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너
정확한 때를 말하기는 어렵지만, 약 서른 즈음부터 나는 '미니멀리즘'이라는 한 생활 방식을 알게되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내가 결코 물건을 많이 소유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고, 심지어는 피규어부터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모은 여행 기념품들, 각종 엽서와 스타벅스 카드 수집 등 '컬렉터 기질'까지 다분했던 사람이었다. 아마 나는 어쩌면 물욕이 꽤나 있던 사람일지도 몰랐다.
그런 내가 정확히 어떤 계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날 부터 인가 유튜브에서 '미니멀리즘'에 대한 영상 하나 두개 씩이 알고리즘에 의해 눈에 띄었고, 그렇게 하나둘 보던 영상은 어느덧 굳이 시간을 내어 찾아보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심지어는 구독 서비스인 넷플릭스에서도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과 같은 시리즈를 찾아보는 관심 수준까지 도달했다.
그렇다면 내가 빠진 미니멀리즘에 대한 매력은 무엇일까?
누구나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한 물건을 보면 그 물건을 접할 때의 기억이 함께 떠오르는 편이다.
예를 들어, 20대 중후반쯤 갔던 '서울비어위크'에서 굿즈로 받아 온 길쭉한 물컵을 볼 때이다. 맥주를 좋아하는 친구가 내게 비어위크를 가지 않겠냐고 물었고, 나는 그에 응했다. 입장료를 지불하니, 비어위크 장소 내에서 랜덤으로 먹을 수 있는 맥주 티켓 몇장을 개인당으로 주었다. 그때만 하더라도 알콜쓰레기 기질이 다분했던 나였기에 나는 맥주 한 잔을 마시고도 볼이 발그레해지고, 기분이 알딸딸해져서 희죽희죽 웃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런 나를 보며 친구는 아직 몇장 더 남았는데, 어쩔거냐면서 웃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맥주 카드 중 몇장을 친구에게 양도했다. 그리고 그 날은 비가 왔다. 비어위크는 야외에서 진행되었기에, 운영팀 측에서 급하게 천막을 설치했지만, 공간 사이 사이를 이동할 때면 약간의 비 맞음은 불가피했다. 그래서 야외 한 천막에서 비를 피하며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친구가 나를 보며 빵터지게 웃는 것이었다. 이유를 알고보니, 내가 천막을 벗어나 비를 다 맞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 머리 위에는 부슬부슬 내려앉은 물방울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나는 술에 취한 알딸딸한 기분 때문에 내가 비를 맞고 있다는 감각조차 무뎌져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친구가 내가 계속 비를 맞고 있는데도 그 사실을 모르자, 웃으며 나를 천막 안으로 들여놓았던 그런 기억들. 그렇게 생전 처음이었던 비어위크를 참가하고 굿즈로 받아왔던 그 길쭉한 유리컵. 그 유리컵을 볼 때면 나는 이런 기억들이 떠오른다.
또 스텔라 맥주잔을 볼 때면, 내가 이사 후 집들이를 한다고 초대했던 한 동생이 집들이 선물로 사왔던 제품이었다는 것. 동생이 온다기에 그 날 참 열심히도 청소를 하고 있었고, 청소 후 나온 쓰레기를 버리고 지하철역으로 동생을 마중나가려 했었는데, 생각보다 내가 알려 준 주소로 잘 찾아온 동생 덕에 내가 쓰레기를 버리려 원룸 밖으로 나갔을 때 딱 마주쳐, 서로 보자마자 웃었던 기억들.
스타벅스 플라스틱 카드들을 보고 있자면, 내가 스타벅스를 좋아하게 된 계기부터 그걸 하나둘씩 사모으던 기억들. 그리고 순간순간 함께 했던 사람들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어떤 하얀 스웨터를 보고 있자면, 그걸 참 자주입던 시절의 내가 떠오르는 것. 그리고 그 시절 그 옷을 입던 시기에 자주 마주치던 사람들이 함께 떠오르는 것.
어떤 원피스를 보고 있자면, 그 원피스를 입고 여행할 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그런 식이었다.
이렇게 추억이 한 가득인 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 기억들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건 그 친구들과 내가 불협화음이 생길 때였다. 참 좋아하던 친구들이었지만 어떤 이유에서들로 하나둘 멀어지기 시작했을 때, 그 물건들은 내게 더 이상 좋은 추억의 물건들로 다가오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물건들을 비워내야함을 절실히 느꼈다. 어디에선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물건에는 기억이 깃들어 있고, 안 좋은 물건들은 잘 비워내야지 그 자리에 다시 좋은 '운'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 언뜻 들으면 샤머니즘스러운 구석은 다분히 있지만, 각 물건마다 이렇게 기억을 가득 안고 사는 나에게는 정말 공감이 갔던 이야기였다.
그래서 그 물건들이 더 이상 내게 추억이 아니고 자꾸 안 좋은 기억들을 불러일으킬 때, 나는 본능적으로 물건들을 비울 준비를 했다. 버거웠던 이십 대를 정리하고 삼십 대를 새롭게 맞이하려는 나만의 행동의식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
비어위크컵, 맥주잔, 회사에서 받았던 컵, 내나라여행박람회에서 받은 라인 브라운 컵, 꽤나 오래써서 차 색깔의 링 모양이 한 켠에 자리잡은 찻잔, 여기저기에서 굿즈로 꽤나 많이 받아서 쌓아놨던 텀블러들, 정체모를 플라스틱 통들
스웨터를 꽤나 많이 좋아할 때 하나 두개씩 사서 입던 니트류들, 이제는 입지 않지만 20대 중후반에 꾸미고 싶은 날 사서 입곤 했던 짧은 치마들, 가죽 치마들, 스페인 여행 때 샀던 ZARA 옷들, 동유럽 여행할 때 샀던 수영복, 베트남 여행 때 샀던 원피스와 귀걸이들, 컬렉터 기질로 모았던 피규어들, 내 취향이 아니어서 쓰진 않지만 비우긴 아까워서 놔두었던 선물받은 아기자기한 물품들 (에어팟 케이스, 미니 파우치 등), 오래된 다 읽은 책들, 여행 기념품들 (프랑스에서 사 온 에펠탑, 지구본 등)
사실 내돈내산 옷들은 좀 비우기가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특히 외국을 여행하며 산 아이템들은 더욱 그랬다. 왜냐하면 가끔 옷이 특이하다며 어디서 산 거냐고 질문을 받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한껏 들뜬 표정으로 여행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 이거 스페인 여행 때 샀던 거야~'하며 말하곤 했다. 하면 좀 있어보이기도 했고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기억들까지 함께 있는 옷들을 비워내기가 조금 많이 아쉽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 옷들을 즐겨입을 때와 지금의 옷 취향은 또 꽤나 많이 달라져있기에 언젠가 입겠지하는 마음이 그저 아쉬워서이지, 진짜 입을 것 같아서라는 마음은 아닌 것 같았기 때문에 결국 비워내기로 결정은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양일 간에 걸쳐 그런 추억 및 기억들이 깃든 물건들을 잔뜩 비워냈다. 거의 20대의 기억들을 전부 비워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머피의 법칙 이었을까? 삼십대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대의 기억을 잊고 싶은 일들이 아주 잔뜩 겹쳐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났기 때문이다. 20대를 함께 보내 온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좋지 않게 변해갔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에게 미니멀리즘은 20대의 악습을 끊는 작업. 그리고 좋지 않게 변한 기억을 비우는 작업의 의미였다. 잊었다고 나는 믿고 싶었겠지만, 정작 놓지 못했던 기억들도 있었으니까. 다른 변명을 대곤 했지만, 물건을 통해 놓지않고 있었던 기억도 있었다. (물건을 비우면서, 그 물건을 왜 비우기 힘들었는지 물건이 내게 일깨워준 기억들. 부여잡고 있었던 기억들. 그 물건을 비우지 않으면 계속 내게 어떤 형식으로든 붙어있을 기억들.)
물건을 비운 후 그 공백이 만들어 낸 공간의 여운들을 느끼고 있자니, 온갖 기억들로 시끄러웠던 머리 속이 한결 조용해짐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서른 즈음에 시작한 미니멀리즘으로 삼십대를 좀 더 평온한 기억으로 물들이고 싶었다. 미니멀리즘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삼십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