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 레이디버드

엄마로 만들어진 나

by ANNQOO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종강 이후로 특별히 대단한 일도 없었는데 피곤을 단 채로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참, 그 사이 엄마와 단둘이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와의 여행은 ‘엄마’라는 단어 자체에서 주는 애잔한 느낌이 있어서일까, 엄마와 이불 위에 누워 밤새도록 지난날의 대화를 나눈다거나 목욕하는 엄마의 등에 물을 끼얹으며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애틋한 장면을 그리게 만든다. 그러나 막상 여행길에 오르면 그런 효도의 이미지는 그동안의 영상매체에서 주입된 상상으로 끝나버리고 현실 속 엄마와 나의 여행은 오고 가는 차 안에서 감동적인 대화 대신 병든 닭 마냥 꾸벅꾸벅 조는 일이 부지기수다. 엄마와 나는 멀미 유전자가 같아서 둘 다 차만 타면 의자에 머리가 닿는 순간 잠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오랜 시간 웨이팅 해서 들어간 맛 집에선 음식이 짜다고 툴툴거리고 해 지는 시간 계산해서 노을 진 예쁜 억새밭을 데려가면 지푸라기에서 뭔 사진을 찍느냐며 핀잔을 늘어놓는 엄마와의 여행은 역시나 드라마틱한 재미나 전율 따위는 없지만, 황당하게도 도무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편안함이 있다는 게 웃긴 일이다. 아마도 그것은 엄마와 나의 DNA가 99.9프로 일치하는 엄마로 만들어진 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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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존재를 다시 기억해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여행 중이 아닌 여행 후였다. 마침 그즈음 해서 영화 <레이디 버드;Lady Bird 2018>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첫 관람을 했던 그때는 그저 웃음을 자아내는 것 정도로 가볍게 넘겼던 장면들이 다시 보니 현실에서의 나와 엄마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음을 경험하면서 괜스레 애틋한 영화가 되었다.

<레이디 버드>의 감독인 그레타 거윅은 관객들의 동의와 설득을 충분히 구하기 위해 이야기를 꾸려가는 방식 또한 현실에서의 엄마와 딸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묘사하며 서사를 채워나가는 방식을 선택한다. 나는 그 점이 이 영화 관람의 핵심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여성으로 태어나 엄마와 딸의 역할을 경험해 본 관객이라면 영화 속 많은 부분들이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공감 포인트가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그레타 거윅의 소소하지만 강력한 연출 방식이었다.


1. 성장영화의 탈구조화


영화를 보는 내내 이것은 감독이 실제로 겪어본 일이 아니면 절대 이렇게 만들 수가 없다 라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실제 영화의 배경인 새크라멘토는 감독의 실제 고향과도 그렇게 일치한다. 주변의 다른 지역에 비해 화려하지도 유명하지도 않은 새크라멘토라는 지역에서 유복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가난한 빈민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에서 살고 있는 주인공 크리스틴에게 있어 새크라멘토와 부모님의 위치감은 비슷하다. 새크라멘토에서의 크리스틴의 일상은 너무나 무료하고 평범하기만 하며 자신의 기대에 부응해주지 못하는 평범한 부모는 매일 원망스럽기만 하다. 자신의 출생의 근본부터 바꾸고 싶어서 부모님이 지어준 크리스틴이라는 이름 대신 자신이 직접 명명한 “레이디 버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소망하며 자신이 속한 모든 환경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꽤나 대찬 자아를 가진 10대 소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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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딸을 바라보며 한없이 속상해하는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없는 살림에 자식의 교육을 위해 떡을 썰거나 머리카락을 팔아 등록금을 마련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전래동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이다. 엄마 매리언은 원망 투성이의 딸에게 결코 져주는 법이 없다. 어쩌면 자신과 똑 닮은 딸을 대하는 법을 알기 때문일까, 가족이 처한 상황과 현실을 직시시키며 객관적이고 실용적인 화법으로 딸을 훈계하지만 자아가 널뛰는 크리스틴에게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또는 자신을 사랑하지는 않는 엄마의 행동이 늘상 다툼의 원흉이 되고야 만다. 강렬하게 남아있는 오프닝 시퀀스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말다툼을 벌이다 화를 못 이긴 크리스틴이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 -는 이 둘의 관계를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매우 단편적이고 함축적인 시퀀스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21세기형 성장영화에 가장 잘 부응한다고 느낀 점이 바로 자신의 정체성이 분명한 딸과 호락호락하지 않은 엄마의 관계를 정밀히 포작 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부모와의 관계에서 순종적이기만 한 자녀의 모습이나 자식이라면 눈물을 글썽이며 무조건적인 헌신을 그리는 전통적인 가족드라마의 메커니즘을 반하는 것이 오히려 현실의 보편성을 얻은 것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성장영화에서 반드시 수용해야만 하는 학업, 이성, 친구, 가족의 에피소드의 종착역을 바로 ‘매일 싸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내 편인 엄마의 위로’로 귀결시키며 이 시대의 딸로 살아가는 모든 여성 관객들의 동의를 구한다. 성장 시절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고비를 극복해 나가며 새로운 힘을 얻는 저력을 엄마로 둔다는 것이 이 영화의 탁월한 매력일 것이다.





2. 사랑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 관계



“ 엄마가 날 좋아해 주면 좋겠어(I wish that you liked me)”

“ 널 사랑하는 거 알잖아(Of course I love you.)”

“ 근데 날 좋아하냐고?(But do you like me?)”


순간 멈칫하는 엄마(매리언)의 모습에서 또 한 번 낙담하는 크리스틴의 모습은 사춘기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만든다. 분명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존재했던 것 같다. 나를 낳아준 엄마이기 때문에 나를 사랑한다는 건 알겠지만 과연 나를 좋아하기까지 할까,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결코 동시 묶음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의 사랑이라는 것은 신이 프로세싱해놓은 만고의 진리라 치더라도 엄마도 사람이기에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고 지치게만 하는 딸과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할 리만은 없다. 그렇지만 그 저변에는 놀랍게도 견고한 사랑의 마음이 토대가 된다는 것은 참 신기로운 관계인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엄마들과 딸이 그렇듯이 이런 관계에 대한 고민은 그토록 심각하게 오래가지는 못한다. 크리스틴의 추수감사절 드레스를 사러 구제 매장에 들른 모녀는 자신의 환경을 못마땅해하는 크리스틴의 모습을 우회적으로 지적하며 다툼의 씨앗을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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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촉즉발의 싸움 전야에서 갑자기 두 모녀는 마음에 드는 드레스를 하나 집어 들고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한마음으로 집어 든 드레스에 대한 찬양을 시작한다. 어쩌면 성격도 싸우는 것도, 취향도 안목도 너무나 닮은 이들은 마치 우리들의 모습 그대로 화면에 담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이 둘이 과연 누구의 딸이며 누구의 엄마이겠는가. 둘은 서로가 너무도 진지하게 닮아 있는 것이었다. 한낮의 소동, 그러나 그들에겐 일상이었던 하루가 끝나고 엄마 메리언은 옷 갈아입을 여유도 없이 조용히 크리스틴의 드레스를 수선하기 시작한다. 자고 있는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엄마에게는 구제 매장에서 드레스를 사 입힐 수밖에 없다는 미안함과 그래도 이 정도는 자신의 능력에선 최선이었다는 자기 합리화, 그리고 성장통을 호되게 앓고 있는 철부지 딸에 대한 안쓰러움이 공존하는 기나긴 밤이었을 것이다. 이 장면이 바로 “사랑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 관계”의 재미있는 요약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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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엄마로 만들어진 나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만 같았던 독립의 순간, 그렇게 바라던 뉴욕 생활은 크리스틴의 상상만큼 화려하지도, 마냥 행복하지만도 않았다. 집 떠가면 개고생, 부모님 계실 때 잘하자. 와 같은 진리의 명제는 왜 항상 지나고 나서야만 깨닫게 되는 것일까. 꿈에 그리던 뉴욕에서의 첫날을 숙취와 함께 응급실에서 보내고 그렇게 눈을 떴을 때 내 옆을 항상 지키던 그 지겨운 혈연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크리스틴에게 난생처음 느껴보는 공허함과 쓸쓸함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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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이름과 혈액형이 적힌 팔목의 띠를 한참이나 쳐다본다. 부정해봐야 부정할 수 없는 내 이름과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은 결코 교체될 수 없는 혈액형을 마음 깊이 새겨둔 채로 병원을 나온 크리스틴이 그토록 지겨워했던 성당을 다시 찾게 되는 것, 그리고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내 안식처는 지겹고 무료했던, 그리고 답답하고 가난했던 새크라멘토이며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엄마였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진짜 나의 모습이며 내 전부였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도 그토록 동경했던 뉴욕에 가서야 깨달았다는 것이다. 성당을 나온 크리스틴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달하며 결국 나라는 존재는 엄마로 회귀될 수밖에 없는, 엄마로 완성된 나 자신임을 우회적으로 인정하고야 만다.



“엄마도 새크라멘토 거리를 처음 운전할 때 감상에 젖었었어?


무난했지만 나에게는 사려 깊은 엔딩 시퀀스였다. 같은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성장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동네를 내 손으로 처음 운전할 때의 크리스틴의 기분에 매우 동감할 것 같다. 나도 그런 기억이 있다. 운전이 익숙해질 무렵 문득 차 창밖으로 흘러가던 장면들은 신기하게도 내가 그동안 그렇게나 걸어서 오고 가던 익숙한 느낌과는 사뭇 달랐고 걸음보다 훨씬 더 빠른 차를 타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조용하고 느리게 흘러가던 창밖의 순간들 말이다. 그리 길지 않은 엔딩 시퀀스는 그동안의 소란스러웠던 장면들을 멀리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새크라멘토를 관망하며 우리 모두가 하나쯤은 갖고 있을 만한 각자의 새크라멘토들을 들춰내며 소중하고 애틋한 기억들을 소환시켜준다. 차분한 마음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다 보면 크리스틴의 정서적 성장이 시퀀스에 녹아있는 느낌을 전달한다. 늘 우리 곁에 말없이 존재하기 때문에 소중함을 몰랐던 존재들의 교집합이 진짜 나를 만든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된 지금이 비로소 성인이 되었다는 증거임을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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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철부지 여고생의 성장기답게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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