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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 Jeong Jul 20. 2023

5년만에 발리에 왔다

일하면서 육아하기의 가설검증을 위해

5년만에 발리에 왔다

*5년 전 발리에 왔을 때 썼던 시리즈는 여기서 볼 수 있다


우리아이 9개월 때 도착했던 발리는, 도망칠 곳이 필요했던 일종의 낙원이었다. 사실 낙원이 아니었을 수 있고 돌이켜보면 '와 내가 어린애를 데리고 뭘 했던 건가'라는 아찔함도 있지만....
아무 문제 없었고 '다시 일하자'고 마음 먹게 해준 시기였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참 좋았다고 할 수 있겠다.


지금 회사로 이직한 후 작년 겨울쯤, 이제는 일하는 엄마가 되었고, 아이도 자기 앞가림을 못하진 않으니 또 떠나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년 겨울에 방콕으로 열흘정도 친정엄마와 아이와 같이 여행을 떠났다. 생소한 밥도 잘 먹고 화장실 문제 없고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또 떠나도 문제 없겠다는 판단을 했다.


지금 회사로 이직한 지 이제 2년이 좀 안되었기 때문에, 한 달 동안 한국을 떠나있겠다고는 내 마음이 허락치 못했고(회사에서는 가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내 일만 잘하면 됨) 23년으로 넘어오며 본격 마음을 먹었다.


올해 발리에 온 이유, 그리고 검증하고 싶은 가설은 2개였다.


1. 사람 만나기를 잠시 멈추고 싶었음

 인간이 사람을 만나며 쓰는 에너지 총량이란 게 있다. 대문자 E라고 생각했던 나도 매번 새로운 사람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쏟다보니, 올해는 유난히 기운 소비가 많다는 걸 느꼈다.

이게 감정소비랑은 다른 게, 마음이 힘들고 같이 울고 같이 웃고... 그런 게 아니고, 매번 다양한 주제로 사람을 만나며 이 사람의 지적인 대화 수준에 맞춰야 한다는 뜻이다. 항상 상대방을 위한 레이더를 열어둬야 한다는 압박감이 맞겠다. 특히 올해는 원래 하던 일보다는 새롭게 확장하고 싶은 분야의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고, 대화에서 이해 못하는 부분들이나 확장해야하는 부분들을 계속 머리에 쥐고 있다보니 더 기운이 많이 달렸다.

다행히 이들에게 '원래 이 일 하던 사람 같은데 어디 출신이에요?' 라는 피드백을 꽤 받고나니 '나...그래도 많이 성장했다' 라는 생각이 들며 안도감이 생겼고 나, 올해는 조금 쉬어도 될지도? 라는 생각에 셀프 보상을 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설1: '내 일에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얻을 수 있다.


2. 아들의 영어교육

내 교육관이 뭐냐고 물으면 '어차피 시켜서 안한다 사람은 지가 불편해야 한다' 라고 말한다. 물론 학습지도 하고 있지만, 나도 알고있다...내새끼도 구몬하기 싫어한다는 걸.... 그래서 영어는 '재밌다'라고 느낄 수 있는 첫 순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영어유치원도 고려 안해봤고, 영어학습지도 안시켰다.

대신에 내 화상영어 수업에는 가끔 얼굴 비추게 해주며 외국인과 대화할 때 쫄지 말자! 를 보여주려고 했다. 당연히 나도 아직 영어 못하고 쫄긴 쫄지만ㅋㅋ....

그러다 올해 초 우연히 발리에서 유치원을 보냈던 엄마의 블로그를 보게 되었고, 이것은 첫 영어노출에 꽤나 좋은 수단이 되겠다고 느꼈다. 아이에게 '너 혹시 영어사람이랑 같이 놀고 어린이집 가는 거 괜찮아?' 라고 몇 차례 물어봤는데 매번 '어 괜찮아~' 라는 답을 들었다. 본인이 괜찮다고 하니까 떠나도 괜찮겠단 확신이 들었다. (* 물론 그 뒤에 '근데 엄마 화장실 가고 싶으면 뭐라고 해?'. '물마시고 싶으면 뭐라고 해?' 라는 질문은 따라왔지만 안가겠다는 말은 안했다.)

가설2: 불편함을 알고 영어를 필요하게 만든다.



마음을 먹고, 어린이집 여름방학에 맞춰 2주간 티켓을 끊었다. 올해는 남편도 출장계획이 없어 여름휴가를 2주나 낼 수 있게 되었다. 회사에는'앞의 일주일은 리모트 근무, 뒤의 일주일은 휴가를 내겠다고 했다. 아무도 뭐라하지 않고 '와 좋겠다!' 또는 '그냥 휴가내요 무슨 리모트 근무야~' 라고 답해줬다.



그리고 발리에 도착한 지 5일째인 지금, 두 이유에 대한 가설은 어떻게 증명되고 있냐면?


가설1: '내 일에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얻을 수 있다.

가설 검증 성공했다. 오히려 한국보다 더 내 우선순위대로 일할 수 있고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어서 너무 좋아!

대략 하루일과를 적어보자면... 새벽 5시쯤 눈뜨고, 커피한잔 내려서 노트북 앞에 앉는다. 아침 7시까지두 시간 남짓 시간에 작성할 문서나 리스트업을 하면 딱 좋다. 7시~7시30분 사이에 남편과 아이가 일어나니 그 때 간단한 아침밥을 먹고, 씻겨서 5분거리에 있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내려준다. 그리고 남편은 스쿠터로 동네 탐방을, 나는 전날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앉아 일한다. 어린이집은 12시에 마치니 세 시간 남짓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이 시간에 기자들이 요청한 자료, 피칭해야 할 이슈, 주고받아야 할 연락들을 한다. 12시에 아이 픽업 후,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2시쯤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는 아빠와 집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간식도 먹는 시간이 2시간 남짓. 그동안 또 나는 일할 수 있음. 지금 계산한 워킹타임만 해도 7시간! 한국의 근무시간과 비교해도 다를 게 없다. 오히려 한국 근무시간에는 중간에 미팅 장소 이동 시간, 미팅시간 등을 빼면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은 정말 얼마 안된다. 오후 4시~5시 사이에 노트북을 덮고, 근처 바닷가에 일몰을 보러가거나 맛있는 저녁을 가족과 먹는다. 이 얼마나 멋진 워크앤라이프의 삶인가!

발리는 한국기준 시차도 -1시간이라 한국팀보다 1시간 먼저 일하고, 1시간 먼저 퇴근하는 생활도 가능하다.

여기는 집 근처 워터파크겸 스포츠클럽. 나같은 사람이 발리에 진짜 많은가보다 애들 손잡고 와서 부모는 일하고 애들은 노는 가족 진짜 많음.ㅋㅋ


가설2: 불편함을 알고 영어를 필요하게 만든다.

이건 가설검증 보류. 사실 지금 보내는 어린이집이 딱 일주일만 다니기로 했던 곳이고, 써머캠프 기간이라 교육활동은 거의 없다. 자연학습을 우선시 하는 곳인지 바다에 가서 놀거나 텃밭 놀이, 짐에서 앞구르기 뒷구르기 클라이밍하는 시간이 대다수라 영어보다는 몸쓸 일이 더 많은 곳이긴 하다. 가기 전에 '화장실 가고 싶어요'랑 '목말라요' 두 개는 알려주고 보냈고 실제로 쓸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음.

그래도 '엄마 오늘 텃밭에서 펌킨봤어' 아니면 '마미~안녕~' 하는 거 보면 어디서 듣고 배우는 건 있는 듯 그거라도 써서 다행이야 아들...ㅋㅋ 참고로 지금 우리 애 반에는 열댓명의 애들이 있고 한국인은 우리 애 포함 2명이 있다. 애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자기들끼리 노는 무형의 시그널이 있나보다. 하원 전에 잠시 아이들 노는 걸 보니 딱히 말이 필요하진 않겠다 싶었다.

근데 꼭 영어를 배우기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여행와서 근처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3~4시간씩 보내는 건 정말 좋은 선택지다! 우리 애 성향이 나를 닮아 외향적이라 가능한 것도 있지만, 부모의 자유시간만큼이나 아이도 다양한 자극을 받을 수 있고 또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두려움을 씻어내기 좋다.

영어보단 몸을 많이 쓰는 우리아들...호호...


이제 곧 12시 아이 픽업갈 시간. 또 생각나는 것들이나 맛있게 먹은 것, 좋았던 것은 다른 글로 공유할 예정. 아무튼 저는 발리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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