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아이는 오늘 안보내는 거야. 이제 또 아이와 주말을 같이 보내는 거야. 괜찮아. 말하자. 다신 그런 거지같은 소리 듣지 말자.
그리고 문자를 보냈다.
' 조정과정에서 결정된 것이 없다는 이유로, 합의된 내용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아이를 보낼 수 없어. 이제 TV를 가져오고 안가져오고는 관심사가 아니야. 다시 가져가라고 한다고 해서 아이를 보내지 않아. 너에 대한 신뢰가 없어서, 그런 사람에게 아이를 보낼 수 없어. '
그는, 자신에 대한 잣대와 남에 대한 잣대가 다르다. 조정과정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며 짐은 못 가져간다고 했던 사람이 아이를 보내는 것은 약속된 일이지 않냐며 항변을 하는데, 웃음이 절로 나왔다.
화를 내다가, 읍소 모드로 바뀐다.
아이 보고 싶어 아이 보내줘.. 아이에게 이 집을 보여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아직 미끄럼틀이고 00이 장난감들 모두 그대로 있어 꼭 이 집에서 아이랑 같이 하루 보내고 싶어..
참, 재미가 있다. 그래, 그 미끄럼틀은.. 내가 눈이 온 다음날 당근으로 사온 거였다. 집에 노는 널 두고, 자는 아이 잠깐만 지키라고 하고 내가 버스를 타고 가서 짊어지고 왔던 거야. 당근 하면 다른 집들은 남편들 잘만 내보내던데, 그 날도 그 미끄럼틀은 남편이 들고 나왔던데.. 오죽하면 남의 집 남편이 나보고 무거운 데 가져갈 수 있겠냐며 걱정을 하고, 난 괜찮다며 버스를 환승 받아 들고 온 미끄럼틀이었다.
장난감 장은, 이케아에서 선반만 5개를 개당 만원에 주문해서 원래 있던 드레스 장에 박아 만들었다. 아기방이 너무 너저분해서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사이즈를 재고 맞는 것을 찾아 일주일은 헤매었던 것 같다. 아주 간신히 딱 맞는 선반을 찾아 주문을 해버렸다. 카드명세서에 5만원이 찍혔다고. 왜 쓸데없는 걸 사냐고 그야말로 지랄을 하는 그를 뒤로 하고, 시험이 끝나자 마자 한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전동드릴도 없이 하나하나 드라이버로 20개의 나사못을 박았다. 아기도 정돈된 집을 좋아한다. 깨끗하고 예쁜 방을 만들어줄거야. 중얼거리면서 5시간에 걸쳐 만든 장난감 장이었다. 내가 집을 꾸미는데 남편은 존재한 기억이 없다. 넌 그런 집안을 꾸미는 데에 도대체 뭘 했어? 부동산의 가치가 아니라 내가 꾸민 그 집이 소중하다고 생각은 하고 살았을까
..... 퍼붓고 싶은 말이 한가득인데, 하지 못했다. 부질없다. 다시 같이 살 것도 아닌데, 그를 교화시켜 무엇하며 잘못을 지적해서 뭘 하겠다고 내 입만 아프다. 필요한 말만 하자. 어차피 내 말은 그에게 5프로도 전달되지 않는다. 전달된 말들도 한껏 왜곡되고 비틀릴 테니 필요가 없다.
아이가 그렇게 소중하다는 사람이, 애기 보여주는 TV를 못 가져가게 해? 믿지 않아 이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도 못 믿겠어. 분명히 나한테 편하게 물건 가져가라고 했었어. 그러고 이주만에 마음대로 문 잠궈버리고. 돌아보면 언제나 그런 식이야 믿지 않아.
애기 보여줄 거였으면 TV 가져가라고 했을거야. 그런 말 나한테 안했잖아. 제발.. 이제 시간이 지나면 너랑 나랑 00이만 세상에 남을텐데. 나 이렇게까지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아. 서로 이렇게 굴 필요 없잖아.
저 말이 방아쇠를 당겼다.
와, 그거 아는 사람이구나? 그거 아는 사람이었구나? 그거 아는 사람이 아내를 그렇게 함부로 대했어? 와 이렇게 까지 하니까 알기는 하는구나...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아? 지금 나한테 예물 내놓으란 말을 해놓고 그런 소리가 나와? 예물 돌려달라며!! 그 거지같고 치사한 예물 돌려달라며!! 그게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지 않은 사람 입에서 나오는 소리야?
내가, 내가. 내가 너한테 부동산 명의이전을 한달동안 집요하게 요구했다며. 그런 아예 피운적도 없는 굴뚝같은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 입에서 나오는 말을 내가 어떻게 믿어!
니가 누나 회사에서 잡무를 처리해? 어디 있는 지도 모르고, 출근 한번 한 적이 없는 회사에서 잡무를 뭘 처리했어? 내가 애키우고 일하면서 그 회사 탈세하려고 세운 페이퍼컴퍼니라는 것까지 밝혀야 되겠어?!!!
답변서를 받고 부들부들 떨다가 묻어버린 이야기를 뱉어냈다. 다들 답변서 받으면 화가 난다고 했었다. 모두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했지만 들어보면 단초는 있었다. .
십만원짜리 가방을 산 것을 사치가 심했다고 한다던가, 회사일로 출장다녀온 것을 외박이라고 했다던가.
근데 정말 아직까지 나는 이런 그냥 생짜로 지어낸 거짓말은 보지 못했다. 난 행여나 그의 재산들을 입에 올리지도 않았었다. 어머님께 생활비를 타 쓰는 것 자체가 민망하고 괴로워서, 그리고 그런 주제에 편안하게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감히 생활비를 올려달라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어렵다고 하시길래 10만원 깎고 주시라고 했었는데.
내가, 내가 그의 명의로된 부동산의 명의이전을 한달동안 집요하게.. 요구했다고 써 있었다. 애써 구석으로 밀어버린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부모님과 아기 몰래, 억울함과 아득함에 떨리는 몸을 가누며 한동안을 괴로워 했다.
정말, 차라리 잘됐어. 이렇게 뱉고 다 털어버리자.
몇번이나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다시 거울을 보며 얼굴을 진정시키고 밝은 목소리로 나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