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일'을 못한 하루다
내 할 것을 정리한 다음 팀원들에게 확인 요청할 것들을 팀원 업무 계획 시트에 적는다. 메신저로 보내도 되지만, 급한일은 아니니 그렇게 해본다. 계획을 세울 때 확인하겠지.
그리고 전날 제품 품절을 시킨 팀원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왜' 그렇게 처리했는지를 물었다. 품절처리를 확인했을 때 내가 품절을 풀까 했지만, 혹시 내가 모르는 담당자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있었을까 하여 고치지 않았다. 그래서 아침 업무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물었던 것이다.
그런 어떠한 변명도 없고, 당황도 하지 않은 채, 수정했다는 답변이 왔다. 어제에 이어서 저런 성의 없는 답변이 오니 심란하다. 이 사람을 어쩌면 좋을까.
혹시 내가 이 팀원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쌓여 있어서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여 친구들에게 어제와 오늘 아침에 이 팀원과 나눈 대화를 캡처해서 보낸다.
친구들은 이미 어제 대화에서부터 열이 받는단다. 나에게 왜 가만히 있냐고 말한다. 팀원이 나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단다.
사실 이 팀원과는 2~3번 정도 이런 태도 때문에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친구들한테 이전에도 "내가 감정적인 거냐"라고 물었는데 그때 팀원도 이 팀원이었다.
"내 간식 먹는다는 팀원이야."
친구들이 기억 못 하는 것 같아서 이렇게 표현했는데 이 친구들한테는 간식 뺏어먹는다는 얘기는 안 했나 보다.
"사탕으로 검색했고 저것도 덜 보낸 거임. 껌 검색하면 또 있을 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 mz오피스 보는 것 같다며, mz오피스에 의뢰하라고 할 정도다. 이러고 있는 내가 답답했는지, 한 친구는 인터넷으로 싫어하는 사람 티 안 나게 괴롭히는 법을 검색해 봤다고.
무튼 친구들과 얘기했을 때도 내가 과민 반응 보이는 건 아닌 것 같고. 이걸 어떻게 풀어야 하나 머릿속이 어지럽던 와중에 또 그 팀원에게 맡겨야 할 일이 생겼다. 이걸 맡기면 이 친구가 또 툴툴거릴 반응이 신경 쓰였다. 이 팀원과 얘기를 시도해보려 하다가 내가 건들면... 퇴사한다고 말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건 위험요소가 있어 보여서 팀장에게 SOS를 쳤다.
팀장에게 어제 오후에 이어서 오늘 아침까지 이 팀원과 나눈 대화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그랬더니 팀장은 이미 느끼고 있었단다. 딱 어제부터. 사람을 관찰하고 눈치도 빠르다는 팀장은 그 팀원의 분위기가 다크해졌음을 알고 있었다고.
팀장이 추측하기론 아마 올해 초 1년에 한 번씩 회사에서 선정하는 어쩌구 리더상을 받지 못해서 일 거란다.
22년부터 생긴 어쩌구 리더상은 상을 받은 후 30개월을 다니면 2,000만원을 주는, 이 회사의 내채공 같은 개념이다. 22년에는 가장 먼저 들어온 내가 받고, 23년에는 그다음 들어온 다른 팀원이, 올해는 사실 이 팀원이 받았을 차례다. 하지만 팀장은 선정하지 않았다. 오래 다녔으면 하는 마음이었다면, 어차피 3년 뒤에 나가는 돈이니까 선정했어도 되지 않나 싶지만, 일을 잘하는, 그러니까 적극적으로 긍정적으로 잘하는 사람을 선정해야 하는 것이 팀장 기준이란다. 작년에 팀장에게 실망감을 준 팀원이기에 이번 상에서 우리 팀 수여자는 없었다. 아마, 그 팀원도 자신이 받을 차례라고 생각했을 텐데 받지 못한 것이 약간의 좌절감을 안겨주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이건 엎질러진 물이고. 팀장은 이 팀원이 퇴사를 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며, 얘기를 들어봐 달라고 했다.
1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자리에 돌아와서 이 팀원에게 메시지를 걸 타이밍을 봤다. 다른 단톡방에서는 그래도 열일하는 모습이다. 기분이 풀린 건가? 그래도 건드려봐야겠다. 아까 일을 맡기려고 했던 것을 바로 요청했다. 그랬더니 알았다고 한다. 팀장과 내가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운 것을 보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음을 아는 것인가? 분위기가 달라졌다. 그래도 짚고 넘어가야 했다.
그랬더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를 엄청 붙이며 메시지를 보낸다. 아침과 다른 텐션이다. 갑자기 오늘 출근길에 생리가 터졌단다. 그래서 생리통이 있어서 누워있고 싶다고. 어제부터 컨디션은 안 좋아 보였는데, PMS였나. 괜찮단다.
그 뒤론 다시 메신저 상에서는 ㅋㅋㅋ 등을 붙이며 텐션을 올린 척은 했다. 하지만 퇴근할 때는 인사를 안 하고 (내가 못 들었을 수도 있지만)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목요일 밤, 그 팀원에게 회사 메신저를 통해 메시지가 왔다.
항상 이런 식이다. 내가 이 팀원의 행동을 '지적'할 때면 그 팀원도 자기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어떤 게 잘못된 행동이었는지 알고 있었다. 지적한 내가 민망 해질 정도로.
그런데 이렇게 메시지를 보내온다. 내 안부 메시지가 걱정으로 느껴졌나 보다. 그렇다면 다행, 인건가.
사람이 뽑아도 답이 되는 건 아닌 건 아니지만, 그냥 사람이 뽑혔으면 좋겠다.
어제 패키지 디자이너와 같은 팀 소속 과장과 얘기했을 때는 가능할 것 같았다. 하고 계신일이 있으니 다음 주까지 되겠냐고. 흔쾌히 된다고 했었는데, 디자이너의 팀장으로부터 오늘 전화가 왔다. 우선순위에 있는 업무들이 많이 밀려서 다음 주까지 하기엔 어렵다고. 디자이너가 의견을 주는 것은 어렵고, 우리가 의견을 주면 수정은 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는 우리 팀의 웹디자이너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패키지 디자인에 대한 나 자신에 확신이 없어서 전문가와 함께 일하고 싶었던 건데. 그래서 팀장에게 컨펌을 받고 이전에 이 회사에서 같이 일했던 디자이너에게 연락했다. 이러이러한 이슈가 있어서 디자인은 그대로, 컬러만 바꾸고 싶은데 그 컬러에 대한 조언을 얻고 싶다고 말했다. 단순한 수정작업이라 생각했는지 흔쾌히 수락하고, 단가도 꽤 저렴했다. 일정도 괜찮아서 오늘 해서 내일 아침에 보여준단다. 다행이다. 이런 옛 동료와 아직 연락하고 있다는 게.
오늘 신입 팀원의 새로운 이벤트가 오픈했는데, 나도 내 업무를 하느라 제대로 확인 못했다. 링크가 잘 들어갔는지만 확인한 것이다. 이벤트 오픈하고 1시간쯤 지났을 때, 팀원에게 주문이 잘 되고 있는지, 문의는 없는지 확인하라고만 한 게 다였다. 팀원이 확인하니 아직 주문 건이 없단다. 저녁에 푸시하면 올라오지 않을까 생각한단다. 그때 다시 확인했어야 했는데, 나는 무얼 하고 있었는가.
팀장도 이 밤에 매출 확인하면서 이상하니 이벤트를 확인했나 보다. 그제야 보이는 구멍들.
하지만 이어서 팀장에 대한 원망도 생긴다. 신입들 피드백해준다고 했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손을 놓아버렸다. 쌓여가는 일, 또 연말에 쫓기듯 해야 할 일들 때문에, 아직 오지도 않은 연말이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