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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Jeong Oct 07. 2018

저는 지금 발리입니다

발리에서의 열흘, 의외의 육아선진국을 만났다


저는 지금 발리입니다. 아이와 함께 벌써 이 곳에 온 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착륙 후 시끄럽게 울리던 핸드폰을 통해 도착한 당일 술라웨시 지역에 큰 지진과 쓰나미가 덥쳤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지진이 일어난 지역과 발리는 한국과 일본보다도 더 먼 거리입니다.

모쪼록 희생자들의 명복을, 생존자들에게는 무사 귀환을 바랍니다.


사람 사는 곳이야 다 같겠지만은 역시나 현지에 와서 지내니 예상했던 일보단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더 많습니다. 내 한 몸 혼자 와서 지내면 예상하지 못한 일에도 좀 유하게 넘어가겠지만은, 아기와 함께 하다보니 혹여 제 판단으로 아이가 아프기라도 할까, 잘못되면 어쩔까 마음 졸이다보니 도착 후 삼일간은 즐기지도 못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보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갑작스레 합류하게 된 친정아버지의 여행 일정까지 챙기다보니 좀 날카로운 상태로 있었던 것 같네요. 아무튼 이제 남은 20여일은 저도 좀 즐겨보려고 합니다.

드디어 내일부턴 베이비시터가 함께 하게 되었거든요! 엄마 껌딱지인 아기가 저와 떨어지려고 할 진 모르겠지만, 하루에 한 두시간만이라도 온전히 발리를 느끼고 가보고 싶네요.

서두가 길었습니다. 열흘 간 지내며, 아기와 발리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께 전하고 싶은 몇 가지를 적어보았어요.


발리는 육아선진국이었어!



한국보다 넓은 분유코너

출발 전부터 지속된 아기의 장염기운으로 분유는 거의 수유하지 못하고 흰 죽만 먹였어요. 매 끼를 흰 죽만 먹이다보니 아이도 이유식 거부를 하기 시작하고, 긴 장염으로 유당불내증상이 온 아이에게 일반 분유를 먹일 수도 없고 매우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그 때 발리에서 아기를 키우고 있는 한 지인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바로 ‘소이분유’를 추천해주시더군요. 소이분유는 한국에도 있지만 가짓수가 한두가지뿐이라 선택의 폭이 매우 좁고, 특수분유로 분류되어 일반 마트에서도 찾기 어려운 편입니다. 그런데, 발리의 까르푸에 갔더니 세상에나. 한국보다 더 넓은 분유 코너에 더 많은 종류의 특수분유가 있더라고요. 대부분 네덜란드, 호주, 일본에서 수입된 분유이다보니 안심하고 먹일 수도 있고요. 저 또한 다행히 소이분유를 찾아내어 아이에게 수유하기 시작했고, 아이의 장염증상은 다행히 다 나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의 이유식용 퓨레나 분말도 매우 종류가 많고, 근처 작은 동네 마트에도 구비가 되어 있을 정도로 아이의 먹거리를 구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발리 까르푸의 분유코너. 특수분유 종류만 해도 이 정도!


수유실은 저쪽이에요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대형 쇼핑몰이나 공공시설에 수유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발리 역시 생각보다 많은 곳에 수유실(nursery room)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꾸따의 비치워크 쇼핑몰 3층에도 nursery room이 있고요, 심지어 우붓의 몽키포레스트에도 수유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지하철 역사의 수유실 보다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어 아기와 엄마가 잠시 쉬어가기도 좋았습니다. 아이를 위한 시설과 대책도 채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 출산율만 높이려 드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교가 되네요. 아이를 낳으면 혼자 크나요? 준비없이 낳으라고 강요하지 마시고 본 받으시기 바랍니다.(라고 갑자기 열변을 토한다)

(왼) 비치워크 쇼핑몰의 수유실 / (오) 우붓 몽키포레스트의 수유실. 홈플러스 수유실보다 낫다!


아기의자가 필요하신가요?

작은 와룽에 가더라도 아기의자가(비록 언제 썼는지 모를 정도로 먼지가 쌓여있긴 했지만) 있을 정도로 아기를 위한 용품이 잘 준비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노키즈존이 늘어나고, 아기와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쇼핑몰이나 대형 프랜차이즈가 아니면 점점 손을 꼽는 현실인데 말이죠.



아이에게 관대한 발리니즈들

식당이나 공공장소에서 아기가 기분이 좋아 소리를 지르거나 꺄르르 거리면 눈치를 받기 마련입니다. 심지어 아기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조금 유명하고 핫한 카페에 왔다는 이유로 젊은이들의 눈치를 받은 적도 있어요. 하지만 발리니즈들은 그저 지나가는 아기에게도 눈을 맞춰주고, 미소로 답해줍니다. 아기들도 알아요, 이 사람이 자기를 예뻐하는 지 싫어하는 지. 덕분에 아이는 외출만 했다하면 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도 분명 존재합니다.



세상에, 석회질 수돗물이었어

발리의 물은 석회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설거지를 해도, 끓여서 젖병 소독을 해도 하얗게 분이 남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보다 식수를 자주 구매해야 해요. 저는 물갈이가 없는 튼튼한 장을 가진 덕에 큰 걱정은 없지만 아직 소화기관이 발달하지 않은 아이에게는 탈이 일어날 수 있기에 설거지 후 항상 생수로 아기용품을 다시 끓여 소독하고 있습니다. 혹시 몰라 아기의 분유포트를 따로 챙겨왔는데 여기 와서 가장 열일하고 있는 물품이네요.


느린호흡으로 살아가야 하지만...

뿐만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면 모든 것이 배로 느려집니다. 구글맵에서 알려준 ‘도보 10분’거리는 아기를 업고 걸으면 땀을 쏟아내며 20분 안에 도착하기도 힘들고요. 힘들게 도착했다 치더라도 아이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다시 택시를 타고 돌아가야 하는 우스운 상황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인도도 매우 좁고 중간 중간 길이 끊겨 혼자 유모차를 몰기엔 조금 힘들지만 그래도 못 가지고 다닐 정도는 아니고요.


사실 예상한 것의 대부분을 아직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바투르산 새벽 트래킹도 하고, 누사 페니다 섬 스노쿨링도 하고, 발리의 핫한 비치클럽들도 방문하고, 클라이밍과 요가도 좀 해보려 했는데 아직 이 중 그 하나도 해본 게 없네요. 그렇지만 아이가 잠든 사이 시원한 물 속에 잠시 몸을 담글 수 있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선베드에 누워 잠깐 낮잠을 청할 수 있고, 아이가 잠든 후 빈땅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시간입니다. 계획한 일의 모든 것을 이루고 가려는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아이와의 매 순간을 즐기고 돌아가겠습니다.


틈틈히 소식 전할게요.

그럼 모두 따스한 밤 되세요.






#아기와해외여행 #발리에서한달살기 #육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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