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 (37)

휴가

by 도미니

작년 이맘 때에는 연수원에 있었다. 아기를 친정부모님과 잠시 귀국한 언니와 조카와 함께 두고

연수원에서, 평균 15살의 나이차이의, 아마도 우주에서 제일 행복하고 즐거웠을 친구들과 같은 공간에서, 그러나 혼자. 있었다.

아기를 키우다 시험에 붙은 멋있는(?) 그리고 행복한(?)언니와 누나의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서. 섣불리 동기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신상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었다. 이미 익숙하지 않은 바이브 속에 몸을 지탱하며 서 있는 것 만으로도 기운이 몹시 부쳤다. 일과가 끝나면 방으로 돌아와 마룬5의 음악이나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영화를 틀어두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우리 아기는 뭘 할까. 지금은 어떤 상황일까. 어두컴컴하게 있다가 지금 이 시기를, 나중에 지나고 나면 어쨌든 소중한 시간들일텐데 이렇게 흘려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 이 이혼일기 였다.

근처의 천고가 높고 인테리어가 마음에 드는 카페에 가서 컴퓨터를 켰다. 연수를 받느라 잘 먹지 못했던 진하고 단 커피와 빵, 따뜻한 아메리카노까지 시켜두고, 포크와 접시의 금장장식이 참 예쁘다 생각한 후에.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한참을 울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땐 더 했다. 쓰다보면 억울한 눈물이 차오르고, 화가 나고, 서럽고 불쌍했다. 자기연민에 빠진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모양빠지는 일인 줄은 잘 알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시간은 내가 나를 마음껏 가엾어 해보고 싶었다.

불쌍해라.. 딱해라.. 안쓰러워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소송이 힘들고, 연수가 버겁고. 이것은 사실 둘째 문제이고 굉장히 수치스러웠다.

왜인지 누군가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 대우 받지 못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결국은 이렇게 내가 소중하게 가꾸려던 울타리가 무너지고, 어떻게든 이어가보려고 하다가 거절당하고 내쳐진 기분.

남편이 생활비도 주지 않고 던져버린 여자. 자신에게 모든 것을 허락받고 움직이도록 하찮게 대한 여자. 본인 집안의 자동차보다도, 가전 보다도 가구보다도 덜 중요한 소모품 취급을 당했다는 것이 화가 나고, 사과 받지 못함이 미치도록 억울했다.

종종 하나님께 묻는다. 왜 이런 상황을 맞이해야 하나요. 저는 뭘 잘못한 걸까요. 쟤는 도대체 누구인가요. 제가 어떻게 해야하는 건가요. 어떻게 했어야 하는 건가요. 끊임없이 물어도 대답은 오지 않아서.

아기없이 혼자 한가로이 보낼 수 있는, 어떻게 보면 황금같은 시간들이 전혀 즐겁지 않았다. 너무 비참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토록 원하던 시험에 붙고나서도 이런 비참함을 느끼다니 나는 정말 구제 불능이로구나 하는 생각까지 더해져서, 온통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불행감은 더 부각되었고, 쉴 수 있는 시간에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날들이 하루 하루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나던 어느 날, 목사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내가 오늘 반석을 위해 기도하는데..
우리 반석이가 아주 좋은 휴양지에서 쉬고 있었어요.
야자수가 달려 있고, 날씨도 너무 좋고 완벽한 곳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휴가를 보내고 있었어요.
반석에게 곧 좋은 휴식의 시간을 주시려나 봐요.

마음껏 누리세요.


휴식... 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휴가를 누릴 수가 있을까. 미친 척하고 해외에 나가서 즐겁게 놀면 되는 것일까..? 그런다고 마음의 억울함이 풀어질까..? 아닌데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이 상태로는 어디에 가서 뭘 하든 누구를 만나든 전혀 전혀 나아질 것 같지가 않은데.

그러면, 나는 뭐가 하고 싶은 걸까... 뭘 하면.. 괜찮아 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사과, 받고 싶다. 사과 받고 싶어.
하나님 그 잘난 입으로 미안하다는 소리. 듣고 싶어요...

하지만 그럴 리는 없다.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일을 이지경까지 만들지도 않았을 것이다. 5년 넘게 살면서 그에게서 진정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손에 꼽았다. 항상 본인만의 궤변이 있었고, 논리가 있었다. 이제 굳이 굳이 그걸 깨겠다는 생각은 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https://brunch.co.kr/@annodomini/15


22년 8월의 셋째주 한 주 동안 그는 내내 이상한 모양이었지만 사과를 해왔다.

1) 평소라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아침부터, 아기를 출산하던 병실사진을 찍어놓았다며 사진을 보내고, 우리는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함께 한 부부이며 블라블라... 아침부터 비가와서 이렇게 훌쩍대는데 니가 내 맘을 알아줄 지 모르겠다며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늘어놓고,

2) 8월 말이던 아기의 생일날은 케익을 사왔다며 줄기차게 연락을 해대더니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굳이 내가 다니는 교회 앞에다 케익을 두고가고 - 평소에 교회 가는 문제로 날 굉장히 괴롭혀왔던 사람이다.

3) 마음껏 편하게 짐을 가져가라고 해서 집안에 들어갔더니 장문의 손편지를 써서 식탁위에 올려두었다. 너와 나는 평생 함께할거야. 어쩌고 저쩌고 정말 미안해 어쩌고 저쩌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으며, 어떻게 고치겠다는 이야기같은 건 애초에 나와있지도 않았다. 나도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같이 살고 싶은 마음을 접은 지 오래였다. 나는 그에게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했다. 사과를 해온다고 해서 울컥 한다던가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 아기를 돌봐야 하고 적응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쟤야 저러든 말든, 생각하고 다시 연수원으로 돌아왔다. 이제 3일. 남은 연수는 3일이다. 3일을 보내고 나면 수료식이 있고, 나는 집으로 가서 우리 아기와 지낼 수 있다. 새로운 곳에 출근을 해야하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굳은 얼굴이라도 3일만 잘 버텨보자. 3일만 지나면 괜찮을 거야. 이제까지 참 잘했어.

그런데,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람들 속이었는데, 이전과는 완전히 른 3일이 펼쳐져 있었다.


난 더이상 버림받은 사람이 아니
자존감없는 못난이였던 자아가 남편의 사과를 받고서야 스스로 명분을 얻고 기죽을 펴는 것이 느껴졌다.

울며 걷던 연수원 근처의 산책길을 이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을 수 있었다. 습기와 안개로 자욱한 호수 주변의 나무데크는 향기로웠고, 걸음을 따라 삐걱거리는 소리가 속삭이듯 정겹다. 정글같이 무성한 풀숲이 내쉬는 숨은 안도와 쾌감을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속을 걷는 내가, 대견스럽고


아름다웠다.


버림받은 게 아니야. 내가 버린 거야. 사과를 받았어. 내가 맞았어. 내가 잘했던 게 맞아. 잘못한 게 정말 없어.

수년간 가스라이팅을 당해 나조차도 의심하고 부정하던 나의 옳음을, 그의 입을 통해 확인받으니 이렇게 시원하고 후련할 수가 없었다.

주님이, 하셨구나.

그가 진정으로 나에게 화려하고도 즐거운 휴가를 주셨구나.

눈물을 뿌리며 걷던 진천의 거리거리를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씩씩하게 걸어다닌다. 슬픈 기억을 행복감과 충만함으로 덮어야지. 지난 내 짧은 인생도 앞으로의 긴인생도 이렇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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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쯤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렇게 괜찮을 줄 그 때 알았더라면, 더더 안심했을 텐데 말이죠.

그럼에도, 그만큼이라도 평안하게 지나게 해주신 주님께, 그리고 함께 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더위가 몇발짝 지나간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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