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 한마디에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내 사건을 담당한 조정위원은 실적이 꽤 높아서 그 인정받는 낙으로 사는 사람이다. 특별한 포인트를 잡지 않아도 조정을 하며 쾌감을 느끼는 직업의식 높은 부류인 것이다.
어떻게든 합의를 이끌어내야하는 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으니,
" 본인들의 생각도 중요하지만 여태 쓴 다른 사람의 시간은 생각도 하지 않나요? 정말 너무 이기적인 것 아닙니까? 이 사건 속행하겠어요! " 고 호통을 쳤다.
민사소송법을 다 잊어버려서, 그리고 너무 당당하게 속행으로 협박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또 그 와중에 얼치기 처럼 변호사에게 "속행이 뭡니까?" 하고 물어봤다.
오늘로 조정을 끝내지 않고 2회를 더 잡겠다는 이야기란다.
코웃음이 나온다. 당신은 고작 두시간 스트레스 받았겠지만 전 인생이 달린 문제인데요 지난 5년과 앞으로의 몇십년이 달린 문제라구요. 사람의 이런 상황을 당신 실적 올리려고 두시간만에 합의하길 바라는 게 양심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말 이대로 받아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
여기는 법원이고, 내가 그런 태도를 보여봤자 이득될 것이 없다. 그래서 또 꾹꾹 눌러 참는다. 왜 남편을 그렇게 참아오고도 여기서 이런 사람도 참아야할까. 하는 불만이 올라오지만 사실 그럴 일이 아니다. 사람의 일상은 참는 것이다. 그저 마음이 불편할 뿐, 이상한 일이 아니다. 어차피 나 아닌 사람들도, 저 조정위원도 나를 참고 있지 않은가. 이 정도가지고 인내라고 부르지도 말자. 그냥 사는 게 이런 거야. 지나치면 될 일이다.
드라마처럼 4주후에 다시 보겠다고 하고, 당장 결정할 수 있는 두가지를 정했다. 하나는 면접교섭. 하나는 집을 빼는 문제.
1) 면접교섭의 원칙은 2주에 한번 1박 숙박이라고 하는데, 저 멍청한 남편은 그렇게 하겠다고 우겨대지만 아이를 생각해서도 그럴 수가 없어서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아직도 내 옆에서 나를 만지며 자는 소중한 우리 아기를 단 하룻밤이라도 상처를 입히고 싶지 않았다.
매주 토요일 미술학원이 끝나는 2시부터 8시까지. 합의가 된 후에
2) 짐 빼는 이야기에서 그는 또 진상을 부렸다. 자신이 몇번이고 내 옷을 택배로 보냈는데 가져갈 짐이 어디있냐는 이야기다. TV는 왜 가져가라고 하느냐 부터 그래도 조정위원이 날을 잡으라고 하자, 그러면 몇시간 쓸거냐는 헛소리를 줄줄 이어간다.
내 쓰레기 같던 옷들. 버려도 별반 상관없는 옷들이 서너번 택배로 왔었다. 그 때마다 박스비먀 택배비가 얼마나 아까웠을까 그의 생각이 환히 보이는 듯 했다.
내가 5년간 살림을 한 집이다. 소소한 물건들, 지금은 기억하지 못해도 보면 챙겨나올 것들이 많고, 무엇보다 tv는 니가 2주안에 안가져가면 부숴버리겠다고도 한 문자가 그대로 있는데, 저러고 떼를 쓰는 구나. 정말 마음이 이기적으로 생겨먹어서.. 단둘이서는 대화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이었다는 것이 새삼 되살아나 고개가 절로 저어지는데 조정위원이 일단락 지었다. 날짜를 잡고 그날은 아빠 나가있으라고 했다.
조정은 이런 절차로 진행된다. 조정위원과 함께 협상을 하고 마무리는 판사가 한다. 끝났다고 나가라고 해서 대기공간에서 10여분을 기다렸다가 이름을 불러 들어가보니 꽤 큰 방에 사복차림의 판사가 앉아 있고 그 맞은 편 되는 판사와는 조금 먼 자리에 나는 그와 나란히 앉았다. 특별하지는 않다 이름을 부르고, 판사의 설교가 시작된다.
대개는 형식적이고 간결하게 한다던데 이 판사님은 말씀이 많다.. 일단 4주동안 자유롭게 면접교섭권을 이행해보고 그리고 나서 다시 보자고 하며 나가는 남편에게 오랜만에 보니 아이에게 잘 해주라고 아이 크리스마스 선물도 사주고 장난감도 많이 사주시라고 당부를 하는데, 정말 얄미운 조정위원이라도 그런 말들은 또 고맙다. 절차가 끝나고 변호사님에게 그럼 임시양육자는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으니.
오늘은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이야기 했다. 조정에서 합의를 보지 못해서 그냥 다음 조정기일로 모든 것이 미뤄진 것이다.
한숨을 쉬어보고 이리저리 떠다니는 정신을 부여잡고 법원 밖으로 나왔다. 변호사님은 나와 같이 나와 다시 재판을 위해 부평으로 가신다고 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몇번이고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이제, 뭘 좀 먹어야겠는데... 시간이 12시인데 6시에 일어나서 여태껏, 물한모금 마시질 못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