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42)

남편

by 도미니

그와 문자를 주고 받으면서 동시에 변호사에게도 연락을 했다.

늦은 밤인데, 정말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근데 제가 짐을 가지고 나올 때 그가 집에 있어도 되는 건가요. 자기가 집에 있겠대요. 집을 비워야하는 것 아닌가요. 제가 그것까지 요구할 수는 없는 건가요...

- 집에 피고가 있고 없고는 정하지 않았어요. 만약에 집에 있겠다고 하면 막을 수는 없어요. 하지만 짐 가져가는 것을 방해하거나 하면 저에게 연락주세요. 제가 대신 이야기하고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쉬시고 계실 텐데 바로 확인하고 답 주셔서 감사해요.


정신을 부여 잡는다. 어쨌든 그가 날 보고 싶어하고 있다. 이 틈을 놓치면 안돼. 달래고 살살 구스르자. 어쨌든 난 짐만 가지고 나오면 돼. 감정에 흔들리지 말고 원하는 것만 생각하자.

- 나랑 얘기가 하고 싶으면 짐 빼는 시간을 금,토,일 3일을 줘. 그러면 충분히 보고 짐을 가져올 수 있어. 금요일이랑 토요일은 오빠 없는 시간에만 들어갈거야. 그러면 큰 짐을 정리해서 일요일에 가서 라면 먹고, 자잘한 짐만 가져나올 수 있어. 아기 데리고 이사를 해야해. 당장 월요일부터 출근이야. 휴가를 쓸 수도 없고 어린이집 적응도 시켜야해. 나한테 여유가 없어서 그래.

"알았어. 그럼 일요일에 봐"


비밀번호를 받았다.

바로 변호사에게 문자가 다시 왔다.

남편이 천만원 과태료 처분을 받은 후로 몸을 사리는 분위기에요. 재판부에 밉보일까봐 안절부절하는 눈치입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면 저에게 바로 전화하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가 판사에게 모든 걸 다 말하고 불리하게 만들 수 있다고 이야기할게요.

네, 네 변호사님 감사합니다. 믿고 짐 열심히 빼올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뭐가 어떻게 되어 가는 지 알 수가 없다. 순식간에 우리는 이런 사이가 되어버렸다. 가끔 꿈이길 바란 적도 있지만, 그가 전혀 보고 싶지 않은 내 감정은 팩트였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 왔으니 쉴 수가 없다. 정 피곤하면 구석에서 조금 눈을 붙이고 열심히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노를 저어야 한다. 빨리 정말 하루라도 빨리 이 망망대해에서 벗어나려면 그 수 밖에 없다.

짐을 빼는 것 말고도 일이 정말 많았다.

아기의 어린이집은 달라는 서류가 많았고, 난 아직도 며칠간은 수습이라 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다. 남초집단의 이 회사에는 어린 아기를 키우는 내 직급의 여자직원이 전국에 나 하나여서, 그 누구도 내 어려움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기의 다친 상처를 보기 위해 성형외과를 가야하는데, 내가 출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상사와 동료들과의 회식은 끊임없이 잡혔다. 근 2주간 점심 저녁 모두 약속이 있었고, 아픈 아기와 복잡한 마음을 뒤로 하고 거기서는 아무 걱정 없다는 듯 웃고 떠들었다. 해야할 일 투성이에, 말도 안되는 것으로 싸워야 하는 전남편에, 매끼니를 다른 사람들과 새로운 식당에 가서 먹으니, 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채로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대화 중에 잠시 마음이 풀어져서 혼자 가서 아기를 돌보며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회식이라도 하면 어쩌면 좋지. 하는 걱정을 내비치면, 다들 에이 요새 회식 없어요. 한마디씩 하지만, 그들의 회식 없음은 한달에 한번 ""에 없다는 말이고, 그게 나한테는 한달에 한번"이나" 인 상황이었다.

친정과 교회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진, 아무런 백업멤버 없이 일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게다가 난 싱글맘이기까지 했다. 누구의 이해도 바라지 않지만, 누군가의 이해가 절실히 필요했다.

남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특정한 사람이 아니라, 아기를 함께 키우고 인생을 함께 헤쳐나가는 그저 남편이라는 존재가 내게도 있었으면 참 좋겠다....

남편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남편과 절대적으로 남이 되기 위해 싸우고 있다.

괜찮다.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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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제 누구와 살았던 것이 기억도 나지 않아요. 아기와 함께 있는 생활이 너무 익숙해서 여기 성인 남자가 하나 더 끼어들어온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엄마와 아기만 함께 하는 삶은 참으로 가볍고 산뜻합니다.

그렇더라도, 사실 남편이 주는 안락감이라는 것.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저는 저런 남편이라도 그런 안락감을 20% 정도는 느꼈던 것 같아요.

저 날은 그 안락감, 흠뻑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던 날이었어요.

모두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것 하나는, 결국 모든 판단은 내 손에 있고,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는 냉혹한 현실.이 이혼입니다. 하나도 말랑하거나 부드럽지 않아요. 차갑고 딱딱하기 그지 없습니다.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더라도, 앞이 보이지 않아 마지막 뇌세포까지 사라지는 느낌이더라도.

성장의 기회라고 생각하며 참고 또 발전하시길, 아픔도 기회로 삼으시길.

정말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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