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일기(44)

기도

by 도미니

이사가 끝났다. 몸과 마음이 부서질 것만 같은 상태로 아빠 차에 짐을 꽉꽉 채워서. 연로하신 부모님을 재촉하고, 화도 내고, 미안해 하기도 하면서 새 집으로 들어오던 날은,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고, 그 답답하고 힘든 느낌만 남아 있다.

아무튼 짐을 다 가지고 와서 풀어 놓고는 바로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해야했다. 집에서 보이는 저 낯선 건물로 잘 걸어들어갈 수 있을까. 못 걸어가면 어쩔 것인가. 그냥 또 해봐야지. 생각하는데 카톡이 왔다.

- 어제 이사는 잘 하셨나요?

아..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짐빼는 기간을 3일로 잡았던 것도 변호사에게 알리지 못했다. 연락이 오면 바로 대처해주신다고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전화로 문자로 진상을 떨었는데 생각보다 별 일없이 짐을 가져오게 되서 민망하기 그지없다. 금요일에 모든 짐을 빼와서 토요일인 어제나 오늘은 그 집에 가지도 않았는데, 막상 말하려다 보니 자세한 사정을 옮기기도 챙피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출근 준비하느라 깜빡했어요. 덕분에 어제 짐 잘 가져왔어요. 먼저 연락 못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변호사님.

원래 일요일인 오늘은 진짬뽕을 먹고 자잘한 짐을 가져오기로 한 날이다. 가지 않았다.

나, 이사해야해서 여유가 없어. 오늘은 못 가겠어.

한마디만 날리고 가지 않으니 이렇게 통쾌할 데가 없다. 약속을 조금이라도 어기면 과한 죄책감에 몸둘 바를 모르는 성격인데, 어째 미안함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 기다렸을 그가 딱하지도 않다.

어쩜 이렇게 못돼먹어졌을까? 나도 나에게 종종 놀라지만, 이게 소송을 진행하고 상황을 버티기에는 훨씬 도움이 되서 또 마음에 들었다. 제 나와 우리 아기의 안위 외에는 중요한 것이 없다. 그 집도 더이상 가고 싶지 않아졌다.


.... 소송을 처음 시작했을 때, 혼자 있게 될 때마다 살 던 집에 가고 싶었다. 워낙 변화에 적응을 못하는 성격이라 갑자기. 늘 갈 수 있던 곳에 이제는 못 간다는 것을 몸도 마음도 납득을 하지 못했다. 그 집에 가고 싶을 수록 괜한 일을 시작한 것 아닌가. 내가 좀 더 참았으면 되는 건데 하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였다.


창고같았단 옷방을 개조한 우리 아기방. 좁은 방이지만 아기의 책들과 장난감들이 칸칸히 예쁘게 꽂혀있고, 바닥에 딱 맞는 알록달록 카페트를 깔아놓아 너무 아늑하고 예뻤던 우리 아기방. 때로 유난히 칭얼대고 잠 못 이루던 밤에는 방에 가득차게 이불을 포근포근 덮고 아기를 안고 그 방에서 수면등을 켜고 조근조근 책을 읽어주던 밤들. 이 자꾸 생각났다. 그리웠다.

사태를 되돌릴 수 없다는 불안감이 모락모락 피어나며 거대한 연기를 이룰 조짐이 보이면 아예 그곳을 갈 수 없는 장소로 나를 옮겨 버렸다. 상황을 감당할 힘도 의지도 나에겐 없었다. 얇은 종이배를 바다에 띄워버린 이 무모함에 당황하며.

다시 기도를 시작한다. 두려움에 질려 울지도 못하는 채로, 떨리는 손으로 성경을 펴고.

주님, 날 도우세요. 주님 절 도와주세요. 제가. 죽게 생겼습니다. 제가 잘못한 일이 있거든 주님의 방법으로 제 자리로 돌려주세요. 아무것도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확신도 믿음도 잃어버렸습니다. 제 마음을 주관해주세요. 절대 그렇게 해주셔야 합니다.. 절 책임져 주세요.

한참을 중얼거리다, 깊은 곳의 피를 토하듯, 신음소리가 터져나오면 그 때부턴 괜찮은 것이다.

안도감에 울고, 또 울고 또 울던 날들 속에서

간신히 뱉어내던 가느다란 간구가 있었다.

그 집보다 더, 좋은 집을 주세요. 하나님. 우리 아기랑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깨끗하고 작은 집을 주세요. 하나님.

근데, 저는. 집살 돈이 없는데 어쩌면 좋아요...

술 취한 사람처럼 오락가락하던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을,

그가. 기억하고, 내밀어 주신 이 소중한 밤들을. 평생 잊지 말자. 또 어떤 괴로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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