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어찌 하다보니 전처럼, 아기가 토요일마다 가는 미술학원에서 면접교섭이 시작된다. 내가 아기를 데려다놓으면, 수업이 끝나고 남편이 찾는 방식이다. 어떻게 아기를 돌봐야 하는지 세세하게 적힌 설명을 문자로 보내고, 아기의 가방에 갈아입을 옷과 수건 비닐봉지를 챙겨놓는다. 아기가 미술수업을 들어가면 아기의 짐이 있는 곳을 사진 찍어 보낸다. 그리고 덧붙이는 한마디.
절대, 늦지마. 지금쯤은 떠났어야 해. 절대로 늦으면 안돼.
면접교섭이 재개된 첫 날에는 한동안을 미술학원 옆에서 떠나지 못하고 혹시나 늦게 되면, 내가 가야하니 불안해서 어디를 갈 수가 없었다. 안절부절 못하며 아기가 아빠차를 타고 떠나는 것 까지 몰래 숨어 지켜보고 나면 다리가 풀려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두번째 날에는 그래도 노트북을 챙겨들고 근처 카페에 앉아서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었고,
세번째 날에는 보고 싶던 전시회에 가볼 수도 있었다.
.. 아기의 태명은 AD 였다. 아기를 임신하고, 입덧이 심해 움직이지도 못했을 때, 목사님이 안수하며 주신 태명이었다.
"이 사람의 인생에 새 봄이 찾아왔습니다. 주님이 아이를 통해 그에게 봄을 주실 것입니다. 보라 옛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으니. 이제 이 인생에 주님이 오셔서 새로운 시대 AD 가 시작될 것 입니다. 보십시오 모두, 그를 부러워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인생이 그의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
목사님이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상태인지. 모르시는 구나.. 더구나 이제 아기까지 생겨서 공부도 못하게 되어버렸는데. 어차피 내내 시험에 떨어져 쓸데도 없지만 그나마 하는 것중에 잘하는 거라고 하던 공부도 못하게 되버리고. 정말 이제는 회생이 불가능한데.. 이제 밥순이 취급에 불만을 품지 못하게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이 상황에 순응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데 이런 나를, 누가 부러워할까.
기도받는 와중에도 절망 속에서 허우적 거렸었는데.
과연 아기는, AD였다.
아기를 낳고 내 인생은 정말 많이 바뀌었다. 아기를 두고 공부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시험을 붙었고, 당당하게 이혼을 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결과적인 것들 보다도, 성과를 내기 위한 기운을 얻었다는 자체가 더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신생아를 열심히 먹이고 재우는 과정은 정말 어렵고 힘들었지만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부어주었다. 아기와 눈 맞추는 시간이 늘어나며, 내 영혼의 깊은 패임이 조금씩 채워졌을 것이다.
불과 작년 이맘 때에는 식모처럼 너무 당연히 살림을 하고 어깨가 빠지도록 남편과 시댁의 시중을 들던 내가... 올해는 회사에서 존칭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
주일날, 평소처럼 밥을 먹고 있는 나를 보며, 지인이
" 난 요새 ㅇㅇ이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워" 라는 말을 했다. ㅇㅇ이는 우리 아기이름인데, 웃으며 무슨 소리냐고 물으니, 엄마가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잖아.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