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극히 주관적인 이혼의 원인과 그의 모자람은 별개로 아기는 아빠를 만나야 한다. 어린이집에도 내내 아빠있는 아이들을 부러워한다는 이야기를 얼마전 상담에서 들었다. 다른 아이의 아빠가 지나다 들르면 오히려 그 아이보다 우리 아기가 먼저 달려나가 반가워 한다고. 친구들이 아빠 이야기를 하면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나도 나도 아빠랑 이런 거 이런 거 했어! " 라고 말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정말 정말 아팠었다.
아빠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뜬금없이 물어볼 때마다 "그치.. 아가 아빠 정말 정말 보고 싶지? 엄마도 아빠 너무너무 보고 싶어. 아빠도 우리 아가가 너무너무 보고 싶으시대. 아빠가 우리 아가 정말 정말 사랑하신대. 우리 아빠 만나면 꼭 안아드리자. 아빠 너무너무 보고 싶었어요. 정말정말 사랑해요. 말씀드리자. " 했던 이야기는 적어도 우리 아기의 입장에서는 정말 진심이었다.
나에게 어떻게 했더라도. 나는 아이의 아빠로서 그가 고맙다. 아이를 보고 싶어해줘서 고맙고, 아이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 고맙다. 나에게 못되게 굴었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하면 모두 그는 아이조차 귀찮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아이보다 본인이 우선일지언정, 핏줄에 대한 집착이 있고 또 아이의 애교를 귀여워 하는 사람이다. 그게 정말 다행이었다.
잘잘못을 떠나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차치하고, 그가 내 아이를 만난다는 지점에서, 아쉬운 사람은 나다. 절대로 이런 마음을 들키지는 않을 것이지만.
모든 치사하고 더러운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 일단, 내일은 웃으며 만나. 애기앞에서 티내지 말고 사이좋은 모습 보이자. 그거면 되는 거야. 난 할 수 있어. 오빠도 잘 해줄 거라고 믿어. ' 라고 문자를 보냈다.
아이가 있는 이상 어쩔 수 없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손을 부들부들 떨며. 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우리 아기 발가락이 있으니까. 동글동글 우리 아기 발가락만 만지면 어떻게든 잘 수 있을 거야. 마음을 쓸어내린다.
자다 깨다 아이 얼굴을 바라보다 여섯시간이 흐른 후 새벽예배를 갔다. 가슴이 답답할 때에는 화풀이처럼 예배도 빠져버리고 싶지만, 그건 일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임을 알고 있다. 무겁더라도 일단 나를 성전에 앉혀 놓으면 주님은 새로운 시야를 보여주신다. 믿자. 믿고 맡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이 상황도 나에겐 복이다.
뭘 어떻게 해야할까요. 하나님. 저는 무엇을 잘못했나요. 이 상황을 제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요. 제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십니까..
가슴으로부터 솟아나오는 눈물을 뿌리며 기도를 한다. 이 사람의 목적은 모두 돈이었어요. 저를 어머님 돈만 갖다 쓰는 식충이 취급했어요. 어머님께 경제적으로 득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절 무시하고 조롱했어요. 어쩜 그렇게 돈이 중요할까요. 예물 갖다 팔아 남는 몇십만원이 그렇게 소중한 사람이에요. 아이를 위한 양육비 몇십만원도 저에게 주는 것은 아까워 벌벌 떠는 사람이에요.
양육비 몇십만원....?
그래, 그는 처음에 자신이 아이를 키울 것이니 나에게 양육비를 달라고 했었다. 양육비. 그가 만약에 오늘 아이를 만나서 돌려보내지 않으면...? 그렇게 되서 양육권이 그에게 가면 내가 양육비를 줘야 하는데. 난 공무원 월급을 받으니 그는 양육비 받기도 쉬울거야. 아.. 그렇구나. 그것까지 다 알아봤겠구나. 여태 말을 바꾼 게 몇번인데. 짐도 편하게 가져가라고 해서 내가 방심을 했었는데.. 막상 문을 잠궈버리니 꼼짝도 못하는 거잖아.
만약 그가 막무가내로 아이를 돌려보내주지 않아버리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토요일 아침 9시에 떠는 손으로 변호사에게 문자를 보냈다.
'변호사님 쉬시는 날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고.. 오늘 아이를 남편에게 보냈다가, 남편이 돌려보내지 않으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나요...?'
너무너무 고맙게도 토요일 아침에 변호사님은 바로 전화를 주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미성년자 약취죄로 고소는 가능하지만, 판결이 날 때까지 아이를 억지로 데려올 수는 없고, 그러는 와중에 임시양육자지정이 나면, 남편에게로 양육권이 간다는 것. 실제로 이런 식으로 아이를 못 찾은 경우도 극소수이지만 있기 때문에. 보내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조정과정에서결정된 것이 없다는 것은 면접교섭 역시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보내지 않아도 판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싸움은 감정의 극단을 달리게 되어, 꽤 힘들 것이다.
이에 덧붙여.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중에 결국 원만하게 합의가 되거나 하고 나서 제 원망을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왜 그렇게 극단적인 경우까지 말해서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고 일을 이지경으로까지 만드냐고 비난도 하세요. 하지만 저는 변호사니까요. 그런 것 쯤은 감당이 가능하고 감당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와.... 우리 변호사님 정말 멋있구나. 이분 성공보수가 아니라 정말 직업의식으로 사건을 맡는 분이셨구나.. 하는 안도감과 더불어, 마음의 결심이 섰다.
그는 충분히, 정말 충분히 나에게 양육비 몇십을 뜯어내기 위해 아이를 담보로 잡을 사람이야. 어머니가 맡으면 못 키울 것도 없다고 생각하겠지. 데려가서 또 말을 바꾸면, 후회해도 늦어. 아기에게 내가 없어지는 끔찍한 상처를 남길 순 없어. 절대로 안돼.
아가 정말 정말 미안해. 아빠는 다음에 만나자. 엄마는 더이상 호랑이굴로 들어갈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