가 우리 아기를 엄청 사랑한다고. 우리 아기를 정말정말 보고 싶어하신다고 곧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대답했는데 그 약속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친구네 아빠를 넋놓고 바라보고, 교회의 남자 성도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아기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렸는데, 이제 우리 아기도 아빠를 만난다.

남편은 미술학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오기로 했다. 미술이 끝나는 2시에 데려가서 8시에 다시 데리고 오는 것이 내용이었다. 면접교섭의 원칙은 2주에 1번 숙박이지만 아직 아기가 어려서 재울 수 없을 테니 매주 6시간 데리고 있는 것으로 제안했다. 사실 이것도 지금이야 저러지, 몇번 겪고 나면 2주에 한번 으로 줄어들 걸.

미술학원을 가며 오늘은 아빠가 데리러 오실거야 정말 오랜만이지? 아빠 만나면 아빠 보고싶었어요! 할거야? 응응! 몇번이고 대답하는 아기의 눈이. 아름답다. 정말 정말 가슴 벅차게 기쁘다.

미술학원 주소를 문자로 남기며 어머님 집에 데리고 가더라도 아기를 어머님께 던져놓지 말고 같이 놀어줄 것. 이라고 단서를 붙였다. 그는 아기를 혼자 돌볼 줄 모르고, 오매불망 어머니 걱정 뿐이니 당연히 시댁으로 데려가겠지만, 애 아빠는 본인이라는 것. 어머님의 손녀이기 이전에 니 딸이라는 것. 제발 알아주렴. 하는 당부의 말이었다.

약속한 2시에서 15분이나 지나서야 남편이 학원 문을 열고 들어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아기를 안았다. 아기는 어제 보았던 것 처럼 아빠에게 아무렇지 않게 안기며 오늘 만든 작품을 자랑했다.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남편을 원장님께 소개시켰다. '원장님, 00이 아빠에요. 처음 인사드려요. 제가 토요일에 업무해야 하는 날이 있어서 앞으로 종종 아빠가 데리러 올 거에요. '

우리는 꼭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인 것 처럼 웃으며 아기를 바라보고 타인들과 이야기하지만 서로의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어제는 둘 다 정장을 차려입고 개싸움을 했는데, 오늘은 마치 주말을 보내는 편안한 부부처럼 편한 복장으로 아이의 손을 한쪽씩 잡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내렸다.

그의 차가 있는 곳에서 아이에게 아빠랑 정말 정말 재미있게 놀다와 엄마는 일하고 있을게!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뽀뽀를 한 뒤 돌아섰다. 머리 뒤에서 '태워다 줄게'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또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세발자국 걸었나.

저 사람 카시트를 가져온거야...?

하고 돌아가서 아기를 태우려는 차를 들여다보니,

그럼 그렇지. 카시트를 챙겨왔을 리가 없다. 내가 챙기지 않으면 그런 것은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까지 내가 챙겼어야 하는 건가. 내가 가진 카시트를 끌고 와서 줬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 그냥 주면 설치를 못할 테니, 장착까지 해드렸어야 하는 것인가.

도대체 이런 정신머리로 무슨 면접교섭을 하겠다고..!!!

비집고 나오려는 욕을 삼키고, 나는 어머님 집까지 가서 버스타고 돌아가겠다고 하고, 아기를 안고 차 뒤에 탔다.

마치 몇달 전 마지막으로 시댁에 갈 때처럼, 그가 운전하는 차 뒤에서 우리 아기를 안고 익숙한 길을 달린다. 차의 방석도, 차 안에 우리 아기 장난감도 그대로라, 옛날에 그랬듯이 책을 읽어주고 아빠 빠방을 타니까 참 좋지 아가. 우리 아가 아빠 빠방 참 오랜만에 타지? 아빠는 운전도 참 잘하고, 진짜 세상에서 제일 멋지지?

......


우리 아기 마음 속의, 머릿 속의, 소중하고 멋있을 아빠. 그를 위해서.


결국, 우리 아기를 위해서.



ㅡㅡㅡㅡㅡㅡㅡ



힘들지는 않았고, 슬펐어요.


이렇게 이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러면서 소송을 시작한 것을 자책도. 했습니다. 그냥 이대로 덮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남편에 대한 미련이 아니라, 우리 아기의 행복한 가정에 대한 미련이 끝도 없이 남아 있거든요.

한동안 앓고 나니 이제는 그 바람마저 모두 접어 가볍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제 아픈 영혼에 위로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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