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차에서 내려 아기에게 다시 인사를 하고서는 케익집을 들렀다. 내일은 내 생일이다. 남편의 차를 타고 시댁까지 가는 것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와중에도 마침 시댁 근처에 케익집이 있으니 잘 됐다 싶었다. 생일 같은 것, 챙기지 않은 지 오래였어도 그건 내 마음이고, 아기와 부모님에게 아무렇지 않은 모습은 보여야 했기에, 케익을 사서 전철을 타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근 몇달동안 늦잠이나 낮잠을 자보질 못해서 굉장히 피곤했다. 아기를 맡기고 나면 낮잠을 자고 시내를 천천히 돌아다녀도 좋겠다... 생각했는데. 집에 오니 벌써 4시가 다 되었다. 반박서면을 써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천장을 바라보며 기운없이 누워 있었다.
막상 아기가 없으니 뭘 어떻게 있어야 할 지를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네.. 지금의 내 상황도 내 마음도 어디쯤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하나도 모르겠어요 하나님. 길을 잃은 느낌이라 눈물도 나오지 않고 기운이 빠진 채로 가만히만 있었다. 아기를 이렇게 매주 보낼 수 있을까...?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그래도 되는 걸까..?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진공상태를 헤매고 있다.
설핏 든 잠 속에서도 가슴을 문지르며 힘들어 하다가 남편에게 8시에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울리는 전화기를 확인하니 꿈과 현실 사이에 가느다랗게 이어져 있던 생각이 투두둑 끊어져 버린다. 달리듯 나가서 아빠에게 안겨 졸고 있는 아기를 받아왔다.
차가운 겨울 저녁, 시댁의 냄새가 밴 아기를 안고 입을 맞추며 참 불편하다.. 생각했다. 뭔가 인연을 끊어내고 싶은데, 우리는 이렇게 주기적으로 만나야 한다. 보기 싫은 번호의 문자를 주고 받으며, 대화를 해야한다는 것이 꽤 절망적이다.. 하지만 아기의 아빠이니, 아기를 위해서라도 이것 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해야한다.
참 세상에는 하고 싶지 않고 어울리지 않지만 해야하는 일이 많이 있다.
40이 넘어가니, 이제야 알겠는 것들이 있었다.
해야하는 것,
하는 것이 좋지만 안해도 되는 일,
하지 않으면 좋지만 해도 괜찮은 일,
그리고 하면 안 좋은 일.
이혼은, 이 중의 어디 쯤에 있는 것일까.
가서 할머니 안녕하셨어요. 생신에도 못 와서 죄송해요. 하고 인사하며 드려야해. 들려보낸 빵은 다시 돌아왔다. 사실 거절할 것 같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무시 당하는 빌미를 제공하더라도 아기에게 인사를 갈 때 갖추면 좋은 예절은 가르쳐야 했다. 우리 아기에게 소소한 예의를 가르치는 것이 내 감정보다 더 중요하다. 그것만 심어주었으면 됐어. 이리저리 마음을 가라앉혀도 이 모든 상황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빵 위에 얹혀 작은 케익이 왔다. 이건 뭐야? 내 생일이라고 사 보낸거야? 실소가 나오지만 전혀 고맙지도 좋지도 않았다. 그저 극악으로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다행이다. 남편에 대한 마음은 닫히고 없어진지 오래다. 밉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는다. 지금 진행되는 일들에 대한 감정일 뿐, 나는 그를 의지하지 않은 지가 오래라서 아이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는 실망도 서운함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자. 첫번째 면접교섭을 그래도 그나마 별일 없이 치뤘으니.. 앞으로 이런식으로 진행되겠구나. 이제 다음 주에 가서 짐 가져오는 것만 잘 하면 되겠다. 괜찮을거야. 아까 불안했던건 내가 너무 피곤하고 갑자기 아기가 없어서 그랬던 것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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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저 날 이후로 면접교섭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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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기를 아빠와 만나게 해준다고 했을 때 친정부모님 반응이 정말 힘들었어요. 그 집에서 아기를 안주면 어떡하냐고 끝까지 닥달하는 친정부모님에게 내가 왜 이 상황을 설득시켜야 하는 지, 기운이 빠지고 화도 나고 그랬습니다. 집안마다 분위기는 모두 다르겠지요. 처음 겪는 상황이다 보니 누구하나 지혜롭지가 않더라구요.
결국 이 사태를 주도해나가는 것은 엄마인 나뿐입니다. 강해져야 해요. 누군가의 태클에도 감정적이지 않고 단호하게 정리를 하려면 정말 안팎으로 강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