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33)

사랑했다면

by 도미니


남편은 매주 나를 만나지만 내 얼굴을 보지 않는다.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굉장히 어색하게 뒤돌아서는데 그게 그에게 최선임을 잘 알고 있다.

사실 난 그렇지 않다. 남편을 봐도 아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조정기일에 헛소리하고 예물을 돌려달라는 소리를 할 때는 그 뻔뻔함과 자기합리화에 화가 났지만, 그 외의 경우 남편의 얼굴을 봐도 화가 나지는 않는다. 웃어줄 수도 있고, 안부를 물을 수도 있다.

얼마나 힘드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복잡한 절차문제를 빼면 남자친구들과 헤어질 때보다 훨씬 덜 힘들다고 했던 말은 진심이었다. 두렵고 힘들긴 해도, 그가 그립거나 아쉽지 않다. 하나도 정말 하나도 보고 싶지가 않았다.

이건, 사실 전에도 그랬다.

세상에 지친 30대 초반에, 초라하기 짝이 없던 나를 향해 마음을 주었던 사람이 남편이었다. 한창 빛나야할 나이인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에 나는 직업이 없었고, 당연히 벌이가 없었다. 칸트는 인간의 생존 필수 조건이 일과 희망과 사랑이라고 했는데. 어머나 생각해보니 난 3가지 중에 하나도 없었다. 매일 이러고 어떻게 사나... 하면서도 꾸역꾸역 살겠다고 밥을 먹는 내가 지겹고 싫었었다.

남편을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도서관에 공부를 하러 버스를 타고 가는데, 버스 유리창에 내 얼굴이 비쳤다... 왜 저렇게 못생겼지..? 와, 이제 진짜 나이가 먹어서 어떻게 안되는 구나. 너 돈도 못 버는 데 이렇게 못생겨서 정말 어떡하냐.. 생각하며 도서관으로 간 그날. 남편을 처음 만났었다.

아주 오랜만에 누군가 나를 먼저 당겨주니 연애라는 것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나는 관심이 없는데, 공동체로 엮이지 않으니 뒷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늘 캠퍼스 커플을 하며, 얘랑 헤어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두려움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내 장점들을 예뻐해주었다. 아무리 봐도 내 안에 그에 대한 사랑은 솟아나지 않아서 몇번 거절을 했지만, 사실 너무 외롭고 막막했던 터라. 누가 나로 인해 즐거워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를 만나는 것은 할 만한 일이었다.

만난지 2주 정도 되었을 때. 아버지가 안 계시고 이모님과 어머님이 산다는 것. 자신이 나온 대학은 편입한 것이라는 것. 나왔다고 했던 법대 대학원은 학위는 없고 수료 상태이며, 지금 다니는 교육대학원은 그만 다니고 로스쿨을 갈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그가 대학원을 다닌다는 사실이 나에겐 꽤 장점으로 보였다. 그저 불성실하게 놀고 먹는 실패한 고시생이 아니라 뭐라도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아서였다. 대학원이 법대가 아니라 교육대학원이라는 새로운 분야라는 것도 꽤 마음에 들었었는데. 그걸 진지하게 다니는 것이 아니라고 하니 잠깐 당황하긴 했었다.

교육대학원을 졸업하면 정교사 2급 자격증이 나온다고 그렇게 좀 잘난(?)척을 했던 게 걸리기는 했어도, 근데 뭐, 어차피 결혼할 것도 아닌데 굳이 저런 이유로 지금 진지하게 고민할 일이 아니잖아 생각했다.

내가 많이 좋아하질 않으니, 생각이 앞서가지도 않았다. 그게 굉장히 깔끔하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락이 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고, 그가 가끔 이기적으로 굴어도 신경쓰이지 않았다. 안보면 그만이었다. 그다지 보고 싶지도 예쁘지도 않아서 그저 그렇게 잔잔히 흘러갈 수 있었다.

그게, 문제였을까.

결혼하고 남편에게 어머니가 1순위이고, 난 그걸 따라잡을 수 없으며.. 남편의 가족이란 자신과 어머님 뒤에 날 끼워 넣은 것이란 걸 깨달았을 때, 함께 여행을 가서 어머님 손을 꼭 잡고 앞서 가는 둘을 보며, 당황은 했지만 화는 나지 않았다. 저렇게 아들이 이쁘구나.. 그럼 둘이 행복하세요. 전 별로 갖고 싶지 않아서 빼앗고 싶지도 않아요. 우아하게 관망하는 쪽을 택했다.

이것도, 문제였겠지.

내가 아무리 쿨하게 마음 먹었더라도 인간적인 예의와 도리 측면에서라도 아내가 1순위가 아닌 남자와 사는 것은 사사건건 힘이 들었다. 난 그를 사랑하지 않아도 10을 기본으로 하는 사람이고, 그는 어머니를 제외한 세상여자들 중 가장 사랑하는 나에게 2밖에 못하는 성정의 인간형이다. 그리고 결국 도박이니 바람이니 파산이니 하는 겉으로 보이는 귀책사유 없이 이혼을 택한 지금, 사랑이 있었다면 이런 문제들을 넘어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를 사랑했다면, 어머니로부터 어떻게든 돌려오려고 노력하고, 그의 단점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했을까. 그럼 이 이혼의 귀책은 결국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결혼한 내 탓인 것만 같은데.

아가, 엄마가 아빠를 사랑했다면 우리 아가가 좀 더 행복하게 클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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