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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미니 May 04. 2024

이혼일기(63)

이스타

6시 

퇴근해서 어린이집으로 달려가 반가운 얼굴로 달려나오는 아이를 만나고,  요즘은 날이 좋으니 놀이터에서 한바탕 놀고나서


집으로 오는 길에 편의점을 들리겠다고 고집부려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는데, 왠일로 지금 먹겠다고 우기진 않으면


7시 

반가운 엄마 잡고 팡팡 뛰며, 뜬금없이 엄마를 원망하기도 하는 작은 사람을 데리고 집에 와서 빨리 저녁을 차리고 수월하게 먹일 수 있다.


8시 

손씻으라고 보낸 화장실에서 물장난 한다고 난리를 쳐놓으셔서... 씻기고 새옷을 입히고 유투브를 틀어주고 나서,


나도 씻고 주방과 세탁물을 모두 정리하고서 같이 텔레비전 앞에 누우면


8시 30분. .


퇴근 직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거나, 과장님이 일장연설을 시작하는 날에는 퇴근이 무한정 늦어지고,


어린이집 놀이터에서 놀고서도 집 앞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마주치면 또 거기서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아이스크림을 사자마자 먹겠다고 우기면 배가 불러버린 아이에게 집에와서 저녁 먹이는 일로 계속 실랑이를 해야하지만,


오늘은 정말 운이 좋았다.


이렇게 해서 9시에 잠들면 다음 날 아침도 수월하다. 정말 완벽한 하루였다.


이런 날은, 손에 꼽는다. 아이를 키우며 파워 J가 되어버렸는지, 예정된 순서에서 하나라도 어긋나면 몹시 힘이 들고 불안하다. 출근 준비를 마친 아침 7시가 넘어가면 마음이 초조해지고, 영 못 일어나는 아이를 붙들어 나올 때마다 눈물을 애써 참는다.  


 엄마 출근에 맞추느라 매일 7시반에 일어나지만, 이제야 낮잠을 떼어가는 만 5세도 안된 아이는 매순간 피곤하다. 친구들과 즐겁게 놀다가도 엄마를 보고 긴장이 풀려 졸리면 말도 안되는 트집을 잡아 생떼를 쓰고, 이렇게 정도를 벗어나는 고집은, 이 아이의 본심이 아니라 잠투정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때마다 상처받는 것도. 어쩔 수는 없었다.


하긴 오죽하겠는가.. 나도, 피곤이 쌓였다. 친정과 불화가 쌓인 1월 이후로 하루도 두다리를 뻗고 쉬어본 적이 없다.


죄책감과 억울함 사이에서 마음은 괴로웠고,

토요일은 운전연수를 받기에 바빴고,

주일은 예배를 드리고 아이를 업고 전철과 버스를 갈아타며 2시간 거리의 집으로 가느라 고되었다.


 아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잠이 들면 잠이 든 채로  아이를 안고 계단을 오르내렸지만, 그게 깊은 잠이었을 리가 없다. 내 목덜미를 붙든 손에 힘이 빠지면 놀라며 다시 붙드는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사람이 많은 전철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울기도 하고, 멀미를 하며 토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엄마 회식도 다 따라다니고 우리 아기. 정말 정말 힘들텐데 이를 어쩌나. 생각만 하고 뭘 제대로 해줄 수도 없는 날들만 흘러갔었다.


 이제, 운전을 할 줄 아는 나는 뒤에서 침을 흘리며 자는 아이를 백미러로 흘긋거리고 바라보며 강변북로를 달린다. 늘 피곤할텐데 차에서라도  푹 잘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감사했다. 차를 사자마자 부스터카시트를 사고 헤드레스트도 사고 이것저것 장난감과 휴지를 꽂을 수 있는 킥매트 먼저 주문서 아이의 공간부터 세팅했다.


토요일 이른 새벽, 담요로 싼 자는 아이를 안고 내려와 차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앉힌다. 안전벨트를 채워주고 자세를 잡아주고 담요를 꼭꼭 덮어주면 된다. 혹시 모르니  손닿을 곳에 물 한병과 장난감을 둔다.


이스타. 오늘도 부탁해. 예배드리게 해줘서 고마워.


부활절에 얻어 이스타란 이름을 갖게 된 우리 차는, 잠을 못 자 창백하기까지한 나와 아이를 성전으로 편안하게 데려다주었다.


 출퇴근을 하며 아이와 이스타! 안녕! 하고 인사를 하고, 토요일 새벽이면 또 덜덜 떠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운전을 해서 교회를 가고, 고마운 교회 친구네 집에서 아이와 선잠을 자고 주일 예배가 끝나면 다시 덜덜 떨며 관사로 돌아왔다.


 남들은 모두 예사로 하는 일을, 나는 왜 이렇게 매번 어려운 건가.. 하는 생각은 금방 지운다. 뒷좌석 헤드레스트에 기대어 편안히 자는 아이 모습이면 충분하다. 되뇌이며 용기를 갖고 마른침을 백만번쯤 삼키며 오늘도 강변북로를 무사히 지나왔다.


 4월 12일은 조정일이다. 연가를 내고 가정법원에 가야한다. 그날은 아무 위안 거리가 없으니 운전은 무리다. 그냥 전철을 타고 가야지. 끝나고 돌아와 우리 아기를 안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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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은, 꼭 총알이 장전된 총을 들고 다니는 기분입니다.


내가 핸들을 잘못 꺾으면, 브레이크와 엑셀을 잘못 밟으면, 나와 다른 누군가의 일상의 평화를 부서뜨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늘 괴로워요 ;ㅂ;


언제쯤 즐기게 될까요.


오늘로 운전한 지, 5주가 되었고, 진일보 하였습니다. 매일 나태하고 멍청하다고 저를 구박해왔는데, 정신차려보니 세상에 돈도 벌고 애도 키우고 운전도 하고 다니네요.


오늘도 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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