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26)

따지고 싶은데

by 도미니


시간은 그럭저럭 간다. 그 난리를 치고 어느새 새해가 되었다.


조정 후 4번의 면접교섭을 자유롭게 하라고 했었는데, 1차 조정기일 다음 날인 면접교섭은 했고, 2차는 성사되지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3회차인 날도 그의 문자는 왔지만 응하지 않았다. 4회 차인 날은 아무 일도 없던 듯 평소처럼 시간이 지났고, 드디어 2차 조정기일이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조정위원의 태도는 정말 화가 났다. 둘다 소득이 없고 공부만 하지 않았냐, 노소영 관장 사선 좀 봐보라는 둥 이런 저런 말로 밑밥을 깔다가 재산분할금액으로 "3천-" 하던 말이 귓가에 맴돈다. 나는 항상 사태파악이 모두 된 뒤에 화가 나는 편이어서, 그 당시에는 마치 내가 부당한 요구를 한 듯이 쩔쩔 맸다가 돌아와서 곱씹을 때마다 화가 났다.


2차 기일 전날 변호사에게 전화를 해서 현재의 생각을 전했다.


재산분할도 양육비도 일정 금액 이하로는 받지 않을 것이며 그 쪽에서는 그렇게 줄 생각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니,


- 그래요. 그럼 우리 내일은 그냥 재판으로 가는 것으로 마음먹고 스피디하게 끝내죠. 내일 뵙겠습니다.


하며 간단히 끝났다. 아침 반차 결재를 올리며 내일은, 오랜만에 늦잠을 잘 수 있어 좋구나. 생각했다. 10시까지 바로 법원으로 갔다가 점심을 먹고 복귀하면 된다. 끝장나게 맛있는 것을 먹어야지.


두번째 가는 날이라고 그나마 좀 더 편하다. 지난 번 1차 기일에는 아침 금식을 하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갔었는데, 그래도 이번엔 빵한조각이라도 넣고 와서인지 여유가 생겼다. 대기석에 앉아 있다보니 변호사님이 오셨고 인사를 하고 나서는 허공을 보며 내 이름을 부르길 기다렸다.


그는 또 늦게 나타났다. 항상 있는 일이다. 제시간에 무얼 하는 적이 없었다. 지겹도록 매달 보던 토익 시험에도 늘 오라는 시간 보다 10분 넘게 늦게 아주 간신히 듣기평가를 틀기 직전 들어가던 사람이다. 여전한 태도와 한껏 차렸어도 형편없는 몰골로, 들어서서 변명부터 늘어놓는다.


아이가 너무 보고싶어서 블라블라.. 제가 돌아오는 길에도 귀에다 대고 계속 아빠가 널 사랑한다고 말했고 블라 블라.. 날은 왜 그렇게 추웠는지 주절주절... 예물을 돌려달라고 했던 것도 그냥 관계를 정리하자고 하는 것이었고 어쩌고 저쩌고...


정말, 신기하고 궁금했다. 저 조정위원은 저 얘기를 왜? 듣고 있지? 왜 고개까지 끄덕이며 듣고 있지????


지금 급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니 금액을 올려서 버틸거라고 말하던 내 말은 그렇게 잘라댔으면서 왜 저런 거지같은 넋두리를 잠시라도 듣고 있지?


예물을 돌려달라고 했던 말이 관계를 정리하자는 뜻이래.. 이미 파탄 난 관계를 예물 돌려받으면 정리가 되는 것인가..? 금붙이들 나 주기 아깝다고 말하지 그래. 한푼도 아내에게 줄 수는 없다고. 정말 좀 솔직해보지.


반박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다. 몇번이고 그의 말을 끊고 덤비고 싶었다. 뒷일 생각 안하고 끝까지 1대1로 링에 올라서서 싸우면 나 이길 수 있는데. 나 정말 저 말들이 얼마나 허망한 지 다 반박할 수 있는데.


근데, 세상마저 내 생각과는 다르다. 왜 이런 지 모르겠다. 정말. 왜 제3자 마저 내 얘기는 안 들어주는 것 같을까.


아마 피해의식에 젖어 나만 손해보는 것 같다고 억울해하는 내 탓도 있을 것이고, 변호사 말로는 조정위원은 어찌되었든 돈을 주는 쪽 편을 들어 어떻게 해서든 끝내보려고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남편에게 버텨봤자 지금 손해는 너지 쟤가 아니야. 라는 것을 각인시키면 일이 좀 더 수월할텐데. 아마 그의 성향을 잘 모르니 저렇게 일반적으로 접근하는 것인가.. 뭐가 뭔지도 모르는 의문이 가득한 상태에서


그도 이전에 합의될 뻔한 금액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응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결국 임시양육자 지정도 되지 않았고, 면접교섭도 되지 않았고. 재산분할 양육비 모두 아무것도 합의 된 것은 없이


판사앞에 다시 섰다.


실망한 얼굴로 왜들 이렇게 상황을 나쁘게 몰아가냐며 힐난하던 판사는 남편을 잠깐 나가 있으라고 했다.


- 아내분, 남편이 지금 여유가 없는 거에요.


...? 아니에요. 저 사람 재산 많아요. 없는 척 하는 거에요.


- 아니 그 여유가 아니라, 아내가 잘 되서 자존심이 상한 거에요.


.....


모든 것을 뒤집어 엎고 싶게 화가 났다. 내가 여기까지 와서도 저딴 소리를 듣는 구나. 정말 이런 거지같은 인간들. 언제까지 언제까지 남편이 잘되는 건 집안이 잘 되는 거고, 여자가 잘되는 것은 남자 자존심이 상할 일이야? 애 키우는 여자가 고시 붙은 게 그렇게 잘못이야? 내가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 이제야 시험 붙어서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정말. 애 안고 업고 공부하며 받은 설움은 생각도 안하고 저런 소리를 법원에서 까지 듣네..


따지고 싶은데. 정말 판사님까지 왜 그러시는 거냐고 따지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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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이야기 들은 것 밖에 기억이 안나요. 정말 충격이었거든요. 법원마저 저렇게 이상한 선입견을 갖고 있으면 나는 정말 어쩌면 좋지... 요즘도 생각하고 두렵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어쩔 수 없는 일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저는 힘껏 정말 있는 힘껏 부딪혀 볼 생각이에요.


응원해주시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완주할 수 있는 것은 수없이 감사한 공감의 마음을 받은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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