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43)

드디어 TV

by 도미니

아쉬움이나 서러움은 뒤통수 가장 뒤꼭지로 보낸다. 어른들은 모두 그렇게 한다. 감정을 그대로 보이는 것은 아마추어들이 하는 일이고, 사적인 일은 모두 웃는 얼굴 뒤에 감춘다.

나도 이제 어른이니까. 40살이나 먹었으니까 잘해야지 마음을 몇번이나 먹었는데,

금요일, 결국은 질질 울며 과천에서의 마지막 근무를 마무리하고, 전철을 탔다.

심신이 엄청 힘들어서 누구를 의식할 여유가 없었다. 평일 낮인데도 자리는 없어서 커다란 꽃다발과 정장자켓과, 1년(40년일수도) 이 지나 드디어 받은 임명장을 들고 서서 내내 울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관심이 없어서 그러고 울어도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는 않는다. 고맙게시리.

울면서 환승도 했다. 또각거리는 구두소리와 엉망이된 얼굴이 참 어울리지 않는다. 꼭 그림자를 잃어버린 피터팬처럼, 뭔가 따로 노는 듯한 내 자아도 이제 다 포기해버렸다. 짐을 가지러 가야하는데. 오늘 가서 최대한 많이 가져와야 하는데. 겁쟁이라 운전도 못하는 나는 뭘 어떻게 해야할 지 계획을 세울 수도 없다.

택시를 타고 몇번 왔다갔다 할까.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오기 전까지 몇번이나 옮길 수 있을 까 생각하는데. 전화가 울렸다.

- 응 정현..
" 집에 오고 있어? "
- 어 엉엉엉 흐어어 어어엉....

섧게 우는 소리가 내가 들어도 민망하다.
" 현희언니가 차 가지고 온대. 우리 짐가지러 가자! 윤경언니도 온대!!"

교회 친구가 내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힘들다 소리는 했을테지만 솔직히 어떤 말을 했는 지 기억도 나지 않고, 너무 복잡한 일이라 도움을 청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같이 아이를 키우며 지내다가 갑자기 내가 일을 시작하게 되며 이제는 일상을 샅샅이 나누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쉬워도 그저 마음은 하나겠지 하고 받아들였었는데.

그래, 교회사람들이라면 내 못난모습을 받아들여줄 것이다. 정붙이고 살던 집에 1년 만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울어도 피붙이처럼 마음이 상하지 않을 것이지만 또 형제자매처럼 살뜰히 도와줄 것이다.


고향을 떠올린 스칼렛 오하라처럼 안심을 얻고, 위안을 얻어 지인들과 함께 예전 그 아파트에 들어섰다.

오랜만에 간 집은 더 이상 내가 생각한 그 집이 아니었다. 회복 불가능해보이게 망가졌다. 오밀조밀 땀흘리며 꾸몄던 아기 방은 남편의 알 수 없는 짐들로 가득하고, 빨래는 거실 한가운데 빨랫대에 처덕처덕 걸려있다. 애써 데이베드를 구해 붙여 넓게 만든 안방 침대는 사람한명 간신히 잘 자리 빼고 옷인지 수건인지를 던져 놓았고..... 여름이 막 지난 끝인데, 다 찢어진 방풍 비닐은 여전히 그대로 이고, 커피 머신 옆의 커피찌꺼기에 곰팡이가 가득하다. 지난 1년간 이 집을 그리워했는데, 환상을 벗어나 현실을 직시하며, 집에 대한 남은 정도 사라져 버렸다.

이미 재판부에 가지고 올 짐 목록을 사진과 함께 제출했었다. 이제 쌀 한톨만큼도 그를 믿지 않아서. 그것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건들지 않았다. 같이 간 사람과 요즘 교회에는 무슨 일이 있는지, 뭘 해먹었는 지 수다를 떨면서 열심히 짐을 쌌다. 손빠른 애기엄마들이 모이니 순식간이었다.

팰리세이드는 넓어서 60인치 TV가 넉넉히 들어갔다. 뒷좌석 하나를 접고 테트리스 하듯이 짐을 넣고, 정현이가 옆에 앉아 TV를 잡고 가겠다고 한다. 다 싸들고 나와 앉아서야 옛 생각이 났다. 임신 막달에, 막달검사를 하러 양천구 보건소를 갔었다. 거기가면 무슨 검사를 하나 더 해줘서 병원비를 아낄 수 있다고 했다. 8월 삼복더위에 버스를 타고 보건소에 가서 무슨 검사를 하고, 또 어떻게 어떻게 하면 좀 아낄 수 있다고 해서 당산역인가 까지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었다.

너무 덥고 배도 고프고 힘이 들었다. 하나님 외로워요. 뭘 해도 외롭고 무서워요. 저는 이 모양으로 얘를 어떻게 낳아서 키워요...? 출산은 어떻게 하고.. 조리원은 어떻게 해요.. 저 같은 건, 아이도 가지면 안되는 거였는데.. 중얼거리며, 간신히 집까지 와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 때 문이 열리고 교회사람들을 마주쳤다.

양쪽이 동시에 "어? 니가 왜 여깄어?!" 하고 외치고 보니 그들은 우리 층 다른 호수의 지인을 만나러 왔다가 날 마주친 거였다. 서로 집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아직 서로 친하지 않았을 때.

반가운 마음에 우리 집에 들어왔다 가라고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일단 현관으로 들어섰는데. 남편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신발을 벗고 들어와보니, 또 소파에 누워 자고 있네. 오후 3시인데. 공부는 언제 하는 거지. 또 안나가고 집에서 먹다 자다 하는 구나. 그래, 넌 엄마가 부자니까 그렇게 놀고 먹어도 되겠다... 아무 것도 없는 내가 문제지 뭐..

다시 나와 다음에는 우리 집에도 놀러오라며 인사를 하고 헤어졌던 이야기를 차 안에서 나누며, 이렇게 많이 친해진 것도, 이제 새 집으로 같이 놀러가는 것도 참 감사하다는 말을 붙인다.

오후 4시 강변북로에 내가 그토록 원하던 TV가 실린 차를 타고 달린다. 어제 이맘때에는 상상도 못했는데. 일이 이렇게 수월하고 간단히 해결되다니.

지치지 말자. 그가 나를 돌보시니, 아무 일 없을 것이다. 그가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니, 괜찮을 것이다. 낙심하지 말자. 나의 도움이 그로부터 올 것이다...

언니, 정현아 우리 고기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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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TV는 지금 새 집에 잘 자리잡았어요. 집에 와서 밥을 먹이고 나서 매일 8시 반에는 roma & diana 나 danial tiger 같은 방송을 틀어주고 제가 씻으러 들어갑니다. 큰 화면으로 씐나게 보고 있는 아기를 보면 저도 참 흐뭇해요.

사실 교회사람들도 짐 그냥 버리고 오라고 이야기했던 터라 도와달라는 말을 못 꺼냈었는데, 막상 언니들도 TV를 보더니, "니가.. 이래서 이걸 가져오겠다고 했구나.." 얘기해주어서 정말 고마웠어요 ㅋㅋㅋ 그냥 조그만 거 정도일 줄 알았대요. ;-)

얼마 전에 청룡영화제에서 전여빈 배우가,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 이라고 했다면서요. 참 맞는 말 같아요.

다시 한번, 아무리 죽을 것 같아도. 살아만 있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깊이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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