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가을

다시, 가을 언덕에 섰다.
가을색으로 물드는 계절의 행간 속 오도카니 들어앉은 추억은 아프지만 새롭다.

문학가(시인)에게 글을 싹 틔워 내는 시간들은 '알을 깨고 나오는' 숨 막힐 듯한 투쟁이다.

나의 세 번째 손가락 '사랑으로 물들다'는 삼 년 전 가을 찾아온 '고귀한 영감(靈感)'으로 시작되었고, 긴 고뇌와 마음앓이 끝에 몇 번의 가을을 거친 뒤 마침표를 찍었다.

가을 품 속에서 잉태해 결국 이후의 어느 가을에 매듭을 지었으니,
'사랑으로 물들다'는 늘 처음처럼 가을의 선물이다.

방송인(아나운서)으로서의 녹록지 않았던 삶의 지평선 위에 우연찮게 해인 수녀님과의 만남으로 시인으로서의 꿈의 불씨가 불잉걸이 될 수 있었던 희망.

청춘의 빛이 푸르렀던 시절 의기양양 한 손에 마이크를, 또 한 손엔 펜을 쥐고 한 해 걸러 두 권의 시집을 잇대어 출간했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직업인 아나운서'로서의 엄혹기를 겪으며 시인으로서의 이력도 긴 침묵기에 빠졌었고, 필력 또한 길을 잃고 십수 년이 넘는 세월을 헤매고야 말았다.

그렇게 시간의 거칠은 들판을 건너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고 타오른' 영감은 오랜 공백을 딛고 다시 문학가(시인)로서의 외길목에 다다르게 했다.

'사랑으로 물들다'는 숯가마 앞에서 숱한 밤을 지새운 도공의 간절한 기원처럼 그렇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가을 속 새 빛과 새 꿈을 담고.

어떤 인연이었는지, 그 지난한 과정을 기꺼이 감내하고 몇 해의 가을을 함께 견디어준 이들이 있었기에 유난히 반짝였던 그 가을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글이란 사람의 삶 속을 따뜻하게 관통해야 하는
한 줄기 빛이고, 설렘을 품은 한 디딤새이길 소망한다.

시가 길을 잃어버린 시대,
하지만 나는 그 시들의 온기와 슬픔조차 놓지 않으리라.

세월이 흘러가고 시대가 변한다 해도
사람의 지렛대는 사람임을,
사랑의 지렛대는 사랑임을,
어느 누군가의 꿈의 지렛대 역시 그 누군가의 꿈이라는 것을 믿기에.

'사랑으로 물들다'로 다시 시작하는
세 번째 가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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