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하는 사과

늦기 전에 깨닫기

by 능쌤

수술한 지 한 달 하고 3일이 지났다.

오전에는 왠지 나아지고 있는 것 같은 희망으로 열심히 수업도 하고 운전도 하며 생활하다 저녁이 되면 좀 더 심해지는 통증에 살짝 낙심이 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통증이 계속되니 업무나 해야 하는 모든 일에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다. 영어 듣기 평가를 보고 있는데 옆에서 선생님이 말을 걸어 문제를 풀기 어려운 느낌 정도의 형편없는 집중력을 보이고 있어 업무 성취도도 영 맘에 들지 않고 새롭게 배우는 건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극 외향형이고 호기심이 넘치는 나는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길 즐겼다. 새로운 정보를 흡수하고 배울 수 있는 서점을 정말 사랑하여 30대까지 일주일에 3일은 대형 서점에 가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구입했다. 나이가 들어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일을 성취하는 분들의 책을 읽으며 함께 응원하고 그런 삶을 동경하였다.

가끔 50대나 60대의 분들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이야기나 자녀나 손주들을 교육한 과정에 대한 책을 읽고 나면 나도 계속 노력하며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빠는 기억력이 비상해 어린 시절부터 영재 소리를 듣고 자랐다고 했다. 물론 자세히 쓰면 드라마에 나올 법한 여러 사건들로 어려움을 겪으셨지만 그 시절 분들에 비해 경제적으로 큰 고생을 하지 않았고 학력도 좋아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은퇴 가까운 시점에 보증으로 가정에 큰 충격이 있었지만 두 분의 노력으로 내가 느낄 정도의 생활의 어려움이 일어나진 않아 그래도 감사했다. 하지만 아빠는 은퇴 후 많은 시간을 TV 시청에 쏟았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기적적으로 회복한 후 운동과 재활로 노력을 하면 훨씬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설득해도 귀찮아하고 TV에 더 집중하였다.


아빠의 그 시간이 참 아깝고 노력하지 않는 모습에 안타까워 잔소리를 하곤 했는데, 지금의 내 상태를 보면 정말 아빠에게 미안하다. 물론 불굴의 정신력과 에너지를 가지신 분들은 암이나 불치병도 이겨내고 올림픽에 출전하거나 위대한 업적을 이뤄내기도 한다. 하. 지. 만. 평범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우리는 이 힘든 시간을 우울증에 걸리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감사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만 해도 칭찬받아 마땅한 거였다.

아빠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간을 보내며 참 외롭고 힘들었겠구나 생각하니 정말 미안하고 보고 싶다. 내가 같은 상황에 처해보지 않으면 함부로 그 시간과 마음을 판단하면 안 된다. 우린 얼마나 쉽게 그 자리에 있어보지도 않았으면서 다른 이를 재단하고 평가했나... 항상 함께 할 수 없을 때 깨달으니 참 어리석다. 그래도 엄마의 마음을 공감하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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