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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평범 Jan 16. 2024

고차원의 일을 하고 싶어요

근데 잡일이 많게 느껴지는 왜 때문이죠

사진: Unsplash의 Headway








1. 회사에 도착하니 어제 안 한 일들이 후루룩 떠올랐다.


어제 협업한 유튜버가 우리 제품 홍보 영상을 올린 날이었다. 이어폰이 없어서 집 가서 확인해야지 했는데 전혀 생각이 안 났다. 그래, 6시 지나면 업무 OFF 해야지.


근데 어떻게 자리에 앉자마자 생각이 나냐.


13만 유튜버인데 조회수도 시원찮고, 댓글도 몇 개 안 달렸다. 영상이 솔직히 재미가 없다. 조회수나 댓글 반응이 더 오르진 않는다면 추가 진행은 안 할 것 같다.


어제 하나 더 까먹은 게 또 생각났다. 회계팀에서 내가 담당하는 거래처에서 결제대금을 500원 부족하게 했다는 것이다. 연락하기로 했는데 문자 하려다가 다른 문자를 보고 딴 길로 샜나 보다. 부랴부랴 거래처에 500원 덜 넣었다고 문자를 넣었다. 이번주에도 입금 건이 있다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항상 입금이 늦고 틀리는 거래처다. 이번달에 계약이 만료되니 좀만 참자...


9시에 예약문자로 하려고 했는데 그냥 발송을 눌러버렸네. 


업무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회계팀에서 연락이 왔다. 아직 입금이 안 됐는데 어떻게 됐냐고. 솔직하게 자수했다. 어제 까먹어서 아침에 문자 남겨놨다고 말이다.


점심즈음돼서 회계팀 담당자로부터 카톡이 왔다. 500원 입금됐다고 말이다.




2. 어제 연차였던 팀원이 나에게 대신 디자인 확인해 줘서 고맙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팀원 대신해 디자이너와 나눈 수정요청 파일을 공유하며 내용을 알려줬다. 


어제 수정요청한 것 중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넘어가기로 했는데 디자이너가 오늘 해냈나 보다. 수정 디자인을 담당 팀원에게 바로 보낸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수정요청했던 의도를 전달하고 마무리는 담당팀원이 하는 걸로 했다.


그랬는데, 오늘 오후.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 (약 3초?) 롤링배너를 쳐다 볼일이 있었던가? 3번째에 있던 롤링 배너가 엑박이 뜨는 것을 확인했다. 뭐지? 바로 담당팀원과 디자이너에게 메시지를 남기고 디자인을 수정하기 위해 디자인 메뉴에 들어갔다. 


확인해 보니 어제 디자이너로부터 받았던 소스와 지금 입력되어 있던 소스가 다르다. 당연하다. 내가 어제 안 바꿨기 때문이다. 이벤트 페이지만 디자인 수정을 했기 때문에 배너까지 이미지 주소가 변경됐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굳이 주소를 다르게 할 필요가 없었는데.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식은땀이 난다. 이미지를 안 쓴다고 이렇게 바로 삭제하다니.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왜 귀띔을 안 해줬을까.


급한 것부터 수습하고 담당 디자이너와 팀원에게 확인해 보니 디자이너는 오늘 오전에 우리 팀원과 얘기를 나누고 그전에 썼던 구소스를 삭제해야 되니 신소스로 다 교체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팀원이 다 교체했다고 하기에 구소스를 삭제했다는 것! 바꾸고 이미지가 잘 반영됐는지 확인했을 때는 쿠키, 캐시가 남아 있어서 이미지가 잘 보여서 잘 적용됐다고 생각했었단다.


근데 오후에 내가 확인하니 관련 배너 모든 게 엑박엑박엑박.


상황파악이 된 나는 팀원에게 마무리할 기회를 주었다. 그랬는데 한참뒤에 디자인 메뉴가 안 열린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새로 산 컴퓨터들이 말썽이다. 오류가 잦다.


디자인 수정 창을 열어서 수정하는 건 내가 하기로 하고 다른 건 했는지 물으니 잘 못 알아듣는다. 안 했다는 뜻이었다. 그것까지 후다닥 수정을 하고 다시 알려줬다. 이거는 디자인 메뉴에 들어가지 않아도 수정할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신입 가르치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싶다.


담당했던 디자이너도 1년이 안 되었는데 우리 팀원은 이제 막수습기간을 벗어났다. 개별적으로 소통하면 큰일이겠다 싶어, 디자이너에게는 우리 팀 신입분들과 소통할 때는 예민한 문제 아니고서는 단톡방에 얘기해 달라고 했다. 




3. 우리 마케터의 업무 중 중요한 한 가지는 디자이너가 쉬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도록 업무를 주는 것이다.


아예 다른 본부, 다른 팀이라면 신경 쓰지 않을 텐데 우리는 사실 한 팀이다. 다시 말해, 팀장이 같다. 팀장은 디자이너의 인건비를 효율적으로 쏙쏙 뽑아 먹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이너의 업무 스케줄이 비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디자이너가 할 일을 주는 것이 최우선이다.


이번엔 내가 당첨이다. 


작년 9월부터 문안 짜서 10월에 넘겼던 샘플키트지 제작인데, 우선순위에 밀려 밀려 밀려 이제야 여유가 되어하게 됐는데 내가 너무 바쁘다. 그 사이에 이슈가 있던 것들을 고려해야 하고, 그때와 달라진 디자인 레이아웃 등을 피드백해야 하는데 시간이 안 난다.


게다가 거의 완성직전의 디자인이라 조금 수정하고 다시 보고 조금 수정하고 다시 보고 이러니, 이일을 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저 일을 했다 다시 돌아왔다 스케줄 관리가 안된다. 디자이너의 업무 공백이 없도록 피드백도 최우선으로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업무 소요시간 적는 것은 망했다. 대충 감대로 적어본다.


디자인이 끝나니 발주를 해야 한다. 10월에 문안을 넘기면서 발주량까지 기재해서 전달했는데 이미 3개월이 지났다. 그사이에 새로운 제품의 샘플 판매량은 예상보다 더 많이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발주량을 또 조정하고, 금액을 더 저렴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디자이너와 추가로 논의했다. 


워낙 많은 수량이라 디자이너도 긴장된다고 했다. 교정 요청이 오면 그때 다시 세밀하게 확인해 보기로 했다.




4. 오전에 2분기 프로모션 계획 회의를 했다.


담당자와 내가 앞서 조정을 했던 이벤트 스케줄인데 팀장이 보기엔 이걸로는 매출이 안 난다는 것이다. 다른 거,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고 했다. 팀원이 늘었는데 똑같은 걸 하면 안 된다고 한다. 팀원이 늘어난 건 맞는데 이 브랜드를 담당하는 팀원은 늘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말까진 하지 않았다.


팀장은 "이거 어때요? 이걸 해보자는 건 아니고. 이런 것도 생각해 보자는 거예요."라고 의견을 던졌다. 확실히 대표나 팀장급은 실무를 하지 않으니 좀 더 과감하게 진행해 보려는 자세가 되어 있다. 실무자들은 이것도 고려해야 하고 저것도 고려해야 하고 재고도 확인해야 하고 이게 정말 효과적인지 위험성은 없는지 생각해 보느라 주저주저한다. 하지만 팀장이 해보라고 했으니 안 해볼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러다 똥 뒤집어쓰는 건 담당하는 팀원이다. 해보라고 해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움직였다간 나중에 수습하는 것도 담당자 몫이다. 이 방면 저 방면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팀장이 팀원 2명을 지정해서 새롭게 할 것을 찾아보라고 한다. 


이 업무에서 잠깐 나는 '깊이' 생각지 않아도 되어 좋다. 하지만 완전히 헤어 나올 수는 없겠지. 이들이 신규 사업을 생각하는 동안 나는 내부 고객의 구매 전환율을 어떻게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근데 왜 나 쓸데없이 바쁘지? 이런 건 손도 못 대고 있는데 말이다.




5. 제품 부자재 컬러를 정해야 할 때다.


색을 바꿀 때 어떤 위험성이 있는지는 이제 더 이상 못 찾겠다. 이제 취향대로 컬러를 선택하면 된다. 모든 팀원들에게 돌아가며 색을 선택해 달라고 요청했고 이유까지 들었다.


나는 단순히 "어떤 색이 좋으세요?" 하고 물었고, 팀원이 고르면 "이유가 있을까요?"만 물었는데 다들 "이 컬러가 제품의 느낌과 비슷하다", "다른 제품과 좀 더 구별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이 제품을 많이 쓸 것 같은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등의 이유를 대주었다.



뭔가 웅변하듯 메시지를 남겼는데 다들 리액션을 해주었다.




6. 어제 있었던 클레임에 대해 보고서 작성을 해야 한다.


보고서를 작성해 본 적이 없던 팀원들에게 작성법을 알려주고 품질관리팀과 나눈 이메일을 보여주며 소통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작성하고 공유하고 처리하는 방법은 심플했다. 다만, 실제 클레임 건 고객과 소통하는 것이 어려울 뿐.




7. 12월 매출보고서를 써본다.


아직 1월 중순'밖에' 되지 않았다. 이번주까지 쓰면 아주아주 양호하다.


매출을 확인해 보니 11월보다 12월에 매출이 줄었는데 11월에 출시됐던 제품이 12월에 판매량이 쑥 빠지면서 매출이 떨어졌다. 출시하자마자 진행했던 출시 이벤트가 효과가 좋았기 때문인데, 신제품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관건이 될 것 같다. 하지만 어떻게?


보고서를 쓰기 위해 12월에 진행했던 이벤트 결과 리포트를 확인했다. 그중에 한 이벤트 결과에서 신규 구매자 비율이 높은 것을 확인했다. 아무리 이벤트가 좋았다 한들 전체 구매자 중에 신규 구매자가 46%나 된다고?


리포트를 작성한 팀원에게 데이터를 어떻게 확인했는지 물어보니 음, 아주 틀린 방법은 아니다. 이 솔루션 약간 좀 이상한데? 


좀 더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이런 매뉴얼들이 다 적혀있다면 참 좋을 텐데, 세세한 매뉴얼들이 없으니 신입들은 헤맬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매뉴얼을 다 만들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다.


그전에 도망가야지.




8. 업무 관리툴 무료 체험을 신청했는데 영업전화가 바로 왔다.


열심히 사는군. 아직 써보지 않은 상태인데 미팅도 할 수 있고 어쩌고저쩌고 설문도 진행한다. 전화를 끊고서 '그래 회사일 회사에서 해야지.' 생각하며 체험판 아이디로 로그인을 해봤다.


UI는 노션이랑 비슷한데 뭔가 기능이 별로 없어 보이는 건 왜일까.


좀 더 만져보거나 설명을 찾아봐야겠지만 우선 끌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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