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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륜 Jul 07. 2021

과학적으로 나 보기

의식의 강 / 올리버 색스


과학책 읽기 여섯번째 책은 올리버 색스로 정했다. 

벽돌책을 읽다가 한 템포 쉬어가기에 딱 적당한, 나름 명불허전 작가로 듣기만 했지 읽기는 처음. 


첫 장부터 <다윈에게 꽃의 의미란> 

다윈을 통해 알게 된 자신의 생물학적 의미를 런던의 한 정원에서 어렴풋이 깨달았다니… 

『종의 기원』을 완독 후 딱 맞는 글에 반가웠다. 


신경정신과 의사로 암 투병 말기에 쓴 책. 내 기억이 오류투성인 것도, 작가들의 표절시비들도 자연스러운 뇌의 활동이었음을 새삼 확인해줬다. <잘못 듣기>는 얼마나 쉬우며, <모방과 창조>는 '동화와 통합'을 통해 몰입의 시간 속에서 의미를 얻게 되는 것도 말이다. 쉽게 결론을 내리지 않고 다양한 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자신의 경험을 연결하며 맺어가는 그의 글은 품이 넓어 좋다.


자위와 구별하기 힘든 ‘위로를 원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나 자신을 알아야 필요한 것이 위로인지 격려인지 아니면 냉정한 자각인지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올리버 색스의『의식의 강』은 과학적인 사고로 '나를 보게'한다. 

내 의식의 자아를 구성하는 개인적인 순간들이 사진처럼 모여 강물처럼 맞물려 흘러가지만 결국 하나의 집합체로 이루어져있음을 본다. 


스마트 폰 속에 저장된 수 백장의 사진들이 내가 본 순간을 기록했고, 차마 담지 않았던 더 많은 시간들이 지금의 나, 한 해 동안의 나를 이루고 있다. 그의 글처럼, 내 의식 속의 기억들은 능동적으로 선택되기 때문에 이전까지 이루어진 나의 감정과 의미들이 축적되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나의 삶은 축적된 기억으로, 또 선택된 기억으로 넓게 깊게 연결되어있다.


벽돌 같은 과학책들을 끼고 읽는 동안 난 그 기억들 속에 이제 다르게 보일 세상을 끼워 넣는 중이다. 『빅히스토리』를 만난 후 할리우드 SF영화들이 달리 보였고,『코스모스』를 읽은 후 은하수를 찍은 사진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다윈의 목소리를 들은 후 믿음이 은혜라는 고백이 깊어졌다.


덧붙임: 다음 책으로 『이기적 유전자』를 선택했다. 89년 개정판 서문에 올리버 색스의 글에 나온 *네거큐브 이야기가 나온다. 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의 맛은 이런 거~


덧붙임2: <의식의 강> 파트 부분에서 필사한 내용을 붙여본다. 내 열 마디 보다 책 속의 한 문장을 옮기는 것이 백 배 나을듯. 


<의식의 강>

191

월리엄 제임스는 "의식은 사물thing이 아니라 과정 process이다"라고 늘 주장했다. 에덜먼은 이러한 과정의 신경적 기초를 '뉴런 그룹들 간의 역동적 상호작용 중 하나'로 간주하고, 이 상호작용은 대뇌피질과 시상하부 등의 상이한 뇌 영역은 물론 대뇌 피질 속의 다른 부분들에 존재하는 뉴런 그룹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에덜먼은 의식이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전두엽)'과 '지각의 범주화를 담당하는 영역(후두엽)'사이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호혜적 상호작용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했다. *

* ... 도널드 헤브는 1949년 발간한 유명한 [행동의 조직]에서 신경생리학과 심리학 간의 커다란 차이를 일반이론을 메우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 이론을 이용하여 신경적 과정을 정신적 과정과 연결시키고, 경험이 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 싶어했다.  ...  오늘날 의식에 대해 생각하는 신경과학자들은 모두 헤브에게 빚을 지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197

그런데 1,000 가지 가능한 지각 중에서, 내가 유독 그런 것들에만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그 배경에는 아마도 성찰, 기억, 연상 등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의식이란 늘 능동적이고 선택적이기 마련이므로, 나의 선택에 정보를 제공하고 나의 지각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하여 모든 감정과 의미는 나 자신만의 독특한 것이 된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바라보는 것은 단순한 7번가가 아니라 '나 만의 7 번가' 이며, 거기에는 나만의 개성과 정체성이 가미되어 있다.


197-198

그러면 우리의 프레임과 순간들은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만약 그 때 그 때 일시적인 것들만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덯게 연속성을 이룰 수 있을까?  ... 제임스의 말을 빌리면, 모든 생각들은 과거의 생각들을 소유하고 태어나, 미래 생각의 소유물로 죽는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아로 깨달은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나중의 소유자에게 전달된다.

그러므로 의식의 밑바탕에 깔린 지각의 순간은 단순한 물리적 순간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우리의 자아를 구성하는 개인적인 순간들이다. 그것들은 궁극적으로 푸르스트적 이미지를 형성한다. 그 자체는 사진술을 떠올리게 하고, 보르헤스의 강물처럼 서로 맞물려 흘러가지만, 우리는 전적으로 순간들의 집합체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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