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글’을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오후 생활권자인 나는 오전 생활시간에 생체리듬을 빠르게 깨우는 것에 능하지 못하다. 그래서 대명절 설을 맞이하여 기차를 예매한 날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의 집을 내려가는 날이라면 으레 오후 1시나 오후 3시쯤 넉넉하게 기차 예매를 하는 편이다. 그런데 명절이라 오후 기차는 이미 매진된 상태였고, 그마저도 취소표가 나오는 시간대는 오전 7시 오전 8시였다. 겨우 오전 9시 기차로 그나마 오전 중에는 늦은 기차를 예매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명절이라 이것저것 짐 챙길 것도 많고, 또 오전이라 나를 일으키는 것도 쉽지 않았기에 ‘1분만… 더’ 하다가 9시 기차를 놓쳐버렸다. 다행히 무한의 새로고침을 하다 11시 표를 다시 예매할 수 있었다.
9시부터 11시까지 기차를 기다리며 스타벅스에서 전자책을 읽고, 친구와 부모님에게 카톡을 하며 문득 창밖을 보았는데, 서울역의 전경이 참 예쁘게도 펼쳐졌다. 그러면서 서울역에 관한 이런저런 추억들이 떠올랐다. 먼저 첫 번째 떠오른 추억은 한국장학재단에서 멘토링을 받던 추억이었다. 대학생 때, 한국장학재단에서 실행하는 멘토링을 신청했었다. 보통 서울역 주변이 모임 장소였기에, 서울역을 몇 차례 방문했었다. 연세 세브란스 건물을 보고 있자니 그 추억이 가장 먼저 떠올라, ‘그 뒤로 시간이 참 많이 흘렀네…’라는 생각을 하던 차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 이유인즉슨 강원도 태생이었던 나는 꽤나 순박하게 자란 것 같다. 이토록 각박한 세상인데, 강원도에 살다 보니 ‘경쟁’이라는 키워드나 ‘각박함’ 같은 키워드와는 조금 거리가 멀게 자라왔다는 의미이다. 그러다 보니 20대 때는 취업이나 앞으로 살 걱정보다는, 조금 더 ‘낭만’적인 생각을 할 수 있기도 했다. 그랬기 때문인지 서울에서 이런저런 대외활동에 참가했을 때 나를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단 강원도에서 이 자리에 참석하러 왔다는 사실만 말해도 모두의 주목을 받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면서 서울에 취업하여 생활할 때는 그런 나를 보며 “성공했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다. (^^;;)
당시 상황 때는 그냥 멋쩍게 웃으며 지나가곤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름의 감회들이 참 새로운 것이, 강원도에서 같이 자랐던 친구들 중에는, 서울에서 잠깐씩 생활하다 다시 강원도로 내려간 친구들은 꽤 있지만, 아직까지 서울에 남아있는 친구는 거의 없다. 지방에서 대학을 나온 나는, 대학교 친구들 중에도 서울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은 없다. 대부분 다 자기의 고향 도시에서 지낸다. 서울에서 산다는 것이 좀 더 우월하다거나, 성공했다는 의미는 아니이고, 서울 하면 생각나는 것은 ‘빠름, 변화, 혁신’등의 키워드이기에, 그런 느낌만 생각했을 때에는, 강원도에서 자란 나와는 조금 이질적인 도시이기에, 내가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 그저 자연스러운 흐름은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의미에서 적었다.
나는 강원도에 있을 때는, 그 도시의 평균치보다는 진보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울을 자주 방문했고, 서울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사람들과는 새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었다. 그런데 거기에 도움이 된 것이 바로 ‘글과 어휘력’이었다. 왜냐하면 서울에서 만난 친구들은, 내게 어휘력이 풍부하다는 말을 종종 했었고, 그런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나는 그들과 친구가 되곤 했다. (어떨 땐 왜 그렇게 어려운 말을 쓰냐며 종종 타박받기도 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끔 생각하는 ‘점을 선으로 이어야지’하는 것처럼, 인생은 하나의 점을 찍고, 그 하나의 점이 또 다음에 올 점을 찍고, 그렇게 선을 만들어가고, 면을 만들어 가는 것인데, 내가 글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책을 읽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해왔으며, 그 생각은 나를 종종 서울로 불렀고, 생각이 깨어있는 친구 한 두 명들과 친구가 되게 해 주었으며, 그 친구들은 나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주었고, 그렇게 찍은 점들이 지금의 나를 여기있게 한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즉 꼭 서울에 사는 것이 정답이라는 뜻은 아니고, 내가 느끼던 강원도의 작은 세상에서, 지금 이 서울역에서 고향으로 갈 기차를 기다리며, 스타벅스에서 콜드 브루 한 잔 마시며, 아이패드로 브런치에 타자를 치고 있는 지금의 나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글’이 큰 영향을 발휘했을 것이다.
좋은 문장을 쓰고 싶었고, 예쁜 단어를 머리에 새기고 싶었고, 순수 우리말의 아름다움은 참 크다고 느낀다. 적어도 그 예쁜 단어들은 내 머릿속에서, 내 입 밖으로 내뱉어지며, 쌓이고,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 같다. 적어도 내게 글이란 매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글을 좋아하고, 글을 쓰게 태어나게 된 것은 어쩌면 참 다행인 일이다. 서울역을 보고 있는데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