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빛나야 세상도 빛날 수 있어

시시때때로 나를 제대로 응시하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진솔하게,
냉정하게,
균형 있게,

짐짓 시선의 행간마다 '예리한 가치'들을 드러내 관조할 수 있는 나이는 언제 즈음 일까.

스스로에게 햇살 한 줌 투영시켜, 나를 가다듬는 관점과 감각의 더듬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더 곧추세울 수 있는 것일까.

인생이라는 험로 위에서 우리는 흔들리고, 방황하고,
번뇌하는 자화상을 바라보곤 한다.

삶의 희비는 변화무쌍하다.

켜켜이 쌓여 가는 세월이란 나이테가 선물하듯 나이에 비례하는 너비와 깊이를 가져다 주진 않는다.

나이를 먹어도 삶 속을 걷는 걸음새는 아슬아슬하고 위태위태하다.

어른이어도 마뜩지 않은 연륜일 뿐이란 걸 자각하는 일도 꽤 빈번하다.

"내가 누구이며, 어떠한 사람인지를 인정해야만 삶의 충만함 속에 깃들 수 있다. 나 자신을 부정하면서 내게 가장 좋은 삶으로 향하는 길을 걸을 수는 없다."

희대의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의 저서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에서 눈길 가는 그녀의 독백이다.

나이가 늘어간다고 그에 걸맞게 인생의 빛이 더해지지는 않으리라.
삶의 체온이 절로 뜨거워 지지도 않으리라.

다면적인 독서와 사색의 오솔길을 지나고, 자유로운 경험과 고뇌의 비탈길 등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순례자가 짊어진 의지의 십자가가 필요하리라.

요사이 '인격 미의 고갈과 황폐'가 결국엔 파국을 부른 뉴스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다.

세상을 살게 하는 원천은 금력과 명예, 패권주의가 아닌, '겸허하고 소박한' 자아들로 연결된 '선한 영향력'이 아닐까.

그렇게 믿고 싶다.
남아 있는 나날은 여전히 희망의 태양을 품고 있으리니.

별의별 욕망으로 뾰족하게 날 선 시대의 틈바구니 안에서도 '나'를 소멸치 않고 즐겁게 버티어 내기.

거울 속 나를 들여다본다.
방시레 미소 짓는다.
그리고 넌지시 한 마디를 건넨다.

"당신이 빛나야 세상도 빛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