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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범 Jan 10. 2024

상대가 내 맘 같지 않을 때 힘들다

일이 잘 안 풀린다 해도 사람관계가 꼬인 것보단 풀기 쉽다

사진: Unsplash의 Luis Villasmil







1. 오늘은 10시 반부터 본사-공장회의가 있는 날이다.


공장에서 추가로 공유 시트에 남긴 질문에 대해 팀원에게 확인하고 참석한다. 


총 3개의 영업부서와 제조공장부서가 화상으로 회의를 한다. 카메라는 노트북 카메라이고, 본사에는 마이크도 있지만 소리가 메아리쳐서 한 사람이 상대 스피커를 껐다 켰다 반복해야 한다. 공장은 노트북 스피커를 쓰는지 가까이에 있지 않으면 끊겨서 들린다. 아주 열악하다.


그렇다고 해서 오프라인 미팅을 하고 싶진 않다. 이동시간이 아깝다. 


오늘은 안건이 그나마 좀 심플했다. 날카로운 비판도 없었고, 깎아내리거나 비아냥거림도 없었다. 다른 부서의 새로운 사업 얘기도 듣고, 회사 돌아가는 것도 듣는다. 


40~50분의 회의가 끝난 후 자리에 돌아와 메모한 것을 정리하여 팀원들에게 공유한다. 회사 돌아가는 얘기, 다른 사업부 얘기도 흥미롭지만 한편으론 나도 자리에 앉아서 내 일을 하다가, 팀장이 공유한 내용을 듣고 끄덕이고 싶기도 하다.




2. 어제 진행했던 미팅내용을 정리하여 팀장에게 공유한다.


어제 바로 정리하고 싶었지만, 어제는 어제의 일이 있었다. 그렇다고 구두로 미팅 내용을 전하자니, 내용이 날아갈 것 같다. 그래서 어제 메모했던 내용을 토대로 미팅록을 작성했다. 미팅 시간이 짧아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내용은 적었다. 금방 정리하여 팀장에게 보냈다. 


팀장은 딱히 관심이 없어 보였다. 단가를 다시 책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데, 미팅록 향후진행사항에 이미 적어두었다. 


단가를 재책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곤 말했는데, 팀장에게 다시 책정해 달라는 말은 안 했다. 알아서 해주려나.




3. 챗GPT 가입해도 되는지 자금팀 담당자에게 물어봤다.


대표가 물어오기 전에 챗GPT 유료를 사용해봐야 했다. 다시 결재받으러 가기 전까지 이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걱정은 '기안서'를 써야 하는 것인가였다. 이건 언제 쓰고 또 언제 결제하나. 


그래서 자금팀 담당자에게 슬쩍 가서 챗GPT 아냐고, 대표가 하라고 했는데 결제하고 지출품의서 작성하면 될지만 물었다. 그랬더니 그러면 될 것 같단다. 오예 그럼 기안서는 쓰지 않고 넘긴다.


자금팀 팀원도 엑셀을 진짜 잘하는 만능 엑셀꾼인데, 챗GPT를 이미 엑셀 할 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유료화하면 본인도 쓸 수 있냐고 묻길래, 마케팅 구글로 가입할 테니 공유하겠다고 얘기했다. 


유료버전은 무료버전보다 뭐가 나을까. 달리를 쓸 수 있는 것 같은데 기대된다.




4.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세트 제품명을 전체 수정했다.


우리 브랜드의 세트명은 OO세트가 아니라 OO팩이라는 단어를 쓴다. 그런데 팩으로 끝나는 제품이 또 있다. 그렇다 보니 고객들이 세트에 팩 제품이 있는 줄 아는 것이다. 


그런 문의를 하는 고객들이 있다 보니, 해당 문의를 많이 받게 되는 배송문의 담당자가 건의를 해왔다. 제품명을 직관적으로 쓸 수 없을지 하고 말이다.


왜 안 되겠는가. 나도 팀원들과 이 얘길 나눴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무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주지 않으니 스스로 묻은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고객의 소리라고 담당자가 의견을 내주니 안 바꿀 이유가 없지 않은가.


광고에 문제가 없는지, 혹은 다른 문제가 없는지 팀원들에게 확인하고 내가 바로 바꿨다. 신입들에게 도움을 요청할까, 아님 인계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제품명 바꾸는 건 이제 신입들도 할 줄 알 테니, 내가 하고 말지.


다른 곳은 어떻게 세트명을 쓰는지 벤치마킹하고 제품명을 하나하나 고쳤다. 판매처가 3군데라 다행이었다. 세트 제품명을 모두 바꾸고 건의해 준 담당자에게 공유했다. 속이 다 후련하다. 개인적으로 구리다고 생각했던 OO팩을 없애니 제품명은 길어졌지만 오히려 더 명확해진 느낌이다.




5. 화장품책임판매업자 업무 내용을 확인했다.


화장품책임판매업자 업무 담당을 우리 팀원들로 팀장이 지정했지만, 아주 모호했다. 그래서 한차례 팀장에게 담당자를 확실히 하면 좋겠다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팀장은 어떤 부분이 모호한지 몰랐던 것 같다.  


내가 말하는 모호함은 이 업무를 로테이션으로 담당한다는 점이다. 11~12월은 A팀원이, 1~2월은 B팀원이 3~4월에는 C팀원이 담당하게 되니 책임감이 분산된다. 모든 팀원이 이 업무에 대해 알아야 한다. 2달에 한번 인수인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비효율적이라 생각했다. 팀장에게 모호하다고 했을 때 내 생각은, 이 업무는 팀장이 혼자 맡으면 되는 것이었다. 굳이 모든 팀원이 이 업무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나 싶었다.


무튼 관리품과 여러 자료들이 잘 구비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퇴사한 전임자에게 어떻게 하는 건지 방법에 대해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다. 그랬더니 B팀원이 와서 이 업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품질관리팀 과장에게 물어봐 달란다. "친하시잖아요." 안 친하다. 싫어하는 쪽이고 되도록이면 통화를 피하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업무를 해야 하니 과장이 기분 좋을 땐 기분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그뿐이다. 나를 시키는 B팀원의 태도가 기분 나빴지만, 또 한편으론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하고 싶지 않은 업무를 하는데, 까다로운 그 과장을 상대해줘야 하는 건 파트장 아님 팀장이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 나도 어떤 부분에 있어서 '팀장이 얘기해야 하지 않나?' 했던 부분도 있으니까 말이다.


과장에게 연락해서 방법을 확인했다. 그리고 담당하고 있는 A팀원과 B팀원에게 공유했다. 


그러고 나서 본사-공장회의를 다녀왔는데, 그 사이에 관리품 정리를 끝냈나 보다. 결국 B팀원은 전임자였던 퇴사자에게 연락을 했다더라. 1년 치 관리품을 확인해야 했는데 엄두가 안 났겠지. B팀원이 내용을 공유하면서 덧붙인다. "너무 비효율적이잖아요, 1년 치를 다 확인하는 건요. 그 1년 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요." 잘했다고 말했다. 잘 확인했다고. 


내가 직접 실행한 건 아니지만, 하루치 에너지를 일부 쓴 건 확실했다.




6. 제품이 오늘 중에 품절날 것 같다며, 공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품절이 났으면 빠르게 추가 주문이 없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내가 할 수도 있지만, 나는 고차원의 업무를 해야 하는 사람이다. 이건 팀장의 조언이기도 했다. 신입 2명 중 1명에게 이 업무를 맡기고 싶었다. 1명은 품절 났던 다른 제품 공지를 오늘 만들고 페이지에 노출했다. 그래서 다른 1명에게 이 일을 넘기겠다고 팀장에게 말하며, 이런 업무는 번갈아가면서 요청하겠다고 했다. 팀장도 OK 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지시를 하려다가 B팀원이 담당하고 있는 브랜드(B팀원은 자기가 담당하는 브랜드냐며, 모른다고 했지만)의 제품이 품절이었기에 먼저 B팀원에게 개인톡으로 내용을 알려주고 신입과 같이 품절처리를 하라고 했다. 



신입을 가르치는 게 기존 팀원들의 의무겠냐마는, 빨리 가르쳐야 자기 일이 덜어지지 않겠는가. 그럼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업무 하나라도 나눠서 하는 건 어떻겠냐 말했는데 무시당했다. 


그래서 다시 단톡방에 해당 내용을 남기면서 B팀원만 태그 했다.



현 상황과 요청사항을 기재했다. 건조하지만 바로 답은 받았다.


그러고서 퇴근시간까지 처리를 했다는 공유가 없다. 한 건지 안 한 건지, 퇴근시간 때 생각난 나는 먼저 공식몰부터 들어간다. 그리고 떡하니 보이는 '품절'표시. 상세페이지에 들어가니 공지사항을 띄우지도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제품소개에 명확하게 빨간 글씨로 출고예정일을 잘 표시해 두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왜 품절을 해둔 것인가. 


제대로 의사 전달이 안 됐을까? 내 뜻을 알고서 내 메시지를 보니 뜻이 너무 명확하다. 잘못 오해할 부분을 찾을 수 없다. 지식의 저주인가.


답답한 마음에 품절 공지를 만들면서 품절을 풀까 하다가, '혹시 공장 담당자에게 다른 얘기를 들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비중이 적은 브랜드 운영은 신입한테 맡기자고 팀장에게 한차례 얘기했었는데 이젠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냥 B팀원은 이 비중 없는 브랜드를 맡아줘야겠다.




7. 부자재는 다른 본부 디자이너가 맡아주기로 했다.


우리 내부 디자이너가 할 수 없으니 해줄 수 있는 디자이너를 찾아야 했는데 1순위는 오프라인 영업부 소속의 회사 유일 패키지 디자이너, 만약 패키지 디자이너가 너무 바쁘다고 하면 연을 계속 맺고 있는 퇴사한 디자이너, 만약 그 사람도 안된다고 하면 크몽에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마침 공장회의도 있었겠다, 회의 끝나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회의에 참석한 디자이너 소속 부서의 과장에게 패키지 디자이너 시간을 쓸 수 있는지 물었다. 한번 물어보겠다고 해서 함께 자리로 갔다. 디자이너에게 상황을 설명하니 흔쾌히 받아들인다. 이렇게 OK해주는 사람이 동료로 있는 게 얼마나 맘이 편하고 좋은지 모른다. 가장 큰 산이었던 디자이너 찾기는 넘었다.


패키지 디자이너에게 지금까지 나왔던 의견들을 정리하여 메일로 쐈다. 빨리 회신 주면 좋겠다.




8. 11월 비용보고서 작성을 마쳤다. 


11월 비용보고서는 12월에 작성됐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1월이 10일이나 지나서야 작성을 마쳤다. 


작성하다 보니 광고비 지출품의서에서 틀린 부분이 발견됐다. 사업계획서에 이 틀린 비용을 반영했는데 말이다. 담당 팀원에게 얘기하니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 내가 알았다 이놈아.


그건 그렇고 12월 매출/비용보고서는 다음주내로 다 완성시키리라.




9. 우리 디자인은 왜 촌스러운가.


오늘도 디자인 피드백에 1시간은 썼다. 체감상 2시간은 쓴 느낌이다. 


피드백을 요청하는 팀원을 위해 파워포인트를 연다. 그리고 요소가 많은 디자인 배너 위에 깔끔하게, 직관적인 사진 하나를 넣는다. 그리고 '쏟아지는 혜택'을 표현하기 위해 쏟아지는 동전 그림 png를 갖고 와서 넣는다. 음... 요소가 많아 복잡한 디자이너의 배너보단 나은 것 같은데 내가 만든 것도 답이 없다. 타이포 디자인이 별로인 것 같다. 폰트가 구리다. 


우선 내 의견을 텍스트로 전달하고, 허접한 피피티 이미지를 던져본다. 이것도 맘에 안 든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절대 내 이미지를 디자이너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말한다. 내 머릿속에 있던 이미지를 표현해 봤을 뿐, 이걸 그대로 보여주면 디자이너는 그 이미지에 갇히게 될 것이다.


또 다른 디자인 피드백 요청이 들어왔다. 이것도 답이 없다. 빠른 시간 내에 하려다 보니 이전에 사용했던 것을 재활용하는데 재활용해도 하필 별로인 것을 재활용해 온다. 담당 팀원에게 레퍼런스를 좀 찾아서 디자이너에게 보내달라고 말했다. 담당 팀원은 바로 전날에 주고받았던 레퍼런스를 꺼내며 이런 그라데이션을 하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이미지 소스로 구현할 수 있을까? 


또 파워포인트를 열었다. 갖고 있는 제품 PNG와 그라데이션을 적용해 본다. 음. 우선 고정으로 하고 있는 레이아웃 자체가 촌스럽다. 이게 답일 것 같지 않다. 내가 해본 피피티 이미지를 또 던져봤다. 담당 팀원은 맘에 든다고 한다. 난 감이 전혀 안 오는 데 말이다. 그러더니 요청해 봤단다. 급하게 메시지를 남겼다. "제 이미지 공유해주지 마세요!" 하지만 내가 너무 늦었다. 이미 공유했단다. 



이 얘기를 하고 팀장 결재를 받으러 갔다가 우리 공식몰을 보는데, 왜, 우리 공식몰은 이리도 촌스러운가.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10. "우리 CRM은 언제 해요?"


전날 대표가 팀장에게 24년 목표 금액에서도 10%를 올린 금액을 달성하라고 했단다. 그러니까 23년보다 약 29%를 올려야 한다. 


1분기 때는 매출 내는 것은 여유를 갖자고 했던 팀장도 1월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갈굴 곳은 내가 맡고 있는 브랜드뿐이다. 하여 나와 같은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는 팀원 한 명 자리로 가더니 쪼아댔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저 팀원도 지금 장기적으로 매출을 크게 내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할 것을 할당받았는데, 그걸 또 스톱하고 단기적으로 매출낼 이벤트를 짜야한다. 신입한테 할당됐던 것을 이 팀원이 맡게 되었다. 


1월 말에 오픈하려 했던 이벤트를 2주를 당기는 것으로 팀장에게 지시를 받고, 나에게 개인톡을 한다. "들으셨죠?" 어쩔 수 없지, 팀장이 시켰는데. 우리의 목적은 눈에 보이는 매출달성이니까 말이다.


그러더니 묻는다. "우리 CRM은 언제 해요?" 나도 이번주에 1순위로 하고 싶었는데 월요일엔 부자재 리뉴얼 이슈에, 화요일엔 갑자기 잡힌 OEM 미팅에, 수요일엔 월요일에 잡힌 본사-공장회의에, 거기에 공장에서 요청한 1분기 예측 판매량도 수요일까지. 틈틈이 신입 팀원들 피드백까지. 간간이 들어오는 불만 많은 팀원의 볼멘소리까지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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