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 중간에 위기가 많았다. 어버버한 나는 눈만 깜빡이고 있었고 조정위원은 어떻게든 여기서 끝내기 위해 몰아붙이고, 상대방은 이상한 고집을 부려댔다. 우루루 휩쓸려 가려는 찰나마다
저 잠시만 의뢰인과 이야기 좀 할게요. 웃으며 나이스하게 나를 데려나간 변호사는 문이 닫히자마자 인상을 확 쓰며.
하지마세요. 하지말아요. 지금 저 말에 응할 필요가 없어요.
그녀의 코치가 없었다면 산으로 가고도 말았을 조정이 간신히, 비틀거렸지만 제 자리를 찾았다. 조정위원의 서두름과 넘겨짚음을 불쾌해하고, 불성실한 남자를 경멸하는 그녀의 태도가. 정말 큰 위로가 되었었다.
이제 다시 회사로 들어가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어야 하는 체질인데, 너무 큰 괴로움이라 내 입에 뭐가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회사사람들이 먹을 간식거리를 잔뜩 샀다. 남의 입에라도 들어가는 걸 봐야겠다.... 커다란 종이백을 끌어안고 버스에 앉아서 지나가는 풍경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는 어쩌다 이런 길로 들어섰을까.
언제 끝날까.
빨리 끝나는 것이 좋은 것일까.
어떤 마음을 먹어야 하는 것일까.
그의 말대로, 조정위원의 말대로, 판사의 말대로 내가 너무 하는 것일까.
다들 어떤 근거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내 주장은 어디까지 객관적일까.
어디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리의 지점일까.
생각이 너무 많다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주의를 많이 듣지만, 이렇게 생겨먹어서 방법이 없었다. 자학하듯이, 그리고 배설하듯이. 끝도 없고 결론도 없는 생각들은 고삐 풀린 듯 줄줄줄 이어진다.
모두들 점심을 먹고 커피 한잔을 들고 가볍게 가는 대열에 그저 보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커다란 간식 봉투를 끌어안고 느릿 느릿 걸어가며,
.... 왜 내 짐만 이렇게 무거워 보일까. 왜 나만 힘든 것 같을까. 저들도 모두 나름의 어려움이 있을텐데.
언제나처럼 가져왔던 의문들을 한발짝 마다 하나씩 내려놓고, 최소한 사무실에는 가볍게 들어가자.. 마음 먹었다.
모두들 점심을 먹으러 나가 아무도 없는 사무실로 터덜거리며 들어왔다. 컴퓨터를 켜고 구비구비 간식들을 꺼내 봉투를 비우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근래에 꽤 친해진 다른 팀의 나와 동갑의 여직원이 옆에 와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