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조정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로 사전처분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정과정은 판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결국은 전달된 꼴이잖아?
변호사는 결과는 전달이 되고, 과정은 전달이 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우리는 결정된 게 없다고 했는데 그건 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뭐 법원이 사전처분을 하려고 조정과정에서 합의한 부분을 참고했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러려니 했다.
1주일 내로 항고하지 않으면 처분은 확정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항고해도 되지만 그러면 별도로 변호사를 선임해야하고 - 변호사선임비를 또 따로 내고, 아무런 결정도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난 받아들인다고 했다 지난 주 목요일에 변호사에게 송달되었으니 이번 주 수요일까지만 기다리면 항고기간이 도과한다. 목요일부터 난 합법적인 우리 아기의 임시양육자인 것이다.
소송은 기다리는 일의 연속이다. 뭐 하나 제 때에 즉각즉각 되는 일이 없다. 기약없이 기다리는 일이 태반인데, 이렇게 기한이 정해진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 그렇더라도, 하루. 이틀 손을 꼽아가며 마침내 목요일.
또 아침부터 변호사에게 전화를 했다.
변호사님 이제 저 임시양육자 맞는 거죠? 항고기간 끝났잖아요. 저 쪽도 항고 안한 거 맞죠?
- 네 맞아요 아직 항고했단 이야기는 없어요. 그런데...
네...?
- 저 쪽은 아직 항고기간이 안 지났는데요?
?????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 쪽은 송달을 어제인 수요일에 받았다고 한다. 나보다 1주일을 늦게 송달받은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변호사를 선임했으니 이게 서류가 본인한테 등기로 가는 게 아닌데..?
결정문이 어디로 가는 건데 왜 어제야 이걸 열어봐요..?
- 전자문서로 변호사한테 와요. 그러면 변호사가 클릭을 해서 열어보는 순간 송달된 거거든요. 근데 이 변호사가 일주일이나 늦게 열어본 거에요. 아니 근데 참 이상하네요. 원래 변호사사무실은 직원들이 출근해서 이거 열어보고 보고하는 게 루틴인데... 이걸 이렇게 안했네요. 일부터 골탕먹이려고 하는 경우가 있긴 있는데 굳이 그럴 일도 아닌데....?
정말, 가지가지로 괴롭게 하는 구나.
내 추측엔, 그가 선임한 변호사 사무실은 아직 네이버에 등록도 안된 곳이라. 사건이 없어서 였던 것 같다. 사건이 없으니 매일 아침 송달 서류들을 확인할 필요도, 인력도. 없었던 것니다. 굳이 이렇게 까지 해서 훼방을 놓을 필요가 없는데? 결론적으로 난 또 일주일을 하늘을 보며 기다리게 생겼네. 너랑 나는 정말 사사 건건 안 맞는구나.
유리컵 안에 짜증과, 비아냥이 한데 섞여 무슨 맛인지, 색인지도 모르겠다. 생전처음 느끼는 이상한 마음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앉아만 있었다. 일주일 더 기다려야지. 뭐 뾰족한 수가 있겠어...
아기에게 섣부르게 아빠 이야기를 안 꺼내길 잘 했다. 다음 주에는 아빠 보러 가자고 할 수 있겠지.
사전처분이 내려지기 전에, 기일지정신청을 한 번 더 했었다. 결정이 그래서 내려진 것인지는 알 수 가 없지만 아무튼 변호사는 계좌내역을 정리한 문서를 주며 여기서 할 말이 더 있냐고 물었고, 뭐라도 말하고 싶었지만 솔직히 지난 돈 거래내역, 게다가 큰 돈도 없다. 끽해야 십만원이 오고 가고 했던 내역을 보며 특별히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었다.
대신, 좀 더 내 입장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조정위원도 꼭 내가 시험붙어서 잘되고 나니 변심해서 남편을 버린다는 투로 말을 했었는데, 절대로 그게 아니라는 것 쯤은 한번더 강조를 해야겠어서 그 동안 중고책을 간신히 사서 공부한 것과, 남편이 내 공부기간에도 육아를 하나도 돕지 않았던 것. 면접학원비도 친정엄마 카드로 긁었던 이야기를 비참하고도 구구절절하게 써내려갔다.
"그는 직업이 없을 뿐이지, 보장된 월세 수입이 있는 사람이고, 이제 처 자식없이 그토록 원하던 대로 펑펑 쓰며 살 수 있습니다. 저는 고시에 붙었다고는 하나 이미 나이가 사십을 넘었고, 아무 경력도 없이 1호봉인 제 월급은, 그저 안정적인 중소기업에 들어간 정도일 뿐입니다.고시에 붙고 성공한 남편이 조강지처를 버리는 흔해빠진 신파극의 이야기와 제 경우는 아예 근본부터가 다릅니다......"
쓰다보면 또 억울한 눈물이 차오른다.
10시에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러 가서, 안떨어지는 아기를 억지로 떼어놓고, 복잡한 생각으로 축 쳐진 어깨를 하고도 단지 내의 100미터 정도 되는 길을 달려와서 공부했었다. 주제 하나를 읽고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설겆이를 하고, 다시 책을 보며 빵조각 하나를 먹었다. 공부 중간 중간 중고책이 있나 살펴보고, 5시에 아기를 찾아와 같이 장을 보러가고, 산책을 하고. 돌아와서 저녁을 차리고 먹이고, 집안을 돌며 놀다가 12시가 다되어 아기를 재우고 나오면,
집은 아기가 놀던 난장판 그대로 였다. 내가 공부해야하는 식탁위에서 우걱우걱 과자를 먹고 있는 남편을 힐끗보고 집을 치우면, 그도 슬슬 자리에서 일어난다. 쌓인 설거지를 하고 식탁위를 정리하고 나서야, 꾸벅 꾸벅 졸면서, 책을 봤던 날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